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원조' 이석채 KT 회장, 낙하산에 무너지나
참여연대, 200억 원대 배임 혐의 고발... 주총 앞두고 진퇴 갈림길
▲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 26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동통신 전시회인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3'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
ⓒ KT 제공 |
이석채 KT 회장이 외국 출장 중에 뒤통수를 맞았다. 참여연대에서 27일 이 회장이 회사에 200억 원대 손해를 끼쳤다며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 이 회장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2013' 기조연설로 화려한 조명을 받은 직후였다.
도시철도공사에는 '손해볼 투자'... 친척 회사에는 '무리한 투자'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채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스마트(SMRT) 애드몰' 사업 관련 60억 원, 이 회장과 8촌 관계이자 이명박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관련 회사 2곳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각각 60억 원, 77억 원씩 모두 200억 원대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스마트 애드몰' 사업은 서울 지하철 5·6·7·8호선 역사와 전동차 LCD 모니터 등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2140억 원대 광고권 임대 사업으로, 지난 2010년 8월 참여연대 고발로 재판이 진행 중인 음성직 전 도시철도공사 사장의 배임·뇌물수수 사건과도 관련돼 관심을 끌고 있다.
참여연대는 "KT가 수백억 원 적자를 예상하고도 이석채 회장 지시에 따라 이 사업을 강행하고, 당초 5억 원만 투자한 특수목적법인(SPC)에 60억 원을 재투자하면서까지 계열사로 편입했다"며 KT 내부 기밀 문서도 공개했다.
2010년 말 KT '가치경영실'에서 작성한 보고서('SMRT Mall 사업 지분출자 및 경영정상화 방안' 등)에 따르면 스마트몰 사업 예상 매출이 그해 3월 추정한 6118억 원에서 4351억 원으로 크게 줄어 투자시 NPV(순현재가치)가 -165억 원이고, 2011년 4월 기준으로는 -375억 원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당시 이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이 최우선 과제로 서울도시철도공사와의 상생 방안도 강구할 것"이라며 사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고 이듬해 5월 60억 원을 추가 투자하기에 이른다.
이에 김철기 KT 홍보팀장은 "스마트 애드몰 사업 계약은 이 회장 취임(2009년 1월) 이전인 2008년에 이뤄졌고 재투자도 계약 당시 연대보증 규정에 따른 것"이라며 "당시 계약이 잘못됐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 회장의 업무상 배임과는 관련 없다"고 밝혔다.
반면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이 회장 취임 이전인 2008년 10월에는 KT에서 지급 보증 없이 특수목적법인에 지분 양도 후 철수할 수 있도록 사업 위험을 최소화하는 의사 결정을 했는데 이 회장 취임 이후 오히려 출자금을 늘리고 지급 보증을 통한 연대보증 의무 설정과 적립금 설정이라는 불리한 약정을 체결해 KT에 손실을 끼쳤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미디어오늘> 보도를 근거로 KT가 2012년 7월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이 회장으로 있던 ㈜사이버MBA에 77억7500만 원을 투자해 지분 50.5%를 인수하면서 주당 액면가보다 9배 정도 비싸게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2011년 11월 유 전 장관이 운영하던 아헤드코리아와 함께 설립한 오아이씨랭귀지비주얼(현 KT OIC)에 유상증자를 통해 57억 원을 추가 투자한 뒤 계열사로 편입한 것도 문제삼았다. 결과적으로 당시 사업성이 불투명한 회사에 투자함으로써 당시 일부 지분을 판 이 회장 친척에게 금전적 이익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KT는 "㈜사이버MBA 지분은 당시 회계 법인에서 본 가치보다 싼 값에 인수한 것이고 오아이씨는 유종하씨 지분을 직접 산 것이 아니라 증자해서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3월 주총 앞두고 퇴진 압박... 친정 체제 구축-내부 단속 강화
▲ 2012년 12월 31일 사측으로부터 해고통보 받은 이해관 KT 새노조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본사 올레스퀘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익제보에 대한 KT의 보복해고'라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 |
ⓒ 조재현 |
KT는 적극 방어에 나섰지만 이번 고발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뤄진 데 주목하고 있다. 검찰 수사 상황에 따라 이석채 회장 진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1월 취임한 이석채 회장은 지난해 2월 연임에 성공해 2015년 초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취임 당시 대표적인 'MB맨'으로 분류돼 '낙하산 인사' 논란을 일으켰듯이, 박근혜 정부의 또다른 '낙하산'에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KT가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기업이고 그동안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사장 임기가 유지된 점을 들어 이 회장 임기 보장을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 전임인 남중수 사장의 경우 개인 비리로 임기 중 물러난 전례가 있어 낙관할 수만은 없다.
KT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KT 회장을 노리고 인수위와 '친박'에 줄을 댄 인사들은 이 회장 낙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KT 내부에서도 나름 줄 대기에 나서 체제 유지를 자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최근 인사에서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친정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아울러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국제전화 사기 사건을 폭로한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을 지난 12월 말 해고한 데 이어 역시 '내부 고발자'인 박찬성 전 KT 팀장을 상대로 최근 6000만 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내부 단속에도 나섰다.
KT는 이 회장 취임 이후 아이폰 도입을 비롯한 혁신 노력을 계속해왔고 통신 사업에서 벗어나 미디어·금융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 7대 자연경관 국제전화 사건을 비롯해 문제 사원 퇴출 프로그램(CP) 운영과 대규모 정리해고·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시 대포폰 제공 등으로 시민사회단체 눈 밖에 난 상태다.
안진걸 팀장은 "KT는 중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인데도 7대 경관 국제전화 사기·노동 탄압 같은 불법을 저질렀고 이 회장 역시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 등 정부 지분을 총동원해서라도 이번 주총에서 이 회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