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직 검찰간부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11일 서울 공덕동 유진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증거물품을 담은 상자를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5 CNBNEWS
지난 2007년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현직 부장검사 김모 씨가 유진그룹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제공받은 의혹과 관련, 검찰과 경찰이 동시수사에 나서면서 해묵은 검경 수사권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이중수사로 인권침해 우려 등이 제기되는 상황인데도 두 수사기관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독자수사'를 강행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경찰이 검찰간부의 거액수수 의혹을 파헤치는 와중에 검찰이 특임검사를 지명해 수사에 뛰어들면서 비롯됐다.
이에 경찰은 ‘사건 가로채기’라며 반발, 독자수사를 강행했다. 검찰은 같은 사건에 대해 두 수사기관이 동시에 수사하는 상황이 생기면 즉각 송치지휘권을 발동해 '교통정리'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지만 여론이 경찰 쪽으로 기울자 눈치를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반대로 경찰은 아예 검찰의 송치지휘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이중수사 사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12일 김 검사가 자금을 받았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김 검사가 대가성 있는 자금을 받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진술과 정황을 확보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김 검사에게 수백만~수억원대의 자금을 보낸 5~6명을 대상으로 한 참고인 조사에서 사건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자금을 보냈다는 진술을 일부 받아내고 김 검사가 받은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김 검사나 그와 가까운 검사 동료, 소속 검찰청이 김 검사에게 돈을 보낸 사람과 관련된 수사 또는 내사를 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찰은 우선 김 검사가 유진그룹 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은 2008년 즈음에 김 검사나 소속 검찰청이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합병 추진과 관련해 내사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사실조회 및 자료요청서를 서울중앙지검에 보냈다.
유진그룹 측은 총 6억원 상당의 자금이 김 검사에게 건네졌지만 그룹 차원이 아닌 개인 사이의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유진그룹 측은 “유경선 그룹 회장의 동생이 평소 알고 지내던 김 검사에게 전세자금 명목으로 빌려준 돈”이라며 “하이마트 인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또 KTF(현 KT)가 지난 2008~2009년경 김 검사에게 접대성 해외여행을 제공한 의혹이 있다고 보고 유사한 시기에 서울중앙지검이 해당 기업을 수사한 기록이 있는지를 확인 요청했다. 경찰은 KTF가 수사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해외여행비를 대납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남중수 전 KT 사장은 납품업체 선정 및 인사 청탁과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2009년에 집행유예를, 조영주 전 KTF 사장은 사장을 연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금품을 전달하고 납품업자에게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경찰은 13일부터 유진그룹 관계자 등 김 검사에게 거액의 자금을 입금한 주요 참고인을 소환할 예정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확보된 자금 거래 내역과 참고인 진술 및 정황 등으로도 김 검사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압수물 등 관련 기록을 신속히 검토해나가는 한편 관련자들을 본격적으로 소환,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임검사팀은 기록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당사자인 김 검사를 곧 소환할 예정이다.
특임검사팀 관계자는 “경찰은 경찰 나름대로 수사하는 거고 우리는 우리 방식 대로 수사를 할 것”이라며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찰이 김 검사 사건에 대해 송치 지휘를 하면 재지휘를 건의할 것”이라며 “검찰보다 먼저 수사에 착수한 만큼 이번 사건은 경찰이 끝까지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이 같은 사건을 두고 제각각 수사를 진행하면서 정작 의혹 규명작업은 양쪽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특임검사팀이 이미 김 검사의 사무실과 자택, 유진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해 경찰로서는 이미 확보한 계좌추적 결과를 토대로 참고인 조사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또 주요 참고인들이 검찰과 경찰에 이중으로 소환되는 등 인권침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과 특임검사가 독자 수사를 강행하고 있지만 검찰이 송치지휘권 발동을 미루고 있어 초유의 이중수사 사태로 인한 혼란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