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T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이 말하는 ‘KT 민영화, 그 이후’
KT가 회사 경영에 비판적인 사원을 인사조치를 통해 보복하고(소위 ‘인사보복’), 이를 통해 KT새노조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KT 새노조에 의하면, “안양에서 살고 있는 이해관 위원장에 대해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지역(경기도 가평)으로 발령조치 한 것은 제주 7대 경관 전화투표가 국제전화가 아님을 폭로하는 등” KT의 경영과 이석채 회장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KT새노조에 대한 보복인사라는 것이다.
지난 3월 9일 정직 2개월을 통보받고, 오는 5월 9일 복귀할 예정이었던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은 “이것이 인사보복이 아니라면 무엇이 인사보복인가”라며 회사측 조치를 강도 높게 성토했다. 앞서 KT는 ‘낙하산 논란’을 불러왔던 청와대 대변인 출신 김은혜 씨 인사를 공개 비판한 이해관씨를 한 번도 근무해 본 경험이 없는 현장AS 업무(기존은 ‘영업활동’)로 인사조치하여 이미 보복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또 금년 3월에는 KT 노동자의 연이은 죽음에 대한 이해관 씨의 발언 직후 정직 2월의 징계조치를 취한 바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해관 위원장으로부터 KT 민영화 이후의 문제, 그리고 KT 새노조의 의미, KT와 제주 7대 경관 국제전화 논란, 더불어 노동운동가로서의 소회와 전망을 물었다. (편집자 주: 이 인터뷰 기사에 대한 KT의 공식 입장을 환영하며, 반론권은 항상 열려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 KT 새노조와 이해관 위원장
- 일반 독자들 가운덴 ‘KT’에 복수노조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KT 새노조를 결성한 취지와 활동 내용에 대해 잠깐 소개해달라.
“우선 무척 마음이 괴롭다. 공기업 시절 우리는 나름대로 국가통신망을 지키는 일꾼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생활했고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민영화 이후,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이에 저항하며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어느 날 문득 이 땅의 통신을 책임지는 노동자로서의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국민이 통신비가 비싸다고 아우성치는데 정작 통신노동자로서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못하는 우리 스스로의 처지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구조조정 반대, 노조탄압 반대 이런 것에 머물지만 말고 그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통신을 책임지는 노동자로서 우리 모습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노조를 만들었고 소수지만 통신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편집자 주: KT는 기존 노조와 KT새노조, 이렇게 두 개의 노조가 존재한다. ‘복수노조’를 인정하는 노동조합법 개정 이후 2011년 7월 1일 이후 다른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졌다.)
2. KT 새노조 활동 9개월에 대한 평가
- 지난 2011년 8월 초 KT 새노조가 출범했으니 활동한 지 9개월 쯤 됐다. 10명으로 시작한 노조는 지금 얼마나 성장했나? 아니면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조합원 수는 공식적으로 늘지 않았지만 함께 활동하시는 분은 30명 가량 늘었다. 새노조 결성 이후 KT가 어떻게 경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KT 내부적으로도, 또 사회적으로도 던졌다고 자부한다. 우선, KT 내부적으로는 지금껏 마치 KT가 매출만 많이 올리면 잘 굴러가는 것으로 이해되던 상식을 넘어 이석채 회장 식으로 주주를 위해서 통신 공공성을 희생시키는 경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한 내부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KT 수익이 결국은 국민 호주머니로부터 나온 통신요금인데 이 부담을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수익을 극대화해서 주주들, 그것도 해외주주들에게 퍼주는 게 잘하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9개월 간의 우리 활동에 대해 스스로 많은 보람을 느낀다.
3. KT 기존 노조와 새노조의 관계
- 새노조는 기존 노조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보인다. 특히 이해관 위원장은 2006년 3월 기존 KT 노조로부터 제명되는 아픔도 겪었다. 기존 노조에 대한 아쉬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경영진과 양 노조 사이의 역학관계도 궁금하다.
