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정치인 홍사덕이 왜 KT에 필요하다는 말인가
KT 앞에 붙은 수식어가 있다. 국민기업이다. 정부기관에서 공기업, 민간기업으로 변신하는 줄곧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이끈 덕분이다. 민영화 때 국민주 청약으로 얻은 명예다. 이 국민기업이 망가지고 있다.
영업 이익이 30% 이상 뚝뚝 떨어진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난달 롱텀에벌루션(LTE) 시장 2위에 오른 게 뉴스일 정도로 무너진 가입자 기반도 아니다. 바닥을 기는 주가 또한 아니다. 수익 악화는 보유 부동산과 케이블 처분으로 언제든 벌충할 수 있다. 희미한 업계 내 존재감과 주가도 8월 경매에서 1.8㎓ 주파수 확보로 단번에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뿌리 채 흔들린 경영구조와 조직, 기술 리더십을 회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민영화 10년이 넘었는데 외풍이 여전하다. 더 심해졌다.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무너졌다. 경쟁사보다 굼떠도 늘 저력을 발휘했던 조직이다. 공채를 중심으로 오늘의 KT를 만든 인재들이 바깥으로 밀려나며 외인부대만 판을 친다. 구심점이 없고 열정도 식었다. 이를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부채질한다.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정치권 인사가 물밀 듯 들어왔다. 이제 새 정권 사람들 차례다. 지난 3월 자문위원으로 들어온 홍사덕 전 의원이 하이라이트다. 정치권 인사 영입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자본이 정치권력까지 움직이는 시대라지만 기업에게 정치는 여전히 `갑`이다. 더욱이 통신은 규제산업이다. 통신 기업이 권력에 촉각을 기울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홍 전 의원은 통신, 융합산업과 거리가 멀다. 규제 회피에 도움 줄 것도 없어 보인다. 그가 KT라는 기업보다 회장 개인의 보호막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지난 봄 난무한 이 회장 교체설이 요즘 쏙 들어갔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경제사절단엔 턱걸이로 합류했다.
민영 KT는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경영구조를 꿈꿨다. 포스코가 모델이었다. 이상철-이용경-남중수 등 내부 승진 사장으로 이어져 온 구상이다. 잇단 정치권 낙하산이 이 구상을 꿈으로 만들었다.
이석채 회장이 한 일이 적지 않다. KTF 합병,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군살 빼기, 아이폰 도입 등이다. 그의 뚝심 없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합병과 구조조정은 그 이전부터 추진했다. 너무 속도를 낸 바람에 시너지 효과가 적고 후유증에 시달린다. 아이폰 도입엔 국내 업체를 견제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이 비판은 지금 KT의 통신장비 구매 시장에 더 격렬하다.
정작 KT다운 혁신은 없었다. 4세대(G) 통신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줬다. 자동차, 금융 등 사업 확장도 경쟁사 흉내에 그친다. 내부 혁신 역량이 부족한가. 이런 의문이 이 회장으로 하여금 외부 인사 영입에 매달리게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경영 쪽 사람들만 끌어들였다. 그것도 기술경영(MOT)이 아닌 일반 경영이다. 자산 매각, 주주배당처럼 시장 가치를 높이는 일엔 정통하지만 기술 비즈니스 혁신 역량이 부족한 이들이다. 이 회장처럼 KT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지만 재정이 아닌 기술 전문가인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이 4G 리더십을 이끈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KT는 숱한 통신 기업과 사람을 배출하며 ICT 코리아를 이끌었다. 미래에도 이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기업의 소명이다. 정치권 영입도 백번 양보해 이 회장이 KT를 이렇게 만들고자 스스로를 보호하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자. 더 이상 안 된다. 임직원과 협력사의 좌절감, 박탈감이 폭발 직전이다. 정치는 여기에 불을 붙일 뿐이다. 국민기업 KT를 나락으로 내모는 지름길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