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실패' 눈감고, 정부 '협박' 시작한 KT노조
[비평] 노조 주파수 광고, KT지원 의혹…이석채 '홍위병' 자처하나
이동통신 3사의 ‘주파수 전쟁’이 노동조합들이 참가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3일 KT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래부의 주파수 할당 방안이 “재벌을 위한 불공정한 정책"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SK텔레콤 노동조합도 성명을 내고 ”연간 매출 24조원에 달하는 거대 공룡기업 KT는 자숙하라“고 맞받았다.
주목할 것은 KT노조이다. 행보가 거침없다. 전면적 ‘투쟁’을 선언하는 양상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만나 직접 입장을 전달하겠다며 정부 과천청사 앞 기자회견 참가를 ‘투쟁 명령’으로 하달했을 정도이다. 정윤모 KT노조 위원장은 ‘7월 2일 자정을 기해 전국 조합 간부들에게 투쟁 명령을 선언’하며 “재벌기업에 특혜를 주는 부당경매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30만 KT그룹 가족과 국민 통신권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 조합원을 향해 7월 3일 1시까지 과천종합청사 잔디구장 앞으로 집결하라 명했다. ‘불참자는 사유서를 제출’하란 구체적 지시까지 노조 지침으로 내려갔다.
뿐만 아니다. KT노조는 3일자 27개 신문에 대대적인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을 향한 절절한 호소와 함께 주파수 경매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을 경우 ‘목숨을 건 투쟁을 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겁박이 병행됐다. ‘호소’와 ‘협박’의 투 트랙을 거침없이 질주했다. KT노조가 하루 만에 태워버린 이 신문광고 비용은 대략 8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스스로 30만 KT가족을 대변한다는 KT노조이다. 하루에 8억을 광고비로 집행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KT노조가 한 해 걷는 조합비는 대략 6~70억 규모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KT노조 본부에서 직접 사용하는 금액은 2~30억 규모이다. 8억이면 1년 예산의 1/3 정도 되는 금액이다. 이 금액이 하루에 사라진 것이다. KT노조는 규모가 큰 만큼 년 간 단위로 운영 예산이 정해져 있다. 이 정도 금액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KT노조 전임자들의 한결 같은 의견이다. 물론, 누적된 ‘쟁의 기금’에서 사용할 경우에는 가능할 것이다. KT노조는 지난 10여 년간 변변한 쟁의가 없었다. 쟁의기금이 제법 쌓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쟁의기금을 사용하려면 쟁의 상황에 대한 노조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 이 결의를 하지 않은 채 쟁의기금을 사용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
▲ KT그룹 노동조합은 3일 주요 중앙 일간지 및 경제지 27개 매체에 대대적으로 주파수 경매안 관련‘의견 광고’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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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비용 정확히 얘기 않는 KT노조, 급하게 구한 신문 1면…사측의 '지원' 없었나?
KT노조는 정확한 광고비용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았다. 노조 홍보국장은 “정책실장만이 안다”고 했고, 정책실장은 “한 글자당 3만원을 달라고 했단 말을 들었는데, 정확한 금액은 실무자가 안다”며 말을 에둘렀다. 일각에서는 이 금액이 사측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광고가 집행된 시점이나 일괄적으로 지면을 구매한 배경 역시 그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노조 관계자는 “광고 게재가 급하게 결정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광고를 해보지 않은 노조가 급하게 모든 신문 1면 지면을 일괄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측 지원설에 대해 하지만 KT노조는 펄쩍 뛰었다. KT노조 차완규 정책실장은 ‘사측의 8억 지원설’을 묻자 “절대 그렇지 않다”며 “어디까지나 정당한 조합비로 집행되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광고 집행과 광고비 집행이 어느 단위에서 결정된 것이냐’는 질문에 KT노조 홍보국장은 “집행위 차원이나 이런 건 아니었다”고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KT노조는 “주파수 경매 문제는 사측의 문제가 아닌 통신시장 전체의 질서를 결정짓는 일로 KT 종사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투쟁과 광고 게재의 배경을 설명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사측의 ‘홍위병’으로 동원됐다는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3일 ‘의견 광고’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자 KT노조는 2시에 예정되어 있던 ‘미래부 장관 면담 기자회견’을 스스로 취소했다.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종일 통화가 어려울 것이라던 노조 정책실장은 홍보국장에게 ‘사측 8억 지원설’을 묻자 10분도 안 되어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 KT노동조합은 주파수 문제와 관련해 투쟁명령 1호를 하달했다. KT노동조합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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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도모하는 이들에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 KT노조와 홍위병의 닮은 점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제창했던 구호 중 가장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가 모택동이 말한 ‘조반유리’(造反有理)이다. 