“일단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기성 KT노조는 완전 어용화되었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최근 KT노동자들 중 스트레스로 추정되는 사망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사망 노동자 수가 자살 14명을 포함하여 204명에 이를 만큼 엄청난 규모다. 이게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되어 올해 2월 노동부장관 특명으로 KT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KT노조가 ‘근로감독을 우려한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심지어 노동부 근로감독에 대해 ‘KT의 경영의지는 물론 조합원의 사기 저하와 업무마비’가 우려된다고까지 했다. 이런 노조가 어용 노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KT노조는 한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민주노조였다. 이슈 선도력과 대중 동원력 모두를 갖고 있었다. 통신주권 수호, KT민영화 반대와 같은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 선도했다. 이런 거대 민주노조를 해체하지 않고는 결코 민영화를 할 수 없다는 게 당시 정권과 자본의 판단이었고 그래서 집요한 탄압이 반복되었다. 김영삼의 ‘국가전복 세력’ 발언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이러한 탄압에 대해 우리는 ‘죽어라’ 투쟁했지만, 결국 의제로는 ‘노조탄압 반대’ 혹은 ‘노조 민주화’라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고, 대중 투쟁력은 끊임없이 약화되면서 어용 노조간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노조가 되고 말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엄청난 해고자가 발생했는데 노조가 마치 해고자들에게 생계비 주면 민주노조인 것처럼 행세하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2006년, 작심하고 기존 KT노조를 비판했다. 그 결과는 노조로부터의 제명이었다. 당시 해고자 신분이었는데 노조의 제명조치로 인해 노조로부터 받던 생계비도 못 받았다. 다행히 KT노조 활동하는 동지들이 도움을 줘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나로 하여금 기존 노조와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많은 동지들이 여전히 노조 민주화가 우선적인 과제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노조 민주화, 노조탄압 반대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히면서 정작 중요한 통신 공공성, 노동인권과 같은 진보적 의제를 우리 스스로 놓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조 민주화를 중심에 놓기보다 통신 공공성을 전면에 내걸고 기성 노조와 투쟁하기보다 그들의 배후에 있는 KT 경영진들에 대해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KT의 인력퇴출 프로그램 ‘CP’
- 작년 8월 초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유서도 없이 자살한 은평전화국 직원에 대한 이 위원장의 언급은 인상적이었다. 기대가 없어 유서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고, 특히 KT 인력퇴출프로그램, 소위 ‘CP’ 관리 (CP: C-player, 성과 부진자)가 노동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이었다. 지금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KT 구조조정의 잔인함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KT 노동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최근 KT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이 죽는다는 얘기를 하면 꼭 묻는 분들이 계시다.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든데 왜 회사를 관두지 않느냐고. 그 질문에 대해 ‘KT를 나가자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더 다니자니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은 게 KT 노동자들’이라고 답변한다. 이래 저래 죽을 맛인게 지금 KT 노동자들이다. KT는 일종의 장치산업이어서 여기서 배운 기술은 KT를 떠나는 순간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인력 퇴출이라는 게 사실상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웬만하면 이 직장에서 버티려고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 놓으면 나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게다가 KT는 흑자 회사여서 일방적인 정리해고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회사가 고안해 낸 강제인력 퇴출 프로그램이 CP프로그램이다. 안 나가려는 사람들을 들들 볶아 스스로 사표 쓰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니 얼마나 잔인할까. KT는 공간적으로는 전국에 사업장이 있고, 직무로는 영업, 민원해결, 고장AS, 장비점검 등 매우 다양한 직무가 있는 직장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인사 발령에 매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 가까이에 있는 지사로 발령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직무도 자신한테 익숙한 직무를 맡느냐 아니냐가 매우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KT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극대화해 놓은 게 바로 인력퇴출 프로그램(CP)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했던 충북의 한 관리자가 양심선언한 바에 따르면, CP 대상자를 원거리로 발령해 미숙한 업무를 부여하고, 실적이 나빠지면 계속 업무촉구서, 경고 등을 발부하여 다시 인사조치하고, 또 다시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무한 뺑뺑이’를 돌리도록 했다. 결국 이런 무한 뺑뺑이에 걸려서 헤어나오질 못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그 끝에 사표를 내거나, 심할 경우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는 단순한 퇴출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업살인’이라는 관점에서도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는 이 프로그램이 과거의 일이고, 지역에서 실시한 것일 뿐이며, 본사 차원에서는 시행한 바 없다고 발뺌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장 내 경우만 해도 2007년 9월 복직해서 지금까지 1년에 한 번 꼴로 직무가 바뀌었다. 근무지도 매년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는 집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가평으로 인사 발령이 난 상태다. 이런 게 인력퇴출 프로그램 매뉴얼에 나와 있는 그대로다. CP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형이다.
