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행복할 수 없나
정부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은 2014년 5월 28일 제정되어 10월 1일 시행했다. 도입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보조금 차별 지급으로 혼탁해진 통신시장 유통구조와
-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 구조로 이용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 복잡한 계약 구조로 인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이용자 기만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함
단통법, 차별을 없애고 투명한 시장을 위해…?
단통법의 취지는 그럴듯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법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혜택은 줄었고, 소비자가 휴대폰을 구입하지 않아 문을 닫는 대리점들이 생기고 있다.
단통법 전에는 같은 휴대폰을 누구는 10만 원에 사고 누구는 80만 원에 샀다. 지금은 “이제 누구나 비싸게 사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 시중에 돌고 있다. 물론 이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난 보조금이 투입된 10만 원짜리 휴대폰을 구매하던 적극적인 소비자들이 내는 불만은 소수일지언정 당연히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가 받던 혜택을 줄여 다수에게 공평하게 나눠봐야 티도 잘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차단되고 새로 생기는 혜택은 미약하다”고 느끼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하다.
분리공시제 무산, 소비자 대신 대기업 편을 들어주다
하지만 단통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분리공시제 무산이 아닐까?
한 때 유행했던 (지금도 유행하는) 백화점의 세일 전략을 생각해 보자. 100원짜리 물건을 그냥 파는 것보다 200원이라고 한 뒤 100원으로 할인해서 팔면 더 많이 팔린다고들 한다. 가격이 오르지만, 허영심 때문에 수요가 줄지 않는 현상을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라고 한다.
전 국민이 이용하는 스마트폰을 과연 베블렌재(財)라고 하면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휴대폰 제조사들이 초콜릿폰이니 햅틱폰이니 해가며 기능 추가를 막아가며 100만 원씩 받던 걸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삼성이나 LG 등 휴대폰 제조사들은 비싼 가격에 출고가를 정해놓고 음성적으로 혹은 선택적으로 장려금을 준다. 하지만 전체 소비자를 놓고 볼 때는 선택적으로 가끔 혜택이 돌아오는 장려금보다는 간단하게 출고가가 내려가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소비자를 위해 보조금 차별 지금을 막고 투명한 보조금 지급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은 단통법의 근본 철학 아닌가.
하지만 정부는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12월 23일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속기록을 보면 삼성만 영업비밀 등의 이유를 들어 분리공시제를 반대했다. 심지어 이 회의에서 새누리당의 박대출 의원은 제조사 장려금 지급 규모가 공개될 경우 누구를 처벌해야 할지 규정이 없다(그러니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고 까지 말하고 있다. 미창부 홍진배 과장은 장려금은 분명히 영업비밀이라고 삼성 편을 들고 있다.
휴대폰 제조사들이 판매 장려금으로 쓰는 돈은 과연 얼마일까. 이 금액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데 어떻게 소비자는 기업이 만든 제품의 가격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있을까. 정부는 결국 대기업의 해외시장 개척과 성공을 위해 방패막이가 되고 마루타가 됐던 국민들이 투명하게 휴대폰을 살 수 있는 제도의 시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부가 대기업 편을 드니 해외에서 사올까?
정부가 국내 소비자(국민)의 편을 들지 않으니 저렴하고 성능 좋은 휴대폰을 구매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여러 이유로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좋은 스마트폰들은 적지 않다. HTC나 샤오미, 소니와 같은 해외 브랜드의 제품도 있고, 삼성이나 LG의 해외 판매용 제품도 있다. 국내에 정식 수입된 제품 중에서도 환율이나 회사별 출고가 정책으로 직구가 나은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팔지 않는 제품으로 예를 들어 보자. 위 이미지를 보면 네이버 지식 쇼핑에서 샤오미 레드미 노트 5.5를 검색해서 최저가로 판매하는 곳은 옥션의 해외 직구 코너로 가격은 545,230원이다. 반면 해외 스마트폰을 전문으로 팔고 있는 스마트폰조이닷컴의 경우는 247,000원이다. 심지어 해외 쇼핑몰 중 하나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하면 211,571원(배송료 포함)이다.
