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 재벌 KT? "독단경영 재벌 못지 않아" 밀려난 정통 KT맨 박탈감 심해
"재벌기업과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비(非)재벌기업은 KT가 유일하다."
이석채 회장이 지난 6월 통합 KT 출범 4주년을 맞아 내세운 `KT 국민기업론`이다. 오너가 없는 대기업으로서 재벌기업이 받아온 수많은 특혜에 맞서 싸워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협력사, 자회사 등에서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오히려 이 회장 취임 후 독단적인 경영이 심해졌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KT 특유의 시스템 경영이 사라지고, 경영진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경영`의 폐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KT 협력사가 각종 장비발주 비리 잡음을 언론사에 몰래 제보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협력사 생태계에 균열이 `CEO 리스크` 진원지의 한축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지난해 한 국내 통신장비 업체 사장은 KT 시험평가(BMT)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KT가 평가에서 1위를 한 자사 장비를 제치고 다른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한 것이다. 글로벌 통신장비 회사끼리 경쟁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평가에서 4위를 한 업체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KT 전화 사업에서 단독으로 공급 가능 장비를 시연한 한 글로벌 업체가 선정에 탈락하고 국산 업체가 수주에 성공했다. 해당 글로벌 업체는 KT 구매파트에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해당 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 같은 사례는 KT와 협력사 간 신뢰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협력사 한 관계자는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과 다르게 KT는 RFP 공개, BMT 등이 투명하게 이루어진 편"이라며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경영진에서 직접 결정을 하는 형태로 구매방식이 바뀌며 절차의 의미가 희석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시스템 경영`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KT 내부에서도 실무진을 중심으로 이 같은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KT에 오래 근무한 `정통 KT맨`들이 외부영입 인사 중심의 경영진에게 밀리며 주도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무진의 불만은 때때로 `이석채 회장 퇴진설`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한 글로벌 업체 임원은 "KT내부에서 이석채 회장의 거취는 거의 금기어지만 실무 임원 중심으로 불만이 많다"며 "협력사 불만을 종합적으로 수집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자회사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KT스카이라이프의 경영도 본사 차원에서 좌지우지되는 형편이다.
KT스카이라이프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흑자를 올렸는데도 배당, 콘텐츠펀드 조성, 야구단 등 본사 사업에 이익을 전달해야 하는 구조"라며 "콘텐츠 수급 결정은 물론 작년 임금협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본사 영향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털어왔다.
때로는 KT 외부조직이 사업에 관여하기도 한다. 본지는 지난해부터 KT 이석채 회장과 절친한 사이를 강조한 한 컨설팅 회사가 각종 KT 관련 사업을 협력사에게 제안하고 다닌 정황을 확인했다.
KT의 변신에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는 시선도 있다. 통신장비 업계 한 관계자는 "KT가 1년 전부터 기술조사팀을 적극 활용해 제안 단계부터 부실 기업을 골라내고 있다"며 "협력사가 워낙 난립해 있는 상황이라 경영 효율성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