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이통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카카오톡이 음성통화 서비스를 시작하자, 이들은 "업계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떤다. 이통사 가운데 '보이스톡'을 전면 허용하기로 한 곳은 엘지유플러스(LG U+) 하나뿐이다.
엘지 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은 자사의 4세대 음성통화(VoLTE)에 자신감을 보이며, 고객이 "고품질 음성통화와 무료 통화가운데 선택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통사가 품질로 승부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 안에서도 의견이 '공멸'과 '경쟁'으로 나뉘는 셈이다.
누구 말이 옳을까. 누구 말이 맞는지 따지기에 앞서, 이통사가 보이스톡을 차단하거나 요금을 올려 받을 권리가 없다는 점부터 분명히 하자.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 이건 '망 중립성' 이전에 공정거래법 준수의 문제다.
공정거래법 제3조 2항은 시장지배자가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유지 또는 변경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거래하거나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통사들이 보이스톡에 대해 벌여 온 일들은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게다가 이통사 주장과 달리 보이스톡은 '공짜'가 아니다. 요금제에 가입한 뒤 쓰는 서비스가 어떻게 공짜인가. 4만 원 요금제든 5만 원 요금제든 고객은 구매한 데이터를 원하는 방식으로 쓸 자유가 있다. 특정 요금제 이상만 보이스톡 음성통화를 허용하는 것은 심각한 선택권 침해다.
전면 허용해도 매출 영향 없어
▲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 <모바일 인터넷전화가 이동통신시장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의 일부. 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전면 허용해도 이통사 매출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게다가 이통사의 엄살과 달리, 보이스톡 등 모바일 인터넷통화(mVoIP)를 전면 허용해도 이통사의 매출은 타격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12월에 공개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가 이를 입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요금제에 인터넷 통화를 개방해도 이통사의 매출 감소는 0.74%에 지나지 않는다. 통화 음질이 개선돼 성공률 100%가 된 상태에서 전면 허용하는 경우조차 매출은 2.36%밖에 줄지 않는다.
보고서는 "전체 스마트폰 가입자에게 mVoIP(모마일 인터넷 전화) 이용을 허용하더라도 이동통신사업자 매출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통사가 고품질 통화서비스로 대응하면 아무런 타격 없이 영업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둘의 경쟁관계가 이통사에게 서비스 개선의 자극을 주고 그 혜택을 소비자가 누린다는 점에서, 보이스톡 허용은 통신산업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보이스톡을 허용하면 업계가 공멸된다'는 말이 허풍임을 보여주는 증거는 이것 말고도 많다. 이통사들은 카카오톡이 문자 메시지 매출을 떨어뜨리더니, 이제 음성통화까지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카카오톡은 이통사 문자 매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지난 몇년 동안 카카오톡, 마이피플, 챗온 등 무료 문자메시지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됐다. 그러나 이통사의 문자메시지 매출은 변함 없이 건재하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통3사의 문자메시지 매출은 2009년부터 2011년 2분기까지 전혀 줄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통사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카카오톡이 위협이 되지 않는 이유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해 놓고 있다. 무료 문자와 이통사 문자 서비스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업계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KT 관계자는 '카카오톡 등은 간편한 대화를 할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기존 문자메세지는 여전히 업무용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무료 문자메시지가 기존 문자서비스의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분석했다."("무료문자 시대지만 문자 매출 '건재하네'" - 2011년 9월 30일 치 아이뉴스24)
인터넷 음성통화를 전면 허용해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인터넷통화와 기존 음성통화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밀한 사이에서는 보이스톡을 쓰겠지만, 그 밖의 사적 관계나 업무용으로는 변함 없이 전화번호를 이용할 것이다. 더구나 이통사 음성통화는 요금제에 포함돼 있는 데다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을 지니고 있어, 사적 통화에서도 한동안 우위를 지킬 것이다.
보이스톡으로 이통사 새 수익 모델 열려
▲ 애플의 화상채팅 서비스 '페이스타임'. 최근 3세대(3G)통신망에서도 서비스를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화상통화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화상채팅 '페이스타임'을 통신망에서도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하자, SK텔레콤은 '보이스톡처럼 페이스타임을 차단하거나 제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쩌면 이렇게 욕먹을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설사 화상통화를 막는다 하더라도 아무 실익도 없다. 오히려 가입자만 잃게 될 것이다.
화상채팅은 음성채팅보다 훨씬 제한적 용도로 쓰인다. 한 마디로 '얼굴 보고싶은 사람'에게만 쓰는 것기 때문이다. 애틋한 사이라고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에 한해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실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예컨대 직장 상사를 모바일로 보고 싶은 '변태'들은 많지 않다.
이통사들이 보이스톡을 차단하거나, 제한하거나, 고의로 품질을 떨어뜨리는 짓은 자해행위와 같다. 자기들이 뭘 먹고 사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음성'과 '데이터'를 구분해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 이분화된 수익모델은 곧 종말을 고할 것이다.
