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감 몰아주기? KT, 이제와 발뺌하지만…
KT가 국산 통신장비 구매 업무를 자회사에 대행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장비 업계는 울상이다. 새로 생긴 구매대행사 이윤을 위해 더 싼 가격에 장비를 제공해야 해 수익성이 그만큼 악화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최근 대기업이 잇따라 소모성자재(MRO) 구매대행을 중소기업으로 이전하는 추세와 역주행하기 때문이다. 협력사와 상생을 강조해온 이석채 KT 회장의 뜻과도 어긋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KT가 최근 100% 자회사인 KT네트웍스를 거쳐 통신장비를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KT와 계약을 앞둔 국산 장비업체에 잇따라 KT네트웍스 관계자들이 찾아와 일부 물량을 KT네트웍스를 거쳐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동통신보다 주로 전송, 교환 등 유선 부문 장비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비업체 한 관계자는 “그 이유를 물었더니 KT가 곧 KT네트웍스를 통해 모든 장비를 구매 할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KT는 지금까지 자사 인프라에 들어갈 장비를 직접 계약했다.
KT네트웍스는 시스템통합(SI), 네트워크통합(NI)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자사 사업을 위해 장비를 사는 일은 있어도 KT망에 들어갈 장비를 구매대행하는 사례는 없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KT 구매파트에 프로세스 변경을 문의했지만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며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3월 관련 회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제가 공론화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KT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검토한 바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KT 관계자는 “그룹 구매전략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뒤 “KT네트웍스가 영업력을 강화하려다 보니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KT네트웍스 관계자도 “구매대행하는 방침을 정한 바가 없고, KT네트웍스가 장비업체를 상대로 구매대행을 제안할 입장도 안 된다”고 밝혔다.
장비 업계는 KT의 이 같은 해명에도 여러 업체가 KT네트웍스에서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정황을 들어 여전히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장비업체 한 사장은 “KT와 계약을 앞둔 물량을 자회사에서 구매대행하겠다며 나선 사례는 두 회사 경영진의 교감 없이 일어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비즈니스라서 현재 면밀하게 검토 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T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도 “KT가 최근 구매 프로세스 변경 검토에 들어갔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KT가 장비 구매대행을 검토하는 것은 자회사 매출 확대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이미 경쟁사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장비 수급과 자회사 매출 보전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KT가 구매대행을 현실화하면 장비 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KT네트웍스라는 유통과정을 한 단계 더 밟으면서 수익성이 나빠진다. 어음결제로 인한 현금 유동성도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구매대행제도를 도입한 경쟁사 계열사는 수수료 명목으로 수익의 4%가량을 가져가고 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