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터진 거대공룡, 위기의 KT ]이석채의 독선경영, 결국 ‘CEO 리스크’ 불렀다
기세에 눌린 임원진 제목소리 안내고 수동적 조직으로 변해
“KT는 CEO 리스크가 존재한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친정부 성향의 CEO로 수장이 물갈이되는 KT는 정권교체기마다 CEO 리스크를 겪는다. 2009년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한 가지 뜻이 더 늘었다. 독선적 경영방식으로 인한 리스크다.
KT 자회사 CEO는 “이 회장의 독선적 경영방식 때문에 KT 내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임원은 아무도 없는 분위기였다”면서 “심지어 문제 제기를 했다고 차량 이동 중 인사팀에 전화를 걸어 징계할 정도로 독선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항상 회장 눈치를 보고 그의 입맛에 맞게 경영전략을 짜는 상황에서 어찌 글로벌 기업으로 나가고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회장의 독단적 경영방식은 공개석상에서도 공공연히 드러났다. 지난 9월 2일 열린 ‘KT LTE-A 넘버원 결의대회’. 그간 추진해 오던 1.8㎓ 주파수 대역 확보 성공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다. KT 임직원들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 사내 결의대회를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 회장이 격려 대신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날 “KT의 고질적 문제는 내 기업이라는 주인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의 울타리, 자기의 회사, 자기의 집이 무너져 가는 데도 불구하고 외부에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모략한다”면서 “낮에는 태연하게 회사 임원으로 행세하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 (이들을) 걷어차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이어 “총부리를 겨누고 앞으로 나가라고 해야 한다. 나가지 않으려면 최소한 회사를 해코지하지 말라는 얘기는 확실히 전해 달라”고 톤을 높였다.
회사 정책이나 자신의 뜻과 다른 말을 하는 직원을 걷어차야 한다는 등의 엄포를 쏟아낸 것. 축하 행사는 직원 비판 시간으로 변했다.
KT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은 평소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업을 진행하고 독선적 경영방침을 고집한다”며 “이 기세에 눌려 임원진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독단적 경영 방식이 계속되자 KT는 점차 수동적 조직으로 변했다.
이 회장은 회사 요직에 자신의 사람들을 앉혀 놓고, 이른바 ‘황제경영’을 강화해 나갔다.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정관을 개정해 ‘3년·1회 연임 가능’이던 사외이사 임기를 10년까지 늘렸다. 여기에 외부 인사와 전직 사장 등을 포함하도록 했던 ‘최고경영자 추천위원회’ 구성도 전직 사장과 외부 인사를 빼고 전원 이사진에서 뽑도록 했다. 자신의 측근을 이사진에 채우고, 그 이사진이 최고경영자를 뽑도록 구조를 만든 셈이다.
이 회장의 야욕은 KT를 떠나는 그 순간에도 계속됐다. 그는 사의를 표명하는 이메일을 통해 “매년 (KT는) 경쟁사 대비 1조5000억원 이상 더 많은 인건비가 소요된다”며 “인건비 격차를 1조원까지 줄인다는 근원적 개선과 올해 임원 숫자를 20% 줄이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석채 회장의 독선과 끝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집착이 KT의 위기와 함께 CEO 리스크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범근 기자 n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