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황창규 3대 숙제는 이제부터 |
인사 태풍에 조직개편 쇄신 한창…공기업 함정 탈출 등 시선 쏠려 |
설 연휴를 전후해 KT가 ‘황창규발(發) 인사 태풍’에 휩싸였다. 1월 27일 취임한 황 KT 회장은 단출한 취임 행사를 가진 직후 사내 방송을 통해 그룹 회장이 지닌 인사권의 위력을 임직원 5만여 명에게 선보였다. 신임회장의 의례적인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지난 수년간 KT 실세를 자임했던 ‘낙하산’ 경영진이 대부분 옷을 벗거나 2선으로 밀려났다. 김일영 KT코퍼레이트센터장과 김홍진 G·E부문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통신 전문가인 전·현직 KT 출신이 앉았다.
나아가 황 회장은 대대적인 조직개편 작업도 선보였다. 본부조직을 9개 부문으로 통폐합하고, 전체 임원 수를 기존 130여 명에서 100명 내외로 30% 줄였다. 회장 자신의 급여도 삭감했다.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KT 고질병으로 지목된 방만 경영에 제동을 건 것이다.
53개 KT 계열사에 대한 인사는 설연휴 직후인 2월 4일 윤곽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황 회장은 30여 개 계열사 사장에게 일괄 사표를 요구하는 초강수를 이어갔다. 심지어 지난해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둔 BC카드, KT스카이라이프, KT렌탈 경영진도 물갈이됐다.
이로써 주주총회가 열리는 3월 중순까지 KT는 한동안 인사와 조직개편 문제로 뒤숭숭할 전망이다. 하지만 KT 직원들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는 것이 KT 안팎의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변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고 또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이뤄진 데 대한 만족도가 더 높다는 얘기다.
황창규發 인사 태풍 위력
빠르게 조직 내 민심을 잡아가는 황 회장은 취임 전 일었던 ‘비(非)통신 출신’이라는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내는 성과도 얻었다. 비교적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처방전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오랜 기간 경영진과 각을 세워온 KT 새노조까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하지만 황 회장이 풀어야 할 진짜 숙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 KT를 잘 아는 전문가의 한결같은 평가다. 국내 최고 통신전문가로 알려진 전임 남중수 사장(이하 재임 2005~2008)이나 ‘천재형 경제관료’라고 불린 이석채 회장(2009~2013)도 감히 풀지 못한 난제가 많다는 얘기다.
01 공기업의 함정, 허수경영의 문제
“민영화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KT는 공기업 체질 그대로입니다.” KT에서 오래 일한 한 간부는 기자에게 KT 경영진이라면 모두 안다는 ‘허수(虛數)경영’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허수는 실리가 없이 외형만 중시한다는 얘기다. 그는 “기존 KT 조직은 단 한 번도 경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이 없다”며 “그럼에도 회사 경영이 점차 악화된 것은 공기업 특유의 조직 문화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KT 본부에서 전국 KT 지사에 일정 ‘매출’이나 ‘판매대수’ 같은 목표를 제시하면 예외 없이 그 수치가 달성된다.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려고 대부분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는데, 심지어 자사 이익을 해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조직원 수는 많지만 전문 경영 노하우가 없는 중간관리자가 많다 보니 어떻게든 생존을 위한 경영이 몸에 뱄고, 그 부실이 조직 안에 오랜 기간 쌓였다는 설명이다.
02 KT-KTF 합병 후유증
2009년 국내 첫 아이폰 출시로 기세를 올렸던 KT는 2011년 국내 시장에 몰아닥친 롱텀에볼루션(LTE) 붐을 예측하지 못해 극심한 경영 악화를 겪었다. 하지만 KT 속사정을 아는 관계자들은 단순히 경쟁사에 비해 LTE를 늦게 출시한 것이 문제라기보다 2009년 이뤄진 KT와 KTF의 성급한 합병 후유증이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합병 전에는 경쟁력이 있던 KTF의 무선통신 분야 영업망이 붕괴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유선망 중심의 KT 조직이 갑작스러운 합병 이후 대거 무선통신 영업에 뛰어들면서 통신 영업망이 완전 뒤죽박죽됐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2009년 이후 KT 경영진도 딱히 비전을 찾지 못한 유선통신 분야 인력이 대거 휴대전화 판매 영업에 나서도록 그들을 독려했다. KT 관련 판매 조직이 최소한의 규율을 잃고 경쟁사가 아닌 조직 내 다른 부서들과의 무한 판매경쟁을 벌이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기존 대형 유통사는 KT의 영업 정책에 불만을 갖게 됐고, 또한 유선통신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전문가가 본업을 팽개친 탓에 유선통신 부문 실적까지 동반 추락했다는 설명이다. 복수의 전직 KT 고위관계자는 “KT가 진정한 통신전문기업으로 되돌아가려면 신임회장이 합병 전후 있었던 전략상 실수를 꼼꼼히 복기하고 유·무선통신 분야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03 5년마다 반복되는 CEO 리스크
KT 직원들은 혁명에 가까운 ‘인사 태풍’을 반기면서도 3년 뒤 상황에 대한 고민을 벌써부터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당분간은 황 회장의 ‘영(令)’이 서겠지만 과연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이나,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정권이 바뀔 경우 어찌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정치 환경이 뒤바뀌면 다시금 조직 내 분열이 커지고, 일부는 정치권의 새로운 실력자를 찾아 줄을 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전직 최고경영자(CEO) 2명이 석연찮은 검찰 수사로 불명예 낙마한 것을 임직원들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KT의 최대 고민이 ‘주인 없는 회사’라는 점은 국내 경영학자나 KT 관계자 모두가 동의하는 대목. 새로운 CEO가 등장하면 조직 전체가 개혁에 동참하는 듯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슬그머니 공기업 특유의 구태의연한 자세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정권에 따라 요동치는 KT CEO 리스크의 근본 원인이다.
그렇다고 자산 30조 원이 넘는 거대 통신기업의 주인을 찾아준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갖은 특혜 시비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결국 KT 운명은 현대적인 주주자본주의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아닌, 얼마나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CEO가 선임되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과연 황 회장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위기에 빠진 KT를 구해내고 많은 이의 축복 속에서 후임자를 찾을 수 있을지, 많은 이가 관심 어린 눈으로 KT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