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실서 해고된 직원 양심선언
“부장 등 5명 전담반 구성해 작업
2005~2007년 1470명 퇴출 목표”
회사 “일반적 경영활동…강제 안해”
강도 높은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케이티(KT)의 본사에서 일하다 지난달 말 해고된 직원이 “다른 회사 벤치마킹 등을 통해 우리 팀이 퇴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고, 프로그램이 실제 운영됐다”고 밝히면서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케이티 본사 차원에서 퇴출 프로그램이 기획·시행됐다는 증언과 자료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케이티노동인권센터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을 공개했다.
2003~2005년 케이티 본사 기획조정실에서 일했던 박찬성(44)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05~2007년 적정 인력규모를 산정하고, 초과 인력에 대한 퇴출 프로그램 마련 및 퇴직인력 규모 계산 등의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익을 더 많이 내기 위해 전체 매출액 대비 19%대로 인건비를 유지하는 ‘중기 인적자원 관리계획’을 수립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부장을 포함해 5명이 전담반을 만들어 퇴출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공개한 ‘중기 인적자원 관리계획’을 보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를 19%대로 유지하기 위해 2007년까지 1470명을 퇴출시키도록 돼 있다. 퇴출 방식은 우선 부진인력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들에게 상품판매 등의 새로운 업무를 맡긴 뒤 실적이 부진할 경우 퇴직을 제안하고 이를 거부하면 징계나 타 지역 전보, 직위 미부여 등의 조치를 하도록 했다.
케이티는 박씨가 공개한 문건에 대해 “회사가 작성한 것이 맞고, 부진인력을 관리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기업에서 진행되는 일반적인 경영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케이티 관계자는 “기업에 필요한 적정인력을 따져봤고 초과된다고 결론이 나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부진인력을 관리했다”며 “명예퇴직은 있었지만, 외부에서 말하듯 강제로 퇴직시킨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케이티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은 부진인력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부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케이티가 2005년 작성했다고 인정한 1002명의 부진인력 명단에는 개인정보와 함께 케이티 노조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민주동지회’ 소속 여부, 노조 간부 경력뿐만 아니라 2001년 114업무 분사와 2003~2004년 대규모 명예퇴직 과정에서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버텼는지 등도 꼼꼼히 적혀 있다.
케이티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케이티의 경우 흑자 기업이어서 정리해고를 할 수 없는데, 비밀리에 퇴출 프로그램을 운용해 직원들을 쫓아내고 내부 경쟁을 강화시켜 노동자들이 업무 스트레스로 잇따라 숨지고 있다”며 “이는 부당해고일 뿐만 아니라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고 있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고 비판했다. 양심선언을 한 박씨도 “불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관련 담당자 이외에는 극비로 추진됐다”고 증언했다. 부진인력 명단에 포함된 1002명 중 601명이 이미 퇴직했으며, 2003~2009년 케이티에서 1만2000여명이 구조조정을 당했다.
은수미 의원은 “케이티의 행위는 노동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학대’해 강제로 해고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케이티는 퇴출 프로그램의 실체를 인정하고,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다시 하라”고 촉구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