원래 CP란 C-player의 약자로 경영학에서 업무부진자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들을 잘 교육시켜 A, B-PLAYER로 만들라는 취지란다. 그런데 KT는 이를 악용해서 강제 인력퇴출 프로그램으로 운영한 것이고, 그게 오늘날 KT를 죽음의 기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5. KT의 조직 규모와 구성, 임금 수준
- KT는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 비율인지, 또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KT 노조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직원 수가 6만5천명이었다. 모두 정규직이었다. 임시직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정규직이 되는 과정의 한 단계였다. 그런데 지난해 KT의 정규직 노동자는 3만 명을 약간 넘는다. 그리고 지난해 직원 평균임금이 6천만원이었다. 평균 근속년수가 20년임을 감안해서 판단해 봐라.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이다. 비정규직은 오늘날 너무나 많아 파악조차 어렵다. 지사별로 도급 계약을 맺기 때문에 파악조차 안 된다. 급여는 정규직의 절반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6. 정규직과 비정규직
- 이 위원장은 정규직이다. 정규직의 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존재한다고 보나?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하는지 궁금하다.
“”차별이 엄청나지요.” 일단 KT AS 개통 업무가 주된 비정규직 근무분야인데 지역 중에서도 아주 일하기 어려운 지역을 주로 비정규직들한테 넘긴다. 이게 무슨 KT직원들이 인간성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부 경영평가에서 노동생산성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일하기 좋은 지역을 대부분 정규직 직원들이 맡아서 하고, 어려운 지역을 비정규직들한테 넘긴다. 나는 급여, 고용 이런 굵직한 차별 말고 노동 과정에서의 차별이 가장 직접적이라고 생각한다.”
7. 인사보복?
- 오는 5월 9일 복귀 예정일에 맞춰 전격적으로 ‘가평’ 근무를 통보받았다. 보복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뭔가?
“인사는 회사에서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사는 곳은 안양이다. 그렇다면 출퇴근이 불가능한 곳(‘가평’)에서 근무할 때 정상적인 업무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경기도 가평에서 근무하라는 것은 누가 봐도 골탕 먹이려고 하는 인사 아니겠나? 회사는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제주 7대 경관 국제전화 사기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나서지 말라는 신호를 우리 새노조에 계속 보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지난 3월 9일, 정직을 통보했다. 정직 사유는 ‘허위사실 유포, 타기관 무단출입’ 등으로 내가 맡은 회사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즉 내가 맡은 일을 못해서 징계받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직 기간이 끝났으면 원래 하던 일로 복귀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도 정직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가평으로 발령을 냈다. 이것이 보복인사이지 어떤 것이 보복인사인가? 보복인사라고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8. 현 이석채 체제에 대해
- 현재 이석채 회장 체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이석채 회장의 경영은 민영화의 폐해의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KT의 정부 지분이 최종 매각된 게 2002년이다. 꼭 10년 되었다. 그래서 민영화에 대한 대차대조표가 이미 나왔다. 한 마디로 국민들에게 비싼 통신비 안겨서 엄청나게 수익을 늘리고, 노동자들 잘라서 비용절감했다. 그래서 벌어들인 돈으로 주주들과 경영진들이 돈잔치한 게 KT민영화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만 지적하겠다.
