美 정부 "한국 공공시장 열어라"…통상 압력
[ 2013년 01월 17일 ]
미국이 우리 정부에 주기적으로 공공기관 통신장비 구매 지침 개정을 요구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통상 압력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우리 정부에 `지식경제부 IT·네트워크장비 구축·운영 지침`이 WTO 정부조달협정(GPA)과 배치된다며 재검토와 수정을 요청해왔다.
지난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다. 지식경제부는 `문제없다`며 즉각 반박했지만 미 정부의 통상 압력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다른 부처도 지경부 지침 도입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지난 2009년 공공기관 도입 인터넷전화(VoIP)에 국산 프로토콜 `아리아`(ARIA)를 의무화하자 WTO 조항을 위배했다며 개정을 압박해 관철했다. 당시 정부는 USTR 의견을 받아들여 행정기관에서 아리아를 의무화하지 못했다.
미 정부가 문제를 삼은 지침은 △특정업체에 유리한 규격 명시 △평가위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부적합한 장비 구매 △저가입찰 만연 등 장비구매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경부가 2010년 12월 제정해 산하기관에 권고했다. 지경부와 산하 공공기관이 3억원 이상 규모 IT·장비를 도입할 때 제안요청서 심의위원회를 거치며 기술능력 평가배점을 기존 80%에서 90%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USTR는 이달 지경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 “기술배점 기준이 한국 중소기업에 특화돼 외국 기업(벤더)들은 불이익을 받아 시장 진입할 기회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또 “이 조달 가이드라인은 WTO GPA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WTO와 한미 FTA에 의거해 조달 시장에서 투명한 평가와 기준이 보장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침은 WTO 협정을 따르고 있으며 기술배점이나 가산점 역시 한국 중소기업만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고 회신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통신장비 시장은 연 8000억원대로 추산된다. 국산 점유율은 15%에 불과하다. 라우터 등 국산 코어 장비가 없는데다 공공기관이 통신장비의 안정성을 이유로 검증받은 고가 외산 제품을 선호한 탓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특정 외국회사 장비 제품명까지 표시해 제안요청서를 내는 일도 잦다. 과다 제원 장비 도입으로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경부 지침은 이 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평가 투명성을 높였다. 공공기관 입찰제안서를 사전 심사해 특정 제품을 사전에 명시하는 것을 제한, 기술 중심으로 평가하도록 설계했다. 지경부 지침이 시행되자 무조건 외산만 도입하던 관행이 사라지는 추세다.
방통위도 지경부 지침을 토대로 `IT 네트워크장비 구축·운영 지침`을 준비 중이다. 지경부가 대상으로 삼은 3억원 이상 사업보다 1억원 이상으로 더욱 확대하는 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네트워크 산업을 보유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대비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방어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도는 최근 보안을 이유로 정부와 산하기관에서 ICT 관련 기기 구매 시 30% 이상을 자국 기업 제품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미국조차 지난해 의회 차원에서 중국산 통신장비 공공기관 도입 경계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 인프라 산업은 ICT 경쟁력 향상의 근간”이라며 “관련 지침을 확대하는 한편으로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과 공동 개발한 제품도 국산으로 인정해 선진기술 확보하고 통상 마찰도 피하는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