이번에는 국내에 이미 출시된 제품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제품의 경우는 어떨까. 삼성의 갤럭시 노트3를 예로 들어 보자.
- 국내 판매: (네이버 지식 쇼핑 기준 최저가) 올레가입센터 – 572,898원 (단, 매월 부가세 포함 141,900원 요금제 24개월 약정 기준)
- 해외판 수입업체 이용: 익스팬시스 – 575,580원 (요금제 조건 없음)
- 해외판 스스로 구매: 아마존 – 667,182원 (596.41달러) (배송료 포함. 요금제 조건 없음)
- * 참고로 물론 이 제품들은 상세 모델명이 각기 다른 제품이지만, 갤럭시 노트3이고 기능 차이가 거의 없다.
언뜻 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가장 저렴해 보이지만, 2년간 통신요금까지 포함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수입업체를 이용하든 홀로 직구를 하든 해외판을 구입하면 매달 15만 원 가까이 되는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 매달 통신비 5만 원씩만 절약해도 2년이면 무려 120만 원이나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나온 아주 따끈따끈한 최신폰이 아닌 경우에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직구나 수입업체를 이용하는 데에는 영어의 장벽이나 A/S 등 불편한 점들이 있는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문제이다. 이렇게 해서 소비자들은 좀 귀찮고 힘들지만 저렴한 가격에 휴대폰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어지는 정부의 딴지, 전파인증 확대
해외 전자제품을 국내에 수입하면 그 전자제품의 유해 정도나 다른 통신기기와의 주파수 혼선 등을 검증할 수가 없으므로 정부는 그간 전파인증이라는 과정을 거쳐 해당 기기가 국내에 적합함을 확인해왔다. 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랄까, 정부는 12월부터 전파인증의 범위를 확대해서 해외 전자제품 수입업체의 입지를 대폭 좁혀놓았다.
전파법 개정안 제58조 2의 10항에 따르면 누구든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은 방송통신기자재 판매를 중개하거나 구매 대행 혹은 수입을 대행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일반 소비자 중에는 직구에 부담감을 느껴 구매 대행업체를 이용해 휴대폰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파법 개정안으로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직구를 할 줄 아는 사람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물론 구매 대행업체가 전파인증을 받으면 여전히 국내에 물건을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미래부가 공개한 전파인증 자료를 따르면 구매 대행업체가 외국산 스마트폰의 전파인증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대 3천3백만 원이다.
셋째, 여러 업체가 같은 기기를 수입해도 업체마다 전파인증을 각각 받아야 한다. 즉, 한 업체가 A라는 기기를 수입해서 팔면 그 A는 유해성 여부나 주파수 혼선 같은 문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더라도 다른 업체가 A라는 기기를 팔고 싶으면 또 돈을 내고 전파인증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구매 대행과 관련된 각종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전파인증을 받지 않은 불법 방송통신기자재를 국내에 대량 유통하는 구매·수입대행을 제재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휴대폰 유통시장 질서를 바로잡는다며 새로운 법안을 냈지만, 대기업의 이익 보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를 누락시켰다. 대기업 제조사는 자국의 소비자들을 방패막이 삼고 마루타 삼아 성장을 해왔으면서도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공개할 생각이 없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참다못해 조금은 저렴한 모델을 찾아 해외 쇼핑몰로 눈을 돌려 물건을 사보려 하지만, 정부는 해외 휴대폰 구매와 관련된 사업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전파인증 확대를 시행 준비 중이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서 배우 대니얼 김이 연기한 권진수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볼모로 잡은 사람들에 대한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외친다.
“난 한 번만이라도 행복하고 싶은데, 왜 나 권진수는 행복할 수가 없어?!”
거의 전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스마트폰 소비자들의 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