1) 민영화 당시 경쟁을 통해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던 취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가계 통신비 비중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가계에서 통신비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 노동자들은 민영화 이전 6만5천명이었다. 지금 KTF와 합병을 해서 3만명 남짓이다. 그 엄청난 구조조정의 고통을 한 번 생각해 보라. 3) 반면 주주들은 기업이 버는 족족 다 챙겨갈 수 있었다. KT의 배당 성향은 민영화 이후 늘 50%를 상회했다. 심지어 2009년의 경우 그 해 벌어들인 돈의 94%를 배당했다. 이 배당금들의 절반 이상이 해외주주들 몫이었다면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지에 대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그리고 경영진은 이런 고배당 대가로 엄청난 성과급을 챙겼다. 사례 하나만 이야기하면, 이석채 회장 취임 직후인 2010년 경영진의 보수 한도를 무려 한 해에 124% 올렸다. 4) 이석채 체제에서 KT는 온갖 정치권 낙하산의 소굴이 되었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이석채 회장 자신은 물론, 전 청와대 제2대변인 출신 김은혜 전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동생 등 온갖 인사들이 소위 낙하산 인사로 KT를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 대목에서도 많은 분들이 묻는다. 정부 지분이 0%인데 어떻게 ‘낙하산’이 많이 들어올 수 있냐고. 답은 간단하다. 통신사업은 규제산업이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규제로 인한 수익 감소를 제일 피하고 싶어한다. 예컨대 정치권의 통신비 인하 압박 같은 것 말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정치권 낙하산들이 고위 경영진으로 들어와서 외풍을 막아주는 것이야말로 해외주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영화는 국민에게는 엄청난 통신비 부담을, 노동자에게는 고용불안과 죽음을, 주주-낙하산경영진-정치권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천국을 만들어 준 격이다. 이석채 회장 경영은 그 정점이다. 1%를 위해 99%가 희생되는 경영의 정점, 나는 이석채 체제를 그렇게 평가한다.”
9.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뉴세븐원더스, 그리고 KT의 ‘이상한 국제전화’(?)
-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관련한 이야기 좀 자세히 해달라.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사건의 진행 경과, 뉴세븐원더스와 KT와의 관계 등이 궁금하다.
“제주도 이야기는 조금 길게 하겠다. 맨 처음 KBS에서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묻기를 ‘왜 한국만 국제전화로 투표를 했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고 황당했다. 그 때까지 나도 당연히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제전화로 투표한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뭔가 다른 진실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니 말 그대로 의혹 투성이였다. 001-1588-7715로 진행된 이 투표에 대해 금년 2월 KBS ‘추적 60분’에서 탐사보도를 준비할 때까지도 KT는 이 전화번호가 영국으로 걸려가는 국제전화의 단순한 단축번호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주에서 하루 200만 통이 영국으로 걸려나갔다는 보도를 확인했다. 국제전화 분야에 오래 근무했던 분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규모였다. 그래서 KBS 추적 60분에 출연해서 그대로 얘기했다. 이 때부터 의혹이 본격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한겨레신문에서 이를 보다 정밀하게 추적했다. 이 때도 주로 추적한 게 국제접속료 정산 문제였다. 국제전화는 서로 다른 나라의 전화망이 접속되어야 하는 경우라서 반드시 상호 접속료를 정산하게 된다. 만약 이 전화가 영국으로 걸려간 국제전화라면 영국과의 접속료가 엄청 증가했을 것인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한겨레신문이 이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하였고 그 결과 001-1588-7715 전화는 해외전화망에 전혀 접속하지 않은 채 국내에서 모든 전화가 종료되고 투표결과치를 데이터로 일본에 있는 서버로 보낸 것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결국 ‘국내전화’라는 설명).
이렇게 되자 KT는 001-1588-7715가 ‘영국으로 가는 국제전화의 단축번호’라던 종전의 입장을 바꿔서 ‘국제전화가 아닌 국제투표서비스’이며 ‘일본에 서버를 두었기 때문’에 국제투표서비스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낙하산으로 유명세를 날린 김은혜 전무가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이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해명도 거짓인 게 곧 드러났다. 일본에 서버가 있어서 국제투표서비스라더니 정작 KT가 발행한 통화내역서에는 영국이라고 찍혀 있었다. 한마디로 사기치다가 딱 걸린 셈이었다.
