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경영] 5년마다 숙청인사 반복되는 KT, 미래는 있나?
최근 대규모 조직개편ㆍ임원인사로 케이티(030200) (29,900원▼ 300 -0.99%)(KT)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이석채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불렸던 ‘올레 KT(외부에서 왔다는 의미)’파 임원들이 대거 퇴사하거나 좌천돼, 보직이 사라지거나 자리를 옮긴 임직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황창규 회장이 전임 최고경영자(CEO)의 색깔을 없애기 위해 가신들을 숙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CEO 교체로 홍역을 앓았던 KT가 조직흔들기를 반복하는 것이 과연 기업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조치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 ▲ /그래픽=박성우 기자
이는 KT에 오래 몸담았던 ‘원래 KT(원래부터 KT에 있었다는 의미)’파와 ‘올레 KT’파의 갈등을 조장, 조직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결하기보다는 내부분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KT 고위 임원은 “황 회장의 이석채 전 회장 흔적 지우기는 이석채 전 회장 취임 초기에 대규모 숙청작업에 나섰던 것과 닮았다”며 “인사나 조직개편이 혁신을 위해 필요한 처방이기는 하지만 CEO가 바뀔 때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오히려 KT에 독이 될까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이석채 전 회장 시절 영입된 ‘올레KT’ 대거 짐싸
이석채 전 회장은 지난해 말 횡령ㆍ배임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2009년 취임 초기 ‘변화와 혁신’을 내세우며 KTㆍKTF 조직 통합은 물론 굼뜬 통신 공룡 KT를 탈바꿈시키는데 앞장섰다.
임원회의를 통해 비상경영을 선포했고, 2009년 말 애플 ‘아이폰’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해 스마트폰 시대에 뒤쳐져있던 국내 IT업계에 일침을 가했다. KT가 국내에 아이폰을 먼저 내놓자 경쟁기업들도 자극을 받아 스마트폰 경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 ▲ KT는 2010년 아이폰 3GS의 홍보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 '아이폰 체험 로드쇼'를 진행했다. /KT제공
하지만 이석채 전 회장의 ‘KT 혁신’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부닥쳤다. 이 전 회장과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들(올레 KT)과 KT에 오래 몸담았던 임직원들(원래 KT) 사이에 갈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원래KT’ 임직원들은 정권교체와 함께 이 전 회장과 ‘올래KT’ 임원들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해가 갈수록 이 전 회장의 지시에 반응속도를 늦췄다.
심지어 원래KT 출신들이 이 전 회장을 비롯한 ‘올레KT’ 임원들을 음해하는 소문을 퍼뜨리고, 관계기관에 투서를 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정권이 바뀐 지난해엔 숫자가 많은 원래KT 임직원들이 이 전 회장과 올레KT 임원들의 지시사항을 묵살하는 사태가 1년 내내 이어졌고, KT 경영은 혼돈에 빠졌다.
- ▲ KT 임원 관련 분석표
작년 말 이 전 회장이 사퇴하고 황창규 회장이 취임하면서 원래KT는 권력을 얻었고, 황 회장을 앞세워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 그 결과 올레 KT파는 퇴사하거나 변방(계열사)으로 쫓겨났으며, 대신 원래 KT파가 다시 요직으로 차지하게 됐다.
경영기획부문장을 맡은 한훈 부사장과 남규택 마케팅부문장, 임헌문 커스터머 부문장은 옛 KTF(합병된 한솔PCS)나 KT로 입사한 KT맨들이다. 김기철 IT부문장과 전인성 CR부문장, 채종진 기업통신사업본부장도 자회사로 밀려났다가 다시 복귀했다.
◆ CEO도 자주 바뀌는데 임원까지 다 바뀌면 ‘역효과’…탕평형 인사로 조화를 고려했어야
전문가들은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CEO나 임원을 대거 교체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는 경영의 연속성은 물론 조직내 피로도를 높여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이 발간한 ‘CEO의 재임기간과 경영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CEO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기업의 평균 경상이익률은 -4.7%인데 반해 재임기간이 1~4년인 기업은 평균 경상이익률이 0.9%로 높았다. 또 재임기간이 4~7년 사이인 기업의 경상이익률은 5.1%로 더 높았다.
- ▲ CEO의 연임에 따른 이익률 그래프 /LG경제경영연구소
김진백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CEO가 자주 교체되는 것이 회사의 경영에 결코 득이 되는 전략은 아니다”라며 “우리 금융권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은행을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가 새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은행장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임 CEO가 대규모 인적쇄신을 할 수는 있지만, 또다시 자신의 색깔에 맞는 사람들만 기용한다면 인사에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KT 계열사 사장은 “계열사 CEO, 본사 임원, 팀장 등이 대거 바뀌면서 사실상 기존의 조직은 해체되는 분위기”라며 “쇄신도 좋지만 대규모 인사가 오히려 내부의 갈등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 ▲ 황창규 KT회장(왼쪽)과 이석처 전 KT 회장(오른쪽)이 기자들에 둘러 쌓인 모습. /조선DB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KT CEO가 기존 임원들을 숙청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KT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황창규 회장이 앞으로 3~4년간 의욕적으로 KT를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신임 회장이 황 회장과 임원들의 업적을 ‘실패’로 규정짓고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조직은 또 다시 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변호사는 “(이번 KT 인사로) 변방으로 쫓겨났던 사람들이 다시 발탁될 수 있는 사례를 남겼다”면서 “하지만 (이석채 전 회장 재임시기에)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도 고루 배치하는 탕평형 인사가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