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또 한 명의 KT 자회사 노동자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 들어서만 심장마비와 같은 돌연사와 자살로 이어진 15번째 죽음. 하지만 KT가 이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22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KT 사옥 정문 앞에서는 지난달 3일 사망한 KTcs 사원, 고 전해남씨의 죽음과 관련해 KT의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9일에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그의 부인과 큰딸도 자리에 함께 했다.
가장을 죽음으로... "저희의 소박한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대학을 휴학한 그의 큰딸 전상미씨는 아버지를 향한 추모글을 읽으며 연신 눈물을 쏟았다. 평화롭고 행복했던 가족에게 던져진 잔혹한 현실 속에 회사를 향한 원망과 한스러움이 담겼다.
"KT는 저희의 소박하고 평범한 꿈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걸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며 또 한 번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회사가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조치를 취해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 아빠는 오랜 시간을 회사와 함께했고, 그만큼 회사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지금 이렇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전해남씨는 지난 10월 3일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인근 도로에서 화재로 불타버린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의 조사 결과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자살'의 가능성이 높았다.
KT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자회사인 KTcs로 옮긴 전씨는 KT의 민주노조인 희망연대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었고 당시 회사로부터 또 다시 사직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가 강제사직을 거부하자 회사는 원거리 발령과 업무전환배치, 임금 절반 이하 삭감으로 압박했다. 이로 인해 그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5000여 명에 달하는 KT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전씨처럼 명예퇴직 한 뒤 자회사인 KTcs와 KTis로 옮겨와 사망한 경우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22명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만 15명이 사망했고 남편이 자살한 뒤 부인이 따라서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돌연사도 4명에 이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해고는 살인이라는 것을 이석채 KT회장은 아직 모른다"라며 "그의 경영철학은 틀렸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이어 "쌍용자동차에서 19명 죽었고, KT에서는 2003년부터 40여 명이 죽었다"며 "그런데 KT는 지난해에 6000억을 주주 배당했다, 그중 3000억을 외국주주에게 배당했고 KT CEO의 연봉은 12억, KT 임원 연봉 총액은 400억에 이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죽이고 얻는 돈으로 자신들만의 파티를 벌이는 탐욕스러운 모습"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사망한 전씨의 부인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퇴근 시간이 되면 초인종을 누르고 '나 왔어'하며 들어오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라며 "남편이 떠난 지 50일이 지났지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어서 빨리 유족에게 사과하고 대화하라"고 말했다. 그는 "양심과 도덕이 있다면 이석채 회장이 나서야 한다"라며 이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후 유가족과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사옥 입구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사옥 문앞을 지키던 직원들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동영 의원이 이 회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사옥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 회장은 자리를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전씨의 죽음 등과 관련해 사과를 요구하자 '고인의 죽음은 KT와 관계없다'며 면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