일을 도모하는 이들에겐 모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는 뜻이다. 모택동은 이 말을 홍위병들에게 주며 그들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했고, 홍위병들 역시 이 말을 표어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창했다. KT노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딱 그러한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KT노조 차완규 정책실장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회사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전체 통신 시장의 대의와 정부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하기 위해 나선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주파수 전쟁이 사측을 대신해 통신사 노조의 대리전이 되고 있단 시각에 대해서도 “통신 3사 노조는 협의체를 구성해 통신 문제 전반을 협의하는 파트너”라며 “어제 기자회견 전에도 먼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노조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며 “각자가 처한 입장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10년간 제대로 된 쟁의한 번 없던 KT노조가 이례적인 ‘투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의명분에 입각한 것이고, 주파수 할당의 파장이 KT그룹의 미래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구성원 입장에서 나서지 않을 수 없단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러나 그런 KT노조의 주장 어디에도 ‘통신의 공공성’이나 ‘전파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합리성’ 같은 당위성은 찾아지지 않는다. KT노조는 앵무새처럼 사측의 주장만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며, 스스로 ‘파트너’라고 부르는 경쟁사를 ‘재벌 프레임’에 묶어 내고 말겠다는 의지만 번뜩일 뿐이다.
미래부와 경쟁사 규탄에 앞서 이석채 회장의 책임부터 물었어야
▲ 이석채 회장을 비롯한 KT 경영진이 LTE와 4G 관련해 애초에 판단착오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주파수 경매가 이렇게까지 '과열'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KT노조는 그러나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이석채 KT회장. ⓒ뉴스1 |
KT노조가 주파수 문제에 대한 정당한 개입을 하고자 했다면, 주파수 경매가 이렇게 과열된 상황에 대한 진단부터 시작했어야 마땅했다. 주파수 문제를 밖으로 호소하기 전에, 경쟁사를 ‘재벌 프레임’으로 옭아매기 전에 회사가 어찌하여 ‘D블럭’을 갖지 못하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외통수에 빠진 것인지를 따져 물었어야 마땅했다. LTE 서비스 초기 KT는 주파수 대역 선택과 방식에 있어 모두 결정적인 ‘오판’을 저질렀다. KT경영진은 800MHz 대역이 아닌 900MHz 대역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고(KT가 버린 800MHz는 현재 LG유플러스가 주력LTE망으로 사용하고 있다), LTE망이 아닌 wibro로 4G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초기에는 더 저렴하고 안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영적 판단 착오와 실패야말로 현재 주파수 경매를 ‘과열’로 이끈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KT의 이 판단 착오에 대해 KT노조는 말이 없다. 그리고 이런 경영 실패의 본질은 회피한 채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만 돌리고 있다. 회사 경영진의 실패에 침묵하는 노조가 느닷없이 이 실패를 보상받으려고 하는 경영진의 입장에 대의명분을 앞세워 동참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설령 타당한 구석이 있다고 해도 공감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홍위병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극단적 행동을 불사했다. 시대의 문제가 너무 부당하니 극단적 행동을 통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대적 ‘처형’을 정당화했었다. 그러나 홍위병의 활약과 기대와는 달리 그 시절의 중국 사회는 더 큰 혼란과 혼돈 그리고 반목에 휩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진단은 옳지 않았고, 행동은 합리적이지 못했으며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주창하는 명분과 실제 잇속을 챙기는 이들 사이에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KT노조가 이석채 회장의 ‘홍위병’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옳다. 소속 조합원이 자살해도 침묵하던 KT노조가 난데없이 주파수 문제에 '해결사'를 자처하는 모양새는 건전하지도, 전혀 위압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KT노조가 가세한 이후 주파수 경매는 더 큰 혼란과 반목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KT뿐만 아니라 통신 3사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노조를 비롯한 외곽의 이들을 여론전에 동원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꼴불견이다.
KT노조가 정녕 주파수 문제에 합리적 인식을 갖고 있고, 노동조합의 존재 근거에 대한 올바른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KT가 특정 주파수를 꼭 가져야 한단 사측의 주장에 찬동할 것이 아니라 KT가 왜 그 주파수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비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장은 여전히 이석채이니, 책임을 묻기도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