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29 17:51l최종 업데이트 13.04.29 18:08l 김시연(staright)
▲ '내부 고발자'인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이 29일 광화문 KT 올레스퀘어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특정업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하고 이석채 회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김시연
"오늘이 이석채 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마지막 회견이 되길 바란다."
봄바람이 거센 29일 오후 광화문 KT 올레스퀘어 앞에 '이석채 퇴진' 현수막이 다시 펄럭였다. 지난달 14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참여연대와 KT 새 노조 등은 이날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KT가 일부 '무자격' 하청업체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며, 특혜 비리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무자격 업체에 일감 몰아주기... 내부 제보도 묵살"
실제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KT 공사·용역·물품 구매 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정보통신공사의 경우 대부분 업체는 1회 정도 발주한 반면 I사, J사, H사 등은 각각 12회, 16회, 20회씩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이들 업체들은 계약 당시 159개 'KT 협력사 풀(Pool)'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용역업에 필요한 엔지니어링협회, 정보통신공사협회 등에 등록하지도 않은 '무자격' 사업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을 폭로한 KT 내부 제보자는 지난 2011년 4월 당시 정성복 KT 경영윤리실장에게 이 문제를 직접 제기했는데도 실질적인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제보 이후 문제가 된 업체들이 뒤늦게 자격을 갖춘 점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권영국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등록이 안 된 업체에게 전기공사 등 도급을 주는 건 이석채 회장과 측근 관련 업체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 추구 행위로 의심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KT는 "협력업체 풀 내 공사 발주를 의무화한 내부 규정은 2011년 7월부터 적용했기 때문에 해당 업체와 계약할 당시엔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당시 KT는 이런 제보를 받은 적이 없고 제보자가 경영윤리실장을 만나 이 문제를 직접 얘기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은 "제보자는 정성복 실장에게 이 문제를 직접 얘기했고 이런 제보를 해줘서 고맙다라는 답변까지 들었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제보자는 결국 해고됐다"고 지적했다.
이석채, '내부 고발자' 갈등에 사임설까지... KT '뜬소문' 일축
▲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해 9월 17일 오전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콘텐츠 생태계 동반성장 방안'을 발표한 뒤 막간을 이용해 생각에 잠겨있다.
ⓒ 김시연
지난 2009년 1월 취임 이후 이석채 회장은 내부 고발자와 계속 갈등해왔다. 2009년 말 KT 직원 5992명을 정리해고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해고자와 내부 제보자를 통해 KT 노동 탄압과 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른바 'CP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 폭로를 시작으로,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 투표를 국제 전화로 가장해 더 비싼 요금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 계속 이어졌다. 내부 고발이 계속되자 KT는 내부 고발자에 대한 징계나 보복성 인사에 그치지 않고 해고와 명예훼손 소송 같은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이런 강수는 오히려 부당한 보복 조치라는 비난과 함께 또다른 내부 고발에 직면했다. 결국 새 노조와 참여연대는 지난 2월 27일 이석채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도시철도공사 스마트몰 사업과 친척 관련 회사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KT에 200억 원대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나 법원 판결도 KT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2일 이해관 위원장 해고는 부당하다며 KT에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이 위원장 해고를 지난해 4월 '제주 7대 경관 국제전화 투표 부정 의혹'을 제보한 데 대한 '보복 조치'로 본 것이다. 앞서 권익위는 지난해 8월에도 이 위원장 원거리 전보 발령이 보복 조치라며 보호조치 결정을 하기도 했다.
이어 대법원도 지난 25일 KT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CP프로그램)'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해고된 노동자 손을 들어준 항소심 판결에 대한 KT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이에 앞서 노동부 역시 지난해 5월 이석채 회장과 KT를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방통위는 지난 1월 제주 7대 경관 전화 투표와 관련 국제전화 번호 표시 위반으로 KT에 과징금 350만 원을 부과했다.
이렇듯 이석채 회장에 대한 시민단체 비난이 거세질수록 정부도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 '낙하산 인사' 교체 작업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이 회장이 조만간 청와대 압박에 밀려 사임할 거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현재 지방에서 비공개로 열리고 있는 KT 이사 워크숍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KT는 펄쩍 뛰었다. KT 한 임원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 통화에서 "(이석채 사임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특정 세력이 KT를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언론사를 상대로 이 문제를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이석채 사임설'이 확산되는 걸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 와중에도 KT 경영진과 '내부 고발자'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초 부당 해고 판정으로 복직하자마자 전북 전주에서 연고도 없는 경북 포항으로 '원거리 발령'을 받은 KT 직원 원병희씨는 이날 "조직 쇄신 차원에서 나를 전보한다고 했는데, 이석채 회장을 비롯한 낙하산 인사들이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진정한 조직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