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KT]황창규 KT호의 과제2. 탈통신 전략 | 통신과 무관한 사업 정리부터
KT-르완다 합작법인 직원들이 LTE 망 구축 작업을 하는 장면. KT 해외 진출 전략이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매경DB>
33년 역사를 가진 KT가 최대 위기에 몰렸다. 신사업, 해외 진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진정한 탈통신 해법과 해외 진출 돌파구는 없을까.
1. 길 잃은 신사업
네트워크 활용한 융합 비즈니스가 답
‘통신을 버려야 KT가 산다.’
국내 최대 통신사업자 KT가 안고 있는 지상 최대 과제다. 포화 상태에 있는 통신 시장에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석채 전 KT 회장이 그토록 탈통신을 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년간 KT는 타 산업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모바일, 금융, 미디어, 렌털 등 다양한 영역에 도전했다. 하지만 통신과 전혀 무관한 사업까지 탈통신이라는 미명 아래 손을 뻗치자 외부에서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다를 바 없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날렸다. 통신 사업과 렌터카, 부동산, 야구단 등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시기 탈통신을 부르짖었지만, 진출 영역을 보면 모두 통신에 기반을 둔 사업들이다. 구글 TV, 내비게이션, 클라우드 게임을 비롯해 주차관제센터, CCTV 통합관제센터 등 LG유플러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탈통신을 시도했다.
최남곤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KT가 탈통신을 외치며 비통신 분야를 많이 건드렸다. 그러다 보니 본업인 통신 분야를 소홀히 했다. 최근 통신 부문 실적이 나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본업과 신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두 영역 간 시너지가 나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창규 신임 회장은 최우선 과제로 통신 분야의 경쟁력 회복을 꼽고 있어 KT의 탈통신 전략에 수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KT의 유무선 네트워크 인프라를 활용한 융합 서비스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사물 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제조업과 통신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네트워크 경쟁력을 가진 KT가 제조업체와 협력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앞으로 KT는 신설된 미래융합전략실에서 신사업을 관장한다. 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을 기대할 수 없는 신사업은 손대지 않겠다는 게 미래융합전략실 설립 취지다. KT가 추진하는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 사업을 비롯해 소수의 신규 비즈니스만이 미래융합전략실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3개의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져 있다. 팀원도 20명 미만이다. 미래융합전략실장으로는 조신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원장(전 SK브로드밴드 사장)이 하마평에 오른다.
2. 계열사 정리 어떻게
KT미디어허브·스카이라이프 합칠까
KT ENS 직원의 불법 대출 사건 이후 KT 계열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혹시나 다른 계열사까지 불통이 튈까 봐서다. KT 계열사 직원은 “같은 KT 계열사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계열사가 너무 많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알짜 계열사마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KT 계열사 수는 56개. 재벌 기업을 연상케 하는 규모다. 이 중에는 인수합병(M&A)을 한 기업도 있지만 KT 본사에서 분사한 조직이 대부분이다. 실적이 변변치 않아도 KT 내부거래로 연명해온 기업도 다수다.
황 회장 취임 직후 10개 계열사에 대한 사장 교체가 단행됐다. 내부에서는 조직 개편의 첫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적이 좋은 BC카드와 KT스카이라이프 수장마저 일거에 해임됐다. 일부에서는 KT가 BC카드의 지분을 정리하고 KT스카이라이프와 KT미디어허브를 합병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를 펼치지만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KT 측은 BC카드의 지분 정리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계열사 가지치기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KT 계열사 중에는 통신, 미디어 외 금융, 부동산, 렌털, 보안 업종 등 통신과 연관 없는 계열사도 많다. 한류 콘텐츠 사이트(숨피), 경영관리서비스(베스트파트너스), 경영컨설팅(이니텍스마트로홀딩스) 등 통신업과 무관한 계열사가 첫 번째 정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업과 관련된 계열사도 안심할 수 없다.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게 KT 경영진 입장이다.
유통, 미디어·콘텐츠, 방송, 클라우드 분야의 통폐합도 거론된다. 비슷비슷한 계열사가 많이 모여 있는 분야다. 일례로 유통 분야에 속한 계열사 KT렌탈, KT렌탈오토케어, KT오토리스 등은 모두 유사한 사업을 전개하는 만큼 한두 개 기업으로 정리해도 무방해 보인다. 미디어·콘텐츠 분야도 마찬가지다. 계열사 수가 10여개에 달하다 보니 시너지가 나긴커녕 실적 경쟁에 목을 매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KT 계열사 임원은 “2012년 KT 본사에서 분사한 이후 자체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 계열사 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차라리 본사로 복귀해 맡은 일을 하는 게 속은 편할 것 같다”고 토로한다.
3. 실패史 해외 진출 해법은
1대 주주 되거나 지역 특화해야
지난 2002년 민영화된 이후 KT 경영진들은 틈만 나면 글로벌을 외쳐댔다. 포화된 통신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찾을 수 없으니 해외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2015년까지 글로벌 매출 3조9000억원이라는 야심 찬 목표도 세웠다.
사실 KT가 본격적으로 해외로 나가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지난 1995년 KT는 450만달러를 들여 몽골 제1 유선사업자 MT의 지분 40%를 인수한 뒤, 1997년 베트남에선 유선사업자 VNPT와 경영합작사업 투자에 나섰다. 같은 해 KT는 러시아 연해주의 적자 사업자 엔테카(NTC)를 인수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르러서는 중국, 동남아, 중동 지역에서 초고속인터넷 등 통신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주로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아프리카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신사인 텔콤의 지분 인수 추진을 시작으로 모로코 이통사 마로크텔레콤, 튀니지텔레콤 지분 인수 시도까지 기회만 되면 입찰에 나서는 중이다. 최근에는 르완다 전역에 1500억원을 투자해 3년 이내 LTE 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KT’에 어울리는 성과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을 뿐이다. 수년 후에는 투자비용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지 국가의 정세에 따라 한 푼도 못 건질 가능성도 있다. KT가 진출한 국가들 중에는 정치가 불안정한 국가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는 “통신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규제 산업인 데다 국가 기간산업이라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면서 “단기적인 성과만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로드맵에 따라 추진되는 일련의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KT가 현지 진출에 성공하려면 1대 주주로서 직접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한 지분 인수는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다. 공영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통신 산업이 국가 안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해도 1대 주주를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지에서 흔들리지 않는 경영을 하려면 한 곳에서라도 1대 주주를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해외 진출보다는 특화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곳에서 해외 사업을 타진하는 KT의 산발적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통신사 ‘싱텔’을 예로 든다. 싱텔은 한정돼 있는 내수 시장을 탈피하고자 아시아부터 유럽 시장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01년 호주 통신사 옵터스 지분을 인수하면서 호주 2위 통신 사업자로 부상했는가 하면 아시아 지역에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 동남아 최대 통신사로 성장했다.
송재경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싱텔은 작은 도시국가의 통신 사업자였지만 끊임없는 해외 투자로 아시아 통신 시장의 맹주로 떠올랐다. KT도 싱텔이 걸어온 길을 분석해 해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체득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