이렇듯 KT는 계속 말을 바꾸면서 거짓 해명을 일삼고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 거짓을 입증할 자료가 계속 튀어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내부에 많은 직원들이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자각을 갖고 끊임없이 KT새노조에 정보와 논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석채 회장은 소수 몇 사람이 회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식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듯 하다. 그 인식의 결론이 이번 가평 인사조치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나를 징계하고 보복인사로 탄압하면 다른 직원들이 겁을 먹을 것이고, 그러면 진실을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덮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석채 회장은 용기있게 진실을 고백하고 국민들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0. 향후 대응 계획
- 이번 인사 조치를 비롯해 이 위원장이 “대국민 사기극”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는 뉴세븐원더스의 제주 7대 자연경관 선정과 관련한 KT의 ‘국제전화’ 의혹 문제에 대해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이미 이 문제는 날카로운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고 본다. 참여연대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고, KT새노조는 이석채 회장을 검찰에 사기죄로 고발한 바 있다. 제주시민단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 청구도 한 상태이다. 온갖 국가기관에서 이 문제를 조사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조사활동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협조할 게 있다면 협조할 생각이다. 이게 기본적인 일차 대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실 규명을 보다 확장시키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게 뉴세븐원더스재단은 모든 나라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했다. 전화투표를 통해 통화료를 발생시키고, 이 수익금을 일정 비율로 배분해서 돈을 벌었다. 이 수익 배분 비율이 전 세계 모두 비슷하다고 하는데, 현재 공개된 것은 인도네시아의 계약 내용이다. 수익의 25%를 뉴세븐원더스재단이 가져가고 통신회사와 컨텐츠업자가 25% 가량을 가져간다. 그리고 나머지 50% 가까이를 우리나라로 치면 범국민추진위원회 혹은 제주도와 같이 캠페인을 주관하는 단체가 가져갔다.
아마 우리나라도 비슷한 구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통화료가 청구된 것은 확인된다. 제주도 행정전화요금만 211억원이 청구되었으니까 전 국민이 투표한 요금을 합하면 족히 수백억원은 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 돈을 가져갔다는 데가 아무데도 없다. KT는 제주도에 41억원을 전화요금에서 감액해주겠다고 하면서 이게 번 돈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감액을 끝으로 KT는 한 푼도 번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원회는 단 한 푼도 챙긴 게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끝으로 뉴세븐원더스 재단은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솔직히 돈을 부풀리기 위해 KT는 국제전화도 아닌 전화를 국제전화로 둔갑시켜 비싼 요금을 청구하다 딱 걸린 걸텐데…. 그렇게서 부풀려진 돈은 도대체 누가 챙겼을지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이에 관해서는 국회가 개원되는 대로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다.”
11. 사태 전망
- 사내의 노동환경은 물론이고, 이번 뉴세븐원더스와 제주 7대 경관 선정과 관련한 문제들까지, 거대 기업의 문제는 기성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전면적으로 문제삼지 않으면 이슈화되기도 어렵다. 외롭고, 힘들 것 같다. 가장 두려운 건 뭔가?
“외롭고, 두려운 건 없다. 주변에 도와주는 분들이 너무 많다. 다만 꼭 이기고 싶을 뿐이다. 진실이 이긴다는 것을 꼭 확인하고 싶다.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라서 정치 쟁점에 묻힐 수 있다는 우려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워낙 여러 증거가 분명하다. 다양한 국가기관에서 조사에 착수해 있으며 제주도 시민단체들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결국은 KT가 사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2. 해고자 생활 12년
-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자. KT에 복귀하기 전 12년 동안 해직자 생활을 했다. 그 12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하나만 소개해달라.