앞의 기사에서도 말했지만, 음성통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소셜미디어로 늘 연결돼 있어 '전화 통화가 필요 없는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데이터를 많이 쓰게 만들어 매출을 높이고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개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제 데이터 하나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데이터망을 못 쓰게 만드는 게 자해행위가 아니고 뭔가.
인터넷 음성·화상통화 허용은 이통사의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현재는 음질과 화질 모두 낮은 수준이지만, 데이터 압축과 전송기술이 발달하면서 고품위 통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통화는 곧 소셜미디어와 통합될 것이고, 여기에 음악이나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가 결합하면 데이터 장사는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이통사 수익 악화는 방만경영의 결과
▲ KT는 경영난에 허덕이면서도 BC카드를 인수했다. 또한, SK도 하나은행 지분과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했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부진한 영업실적에도 주주들에게 고액배당 잔치를 벌였다.
결국 카카오톡, 보이스톡, 페이스타임 등은 장기적으로 통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반가운 손님인 셈이다. 3세대 통신은 '콸콸콸 마음대로 쓰라'며 무제한 요금제를 경쟁적으로 도입한 탓에 어렵겠지만, 어차피 4세대(LTE) 환경에서는 '무제한 요금제 없을 것'이라고 못박지 않았는가.
카카오톡과 상관 없이 이통사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을 떠나 세계를 봐도 인터넷 음성·화상통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일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통신사들이 적극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다. <타임> 연구보고서 <위협인가, 창의적 기회인가>는 2016년까지 인터넷 음성통화가 모든 통화량의 최고 20%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값비싼 국제전화를 급속도로 대체하는 경향을 보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스카이프(Skype)는 이미 국제통화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인터넷 음성통화 시간은 150억 분이지만, 2015년에는 30배가 뛰어 5천억 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시장인 것이다.
이제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이통사의 수익 악화가 누구 탓이냐는 것이다. 이통사들의 영업부진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통신망을 활용한 경쟁서비스가 등장하리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예견돼 온 터다. 그런데도 한국 이통사들은 보이스톡나 페이스타임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허둥댄다. 스스로 얼마나 준비가 안 된 회사인지 입증하는 셈이다.
한국 이통사가 해 온 일들을 보면, 이들이 도대체 뭘 하는 회사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KT는 경영난에 허덕이면서도 BC카드를 인수했다. 당시 회사가 구조조정의 여파로 과로사하고 자살하는 직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SK도 하나은행 지분과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했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부진한 영업실적에도 주주들에게 고액배당 잔치를 벌였다. 기술개발이나 서비스 개선보다는 몸집을 불리고 주가를 높여 손쉽게 돈을 벌려 한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방만한 경영과 나태한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잃게 된 책임을 왜 카카오톡과 소비자가 져야 하는 것일까.
와이파이 막던 방통위, 이제 보이스톡 막아
▲ 신세대는 교류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24시간 연결돼 있어 특별히 전화로 연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사진은 로마의 거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남자가 애정을 표현하는 순간 여자는 단말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한심한 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도 마찬가지다. 와이파이 접속 규제나 종편심사 등을 통해 이미 '역량'을 입증한 바 있어,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방통위는 보이스톡에 대해 '시장 자율에 맡긴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방통위가 '가장 잘 하는 일' 즉,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작정한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실수는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방통위는 통신업계 요구대로 일정 금액 이상의 요금제에 가입한 사람들만 보이스톡을 쓸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차단하도록 승인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된다. 공정거래법은 시장 지배자가 시장 질서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규칙이다. 그런데도 시장 교란행위를 승인해 놓고 버젓이 '시장 자율'을 말한다. 역시 방통위답다. 시장에 맡기고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면, 지금 받고 있는 월급도 시장의 '보이지 않은 손'에 넘길 일이다.
▲ 카카오톡의 경쟁서비스 '스카이프' 로고. 현재 전세계에 6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국제전화의 25%를 소화해 낸다.
이번 논란에 대해 이동통신 업계와 정부 모두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미래'를 말한다.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카카오톡이야말로 한국에서 나온 가장 뛰어난 모바일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서히 자생력을 갖춘 생태계로 진화해 가고 있다. 문자 서비스에서 '보이스톡'으로 확장된 카카오톡은 게임이나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서비스의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
이통사는 5천만 가입자의 카카오톡이 위협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미국의 경쟁 서비스 스카이프가입자는 6억 명이 넘는다. 업계와 정부는 한국에서 어렵게 태어난 미디어 생태계를 어떻게 키워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플랫폼과 미디어 생태계가 돈을 쏟아 붓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 않는가. 삼성이 카카오톡을 따라서 만든 '챗온'이 죽쑤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내가 이통사 경영자라면, 카카오톡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기보다 회사에 얼마를 투자할지 고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