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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KT 임단협 찬반 투표 개입…투표 조작 논란 다시 부각

ㆍ노동자 자살 부른 KT 임단협안

“15년간의 사측으로부터 노동탄압이 이젠 끝났으면 한다.”

KT전남본부에서 일해온 김모씨(53)는 KT를 고발하는 성격의 유서(사진)를 남기며 목숨을 던졌다. 최근 노조가 위임하고 사측이 만든 임단협안의 투표에서 일부 지부가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공개된 김씨의 유서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KT전남본부의 50대 노동자가 사측의 노동탄압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자 18일 저녁 KT 노동자들이 서울 광화문 본사 앞에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노조, 사측에 임단협안 위임
노동자에 불리한 조항 수두룩
투표조작 의혹 녹취록도 나와


■ 유서에 비친 KT의 ‘부당노동행위’ 의혹

KT전남본부에서 일하던 김씨는 16일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함께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에선 그가 A4용지에 ‘6월10일’자로 쓴 유서가 나왔다.

KT 노조 조합원 200여명의 모임인 ‘민주동지회’가 공개한 김씨의 유서에는 그가 겪어온 KT의 ‘부당노동행위’가 나열돼 있었다. 김씨는 주로 노조 조합원으로서 한 표를 정당하게 행사하지 못하는 데 대한 좌절감을 토로했다.

KT는 그동안 단체교섭 등 찬반투표에서 반대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노동자를 압박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김씨의 유서에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발언들이 나온다. “KT 노동조합 단체교섭 찬반 투표 후 검표가 두려워서 항상 사진으로 남긴다”는 말이 가장 함축적이다.

김씨는 “2010년, 2011년 투표 전 개인 면담 시 반대 찍은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갈 수 있으니 알아서 찍으라 엄포를…”이라며 팀장 이름을 적었다. 김씨는 사측으로부터 자신들의 요구와 다르게 투표할 경우 쫓겨날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 셈이다.

유서에 따르면 이런 압박은 올해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2013년도 항상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모 팀장은 직원들 모인 자리(회식 등 조회석상)에서 똑바로 해라 하면서 엄포를 놓는다. 뭐든 강압적이다”라면서 “반대표를 찍은 것으로 판명된 직원은 어김없이 불려가 곤욕을 치르고 나온다”고 적었다. 유서에서 그는 “이런 현실 속에서 KT 노동조합원이 주권(소중한 한 표)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15년간의 사측(KT)으로부터 노동탄압이 이젠 끝났으면 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남겼다.


■ 논란 많았던 2013년 임단협안

김씨는 유서에서 올해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고 썼다. 올해 KT에서 진행됐던 투표는 2월의 대의원 선거, 지난달의 임단협안 찬반투표다. 특히 임단협안 투표의 경우, KT 노조는 ‘노사상생’ 명목으로 임단협안을 회사에서 만들도록 위임했다. 지난달 24일 노조 조합원들은 회사가 만든 임단협안을 놓고 투표했고 조합원 82.1%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해봐야 한다”(KT의 한 노동자)는 녹취 증언이 나올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임단협안이 쉽게 통과된 것이다.

사측이 만든 임단협안에는 ‘임금 동결’이 포함돼 있었다. 2012년도 KT의 당기순이익이 7000억원대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반발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가장 예민하게 여겨졌던 대목은 ‘면직제도의 도입’이었다. 사측은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과반수 노조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올해엔 임단협안과 함께 면직제도 도입 여부까지 찬반투표에 부쳐진 것이다.

이 면직제도는 노동자 수십명을 자살 혹은 돌연사로 몰아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KT의 ‘인력퇴출프로그램’을 아예 제도로 만든 것이다. 노동자들은 평가를 통해 ‘F’를 정해진 숫자 이상 받게 되면 ‘퇴출’당할 수 있다. 또 이번 취업규칙의 개정에는 비연고지 발령이 가능한 경우를 ‘징계 등을 받은 자’에서 ‘부서장이 지정한 자’까지로 넓혔다. 임의로 비연고지 발령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인력퇴출프로그램은 대법원도 문제로 지적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징계를 당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온 KT 노동자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청주지방법원은 이 프로그램의 부당성을 인정하고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며 대법원도 이 판결을 확정했다.

아울러 민주동지회는 절차적 문제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조태욱 KT 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노동조합 규약상 노조 집행부 사업계획에 대한 심의 의결은 전국대의원대회의 주요 기능과 역할”이라면서 “하지만 현재의 어용노조는 대의원대회를 거치지 않고 임단협안을 회사에 백지위임했다.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 투표용지 교체 녹취록 공개돼

이처럼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대목이 포함된 임단협안과 면직제도 도입안이 쉽게 통과된 것을 두고 논란이 진행되던 중에 투표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KT 민주동지회가 주축이 되고 문규현 신부 등 외부인사가 함께 참여해 만든 KT 노동인권센터가 개표 중에 투표용지 교체 장면을 봤다는 증언이 담긴 녹취파일을 지난 2일 공개한 것이다.

녹취파일을 보면, 전남의 모 직원은 투표 종료시각 전 개표현장에 갔다가 함이 모두 뜯겨져 있었고 노조 지부장이 또 다른 투표용지를 쏟아붓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 직원은 “우리가 투표한 용지를 싹 빼고 이미 투표해놓은 찬반 용지를 지부장이 싹 쏟아붓더라”고 증언했다. 그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면서 “투표 결과를 보고 직원들이 놀랐다. 아예 포기 상태다. 누가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했다. 그는 “그런 소리(자신이 목격한 이야기)를 하면 나 혼자 역적으로 될 것 아니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당시 인권센터가 공개한 또 다른 녹취록에는 과거 노조 선거관리 대표를 맡았던 한 직원이 민주동지회 조합원에게 “제가 4년 전 (선거에서 찬반 결과를) 조작했던 장본인”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나온다.

그는 “본부에서 (도달해야 하는 찬성률) 프로티지(%)를 알려주면 (투표함) 뚜껑 열고 맞춘다”고 밝혔다. 김씨의 유서에 담긴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다.

KT 측은 “노조 임단협 투표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KT 노조 측은 “김씨는 다른 사연도 있어 자살한 것으로 안다. 유족을 존중해 밝히지 못할 뿐”이라면서 “유족이 요청한다면 (투표 조작에 대해) 조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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