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정치권 외풍' 휩싸인 인사·경영…실적 놓치고 민심도 잃는다
[ 2013년 07월 09일 ]
국민기업 KT가 `CEO 리스크`에 흔들린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석채 회장의 거취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경영의 난맥상 조짐마저 보인다. KT 임직원이 온통 지배구조 문제에 관심이 쏠리면서 2분기 실적도 경쟁사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전망됐다.
불안한 CEO 리스크가 경영 리스크로 번지면서 국민기업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영화 11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흔들리는 KT 경영구조를 독립 전문경영체제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회장 거취 문제는 최근 친박 인사 영입 논란과 서유열 사장의 갑작스러운 미국행으로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KT는 올해 정권과 가까운 인사를 잇달아 영입했다. 업무 역량과 관계 없는 인사를 고액 연봉을 주며 영입하는 것은 직접적인 경쟁력 저하는 물론이고, 직원 사기 저하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다시 비등했다. KT는 지난 3월 친박계 핵심 인사인 홍사덕 전 의원과 김병호 전 의원을 잇달아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홍 의원은 친박계를 대표하는 핵심 인사고, 김 의원 역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공보단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뉴라이트 후신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상임이사 등을 거친 변철환씨를 경영연구소 상무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들 인사 영입을 두고 청와대 물밑 통보설 등 각종 추측과 소문이 난무한다. 일각에선 이 회장의 임기를 보장받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말도 나온다.
정권과 관련된 외부 인사 영입은 이번뿐 만이 아니다. 앞서 MB 정부 시절에도 김규성 전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팀장과 이태규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영입됐다. 서종렬 전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과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 윤종화 전 청와대 경제비서실 행정관도 KT로 왔다.
외부 인사 영입 방식은 공개적인 임원부터 최근에는 사외이사, 감사, 경영고문, 법률고문 등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KT 내외부 인사들에 따르면 KT 본사 및 계열사에 영입된 인사는 100~200명 선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꾸준한 정권 인사 영입에도 불구하고 정부와의 관계에 이상 징후가 포착된다. 이 회장은 지난달 역대 최대 규모로 꾸린 방중 경제사절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다. 박 대통령 방중 기간 진행된 국빈 만찬에 경제사절단 참여 기업 중 불참한 곳은 KT를 비롯해 포스코와 효성 3곳에 불과했다. 이 중 포스코는 지난 5월 방미 행사 때 참여했기 때문에 이번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기업 KT의 위상과 통신 분야 입지 등을 감안하면 만찬에 불참한 것이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최근 이 회장의 최측근 인사 중 한명인 서유열 KT 사장(커스터머 부문장)이 갑자기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난 것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대외 활동을 늘리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거취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회장은 주기적으로 간담회 등을 통해 외부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콘텐츠 동반성장(9월), 디자인경영(10월), 새싹꿈터 방문(11월) 등의 간담회에 이 회장이 직접 나섰다. 매월 한번씩 회장이 직접 언론 간담회를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거취가 다시 논란이 된 시점에도 합병 4주년 간담회, 중국 모바일아시아엑스포 연설 등에 직접 나섰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KT는 지난해부터 회사의 발전보다는 이 회장 개인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직원의 동요도 상당하다. 내부에서 신망 받던 선배는 외부로 밀려나고, 외부에서 낙하산 인사가 영입돼 고위직을 차지하는 현실에 상실감과 박탈감이 커진다. 업무보다 줄대기에 치중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혼란은 경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KT는 유선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였고, 무선시장에서는 2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시장이 모바일로 빠르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경쟁력이 약화됐다. 특히 롱텀에벌루션(LTE) 시장에서는 최근에야 LG유플러스를 따라잡고 2위에 올랐다. LTE 어드밴스트 상용화는 통신 3사 중 가장 늦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부진도 심각하다. 마케팅 경쟁으로 통신사 실적이 전체적으로 부진했지만, 2분기에 대폭 회복한 경쟁사와 달리 KT는 한참 뒤졌다. 올해 2분기 실적 전망을 보면 경쟁사는 25~30% 이상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KT는 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KT가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지배구조가 서둘러 안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불안정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교통정리가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 민영화된 KT를 더 이상 정권의 영향력 아래 두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권과 연관된 인사가 임명되면 해당 인사는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기업 경쟁력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면서 “KT의 경우도 경영독립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장치 마련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정권과 관계없이 전문성 있는 인사가 CEO로 와야하고, 임명된 CEO의 독립경영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