“2006년 KT노조로부터 제명되었을 때 제일 힘들었다. 내가 청춘을 바친 노조로부터 제명되었다는 정신적 충격도 있었지만 당장 호구지책이 막막했다. 신용카드가 무섭다는 걸 그 때 절실히 느꼈다. 해고자 생계비가 끊겨서 돈 들어오는 데는 없는데 카드는 그 다음, 다음 달까지 빠져나가더라. 대기업에서 싸우다 해고된 덕분에 노조에서 주는 해고자 생계비로 크게 어렵지 않게 살아와서 카드 연체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카드 쓰는 것 자체가 미래의 내 소득을 전제로 한 것임을 무섭게 느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신용카드 안 쓴다.”
13. 가족
-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고 안다. 가족들은 이 위원장의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나?
“가족들은 아무래도 노동운동하는 걸 반기는 편은 아니다. 다만 해고, 구속 등을 여러 번 반복했다고는 하지만 대공장 노동조합에서 활동한 덕에 다른 노동운동한 동지들처럼 가족들에게 많은 고생을 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가족들이 특별하게 반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노동운동을 한다는 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위기로부터 많이 멀어진 게 오늘날 현실이다. 아이들로부터 아빠가 ‘그냥 조용히 회사나 다니지 뭐 좋다고 저렇게 싸우나’라는 투의 삐딱한 얘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프다. 아마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봉착한 위기는 생계의 위기 못지 않게 ‘보람의 위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 애들을 보면서 느끼는 나의 솔직한 심경도 그런 것이다. 아빠가 청춘을 바쳐서 한 일의 가치를 아들들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이랄까…”
14. 이론과 실천, 그리고…
- 실천력 뿐만 아니라 이론이 있는 활동가라는 평가를 주변에서 접했다.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이 위원장이 판단하는 현 노동운동의 상황과 고민을 끝으로 듣고 싶다.
“나는 노동자가 자신감이 있으면 자신의 요구를 중심으로 사회를 바꿀 궁리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없을 때 반대로 사회에 자신을 맞추려고, 즉 적응하려 든다. 내 경험으로는 KT노조가 민주노조로 잘 나갈 때는 누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KT 노동자들이 스스로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연대를 추진했다. 그 당시 어렵게 투쟁하던 노조들이 KT노조에 방문하면 웬만한 민주노총 집회에서 모금하는 것보다 많이 모금할 수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연대는 신경쓸 겨를 없이 고용,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자기 앞가림하기 바쁜 모습이다. 각종 사내 자격증, 상품지식 공부 등으로 지쳐있고, 그런 자기 자신의 모습에 불안해 한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의 원천은 두 가지일 것 같다. 하나는 사람, 즉 동지이다. 든든한 동지들이 있으면 소수라도 용기가 나고, 자신감이 생긴다. 나는 매우 소수이지만 새노조 조합원 동지들을 보면 용기가 절로 난다. 이런 자신감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게 운동이고 혁명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 하나의 원천은 의식이다. 이 세상에 대해 두려움 없이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건 과학적 의식 덕분이다. 그래서 꾸준히 독서를 한다. 우리 새노조는 ‘꾸준히 공부하는 노동자’가 되기로 다짐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미국 뉴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그게 노동운동의 독배였는지 아니였는지 알고 싶어서, 어쩌면 곧 우리 앞에 그 잔이 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보충 1. 2012년 5월 9일 이해관 위원장 가평 첫 출근 모습
이해관 위원장이 오전 8:23분. 휴대폰 MMS로 가평 ‘첫 출근’ 사진을 보내왔다. 그래서 첫 출근 소감을 문자로 부탁드렸다. 사진과 함께 올린다.
“일단 너무 멀어요. 도저히 출퇴근은 불가능하겠네요. 오늘은 개인 차를 이용했는데도 2시간 걸렸어요.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30분 이상 걸리겠어요. 사택을 요구했는데 빈 사택이 없다고 최대한 빨리 구해주겠다고 하네요. … 순박한 직장 분위기와 한적한 시골 냄새가 조금 위로가 됩니다.” (이해관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