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KT)가 기술·관리적 조처를 소홀히 했기 때문일까, 해커가 고도의 해킹 기술을 발휘한 탓일까? 케이티 누리집이 해킹당해 이동통신 고객 1200여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업계 안팎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 사건을 조사중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느냐에 따라 케이티와 경쟁업체 및 가입자들의 이해가 크게 엇갈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일 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 및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케이티의 기술·관리적 조처가 미흡해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결론날 경우, 케이티가 가입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약정’이 다 풀린다. 케이티 가입자들이 24개월 약정을 조건으로 받은 단말기 값 보조금을 토해내지 않고도 해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엘지유플러스(LGU+) 및 알뜰폰 사업자 쪽에서 보면, 번호 이동 마케팅을 통해 케이티 가입자를 빼올 수 있는 길이 넓어지는 셈이다.이는 케이티가 이동전화 이용약관을 신고하면서 ‘회사의 귀책 사유인 경우’에도 위약금을 면제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개인정보 유출의 핵심 원인을 케이티의 기술·관리적 조처 미흡 탓으로 결론을 낼 경우, 케이티는 이런 이용약관 조항에 따라 위약금 없이 약정 가입자들의 해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이번 사고가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것으로 판명나면, 케이티 가입자들은 위약금 없는 해지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방통위 관계자는 “6월 말 결론을 낸다는 일정을 갖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어떻게 결론을 내느냐에 따라 이동통신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돼, 충분한 조사와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직 방통위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케이티와 경쟁업체·시민단체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물밑 공방이 치열하다. 케이티 경쟁업체들은 “케이티 귀책이 분명하다”며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당한 고객이 해지를 요청할 때는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방통위가 케이티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조사 일정을 너무 길게 잡고 있다. 자칫 케이티 편을 들어,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로부터 위약금 없이 해지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2012년에도 케이티 누리집이 해킹돼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었고, 이번에도 손쉬운 방법으로 무려 1년에 걸쳐 개인정보를 빼갔는데도 케이티는 몰랐다고 하는 점을 들어, 기술·관리적 조처 미흡 탓이라고 단정짓는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이래서야 가입자들이 불안해서 계속 있을 수 있겠느냐. 해지 고객한테는 위약금 면제는 당연하고 위로금도 줘야 하고, 해지 고객들의 개인정보는 즉시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