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불평등 해소 구호만 아니라
죽음 ‘문턱’의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 먼저 내밀어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 22명이 자살·질병 등의 이유로 사망했다. 2009년 당시 쌍용차 해고자 중 정신건강이 정상인 사람이 7%뿐이라는 보고서가 나왔을 때 충분히 예고된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보고도 있다. 2006년부터 올해 4월까지 6년 동안 케이티(KT) 재직·퇴직 노동자 204명이 병이나 각종 이유로 사망했다고 한다. 암·돌연사 등 질병이 일차 사망원인이지만, 그동안 케이티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 쪽이 노조원을 섬으로 유배 보내고, 교환원으로 일하던 50대 ‘아줌마’들을 전신주에 올라가게 하는 등 노동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가해서 퇴사를 유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살·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은 극히 개인적인 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사망의 요인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 회사·계층의 사망률이 다른 노동조건이나 연령대, 다른 계층 사람들의 평균적인 사망률보다 현저히 높다면, 그리고 이들 사망자들의 원인이 유사한 조건에서 초래된 것임이 확인된다면 자살과 병으로 인한 사망은 더이상 개인적인 일이 아닐 것이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그 사회의 정신적 상태가 자살의 빈도를 결정한다고 말했고, 윌킨슨은 불평등한 사회가 사람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자살과 질병이 사회적 원인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역학조사를 통해서 입증해왔다. 한국의 쌍용차나 케이티의 높은 사망자 수는 모든 자료를 종합해볼 때 이를 유발한 확실한 요인이 존재한다. 부당해고와 해고압력으로 인한 배신, 분노, 좌절, 인간적 모멸감, 신뢰 상실, 사회관계 단절,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당장 자살이나 질병으로 신음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상당수도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우리 국민 130만명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특히 여성의 경우 저소득층이 중상위층보다 3배나 우울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요컨대 경쟁에 밀려 실직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빈곤층은 당장의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이다. 사회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뒤늦은 근로감독 강화 등의 처방이 무슨 소용이 있나? 폭력 연구자인 길리건은 자긍심이나 존엄성, 자존심 없이 살아가기보다는 상대방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자리잡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학교폭력, 엽기적 범죄는 우리 사회체가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다.
윌킨슨의 연구에 따르면 육체·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제는 불평등 해소다. 사회 구성원의 99%가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미 사회적 재해의 성격을 갖게 된 노동자 자살과 스트레스로 인한 병사를 여전히 개인적 문제라 생각하는 지배담론과 그것에 기초한 기만적 처방이 바뀌지 않는 한, 자살과 폭력은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족, 이웃, 조직이 보살핌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과거에는 스트레스가 자살로 이어지는 통로를 막았지만, 이제 보살핌 조직이 없어졌다. 노조, 시민단체도 손을 놓고 있다.
사회적 치료는 이 우울한 자본주의 한국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병든 사람들의’ 사회, 즉 ‘병든’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의, 인권의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사회관계가 무너졌는데 무슨 비판, 대안이 울림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 노동운동, 사회운동, 정치권도 구조개혁(불평등 해소)만 소리 높여 외치지 말고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