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대리점. 한겨레 자료사진. 정용일 기자 |
쓰던 단말기 가져가면 보조금 대신 할인 혜택
‘공짜 단말기’ 사라지자, 알뜰 소비자 느는데…
대리점 직원뿐 아니라 114 상담원도 안내 소극적
“분리요금제라고 있잖아요. 단말기 유통법 시행으로 도입된…”
“처음 듣는데요.”
“분리요금제 지침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분리요금제 신청한 사람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처음 들어봅니다.”
케이티(KT) 가입자 박아무개(33)씨가 이 달 초 서울에 있는 한 대리점을 방문해 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다. 지난해 10월1일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이 시행되면서 ‘분리요금제’가 도입돼 4개월이나 지났지만, 이통사 대리점 직원조차도 그게 뭔지 모른다고 하고 있다. “어떤 요금제를 말하는 것이냐?”고 손님한테 되묻기까지 한다. 녹음에는 박씨가 답답한 나머지 대리점 직원 앞에서 114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상담원한테 분리요금제에 대해 문의하고, 대리점 직원이 ‘전산센터’라는 곳에 전화를 걸어 분리요금제가 뭔지 묻는 장면도 나오는데, 114 상담원은 “위에 보고해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분리요금제란 단말기 지원금(보조금) 대신 약정기간 동안 다달이 통신요금을 12%씩 감면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규 가입하면서 따로 구입한 단말기를 가져가거나 재약정을 하면서 쓰던 단말기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상이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가입자당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해 분리요금제가 뭔지 모르는 척 하거나 소극적으로 안내해, 이동통신 소비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요금 감면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가 독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최근 며칠 서울에 있는 이동통신 대리점 몇 곳을 직접 방문해 분리요금제에 대해 문의해보니, 상당수가 딴소리를 했다. 한결같이 “분리요금제가 뭐냐?”는 반응을 보였다. “단말기 지원금 대신 요금을 12% 깎아주는 것 있잖냐”고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니, 그제서야 ‘선택 약정 할인’(에스케이텔레콤·엘지유플러스) 내지 ‘요금 할인 지원’(케이티) 등 생소한 용어를 꺼냈다. 정부가 ‘분리요금제’란 말로 알려 소비자들도 이렇게 알고 있지만, 이통사들은 전혀 엉뚱한 용어를 사용해 소통을 거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대리점 사장은 “우리는 분리요금제를, 기업이 직원들의 통신요금 일부를 지원하는 경우, 직원이 쓴 요금 가운데 지원액만큼만 회사로 청구하고, 나머지는 직원한테 청구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피해 제보 내용을 보면, “확인해서 전화로 알려드리겠다”거나 “우리는 권한이 없으니 본사 직영 고객센터로 가보라”고 해, 소비자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단말기 유통법의 성과를 소개하면서 중고 단말기 재활용 촉진 효과도 언급했다. 단말기 지원금의 투명화로 ‘공짜 단말기’가 사라지자, 단말기 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쓰던 단말기를 계속 사용하는 알뜰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점 직원들은 물론이고 114 고객센터 상담원까지 분리요금제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는 상황을 볼 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12% 요금 감면 혜택을 놓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이통사들로 하여금 다달이 약정 만료 대상자한테 분리요금제 안내 문자를 보내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분리요금제가 아닌 용어를 사용해 낮설고, 그나마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회사 이름까지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이통사 임원은 “분리요금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는 가입자 민원도 많고, 내부적으로도 문제 제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가입자당 매출 감소 걱정 때문에 누구도 적극적으로 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 정부의 행정명령 등을 통해 용어를 이미 알려진 분리요금제로 통일하고, 단말기 유통법 시행 이후 중고 단말기로 신규 가입했거나 재약정을 한 가입자 전체를 대상으로 분리요금제 가입 의사를 되묻게 하는 등의 외부 동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