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노사가 '화합'해 주파수로 '진격'하는 까닭은? | ||||||||||||||||||
[분석]'미래부 아웃'보다 차라리 '이석채 파이팅'을 외쳐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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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부 아웃' 외치며 기념비적인 집회 개최한 KT노조 KT노조가 9일 개최한 ‘미래창조과학부 주파수 부당경매 철회 촉구 결의대회’는 기념비적인 집회라고 할 만하다. KT노조의 전체 조합원 수는 2만 4천여 명 정도이다. 이날 집회에는 조합원 5600명이 참가했다고 하는데, 이는 전체 조합원의 23%에 달한다. 한 노조 관계자는 “단일 조합의 집회로는 200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조직률을 기록한 큰 집회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KT노조 정윤모 위원장은 그야말로 ‘총력전’을 선언했다.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있는 지금을 “KT 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지을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규정했다. 노조의 주된 임무인 임단협에서는 회사에 백지위임을 했던 노조가, 노조원이 노조의 투표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침묵하던 노조가, 정규직 노동자 기준으로만 자살자가 6명이나 나와도 말 한마디 없는 노조가 10년 만에 크게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KT노조 측은 주파수 경매가 워낙에 중차대한 일이라 사측과 노조의 입장이 다를 수도 달라야 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일이 커지고 비상한 상황이 됐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래부 아웃’을 외치고 있지만 그래서 공허하다. 200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노조 집회를 열었지만, 그래서 무기력하다.
노조를 동원한단 비판, 관제 집회·어용노조 비난 사이의 이석채 회장 KT노조의 집회를 바라보는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과 업계의 평가는 야박함을 넘어 싸늘하다. KT노조 집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자처한 윤종록 미래부 2차관은 "앞에서 출발하는 선수가 뒤에서 출발하는 선수보다 더 많은 참가비를 내는 규칙"이라며 KT노조의 주장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주파수 정책을 바꿔달란 요구는 "정책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KT노조가 어용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저 관제 집회가 얼마나 힘이 있겠느냐. 오히려 이석채 회장이 하다하다 이제 노조까지 동원한단 소리 밖에 더 듣겠느냐”고 말했다.
KT사측과 노조를 제외한 모두가 KT노조의 집회를 사측의 입장을 노조가 ‘대리’해주는 성격의 관제행사라고 보고 있다. KT새노조는 “지금 KT노동자에게 필요한 슬로건은 ‘30만 KT가족 생존권 위협하는 미래부 해체하라'가 아니라 '노동인권과 통신공공성 외면하는 정치 낙하산 이석채 회장 퇴진하라'입니다”라며 KT노조의 어용적 행태를 비판했다.
주파수 할당과 이석채 회장 거취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왜 KT가 이처럼 주파수 문제에 비상식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사활을 다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은 사측 입장에선 ‘노조를 동원한다’는 비판이 부담스럽고, 노조 입장에서도 ‘관제 집회나 하는 어용 노조’라는 비아냥거림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가 폭주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정말 인접 대역 주파수를 따내지 못하면 ‘30만 KT 가족의 생존권이 위협’당하기 때문일까?
이에 한 통신 업계 관계자는 “KT노조가 집회를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이 관계자는 “주파수 할당 경매 방식이 확정된 상황에서 여론전을 통해 이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KT가 더 잘 알고 있다. 정말 본질이 주파수 문제라고 한다면, 여론전과 같은 공중전보다는 미래부만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진지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KT는 느닷없이 그것도 주파수 경매 방식이 확정된 이후에 판을 벌이고 있다. 이 여론전의 의미는 주파수를 넘어 다른 데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지목한 것은 결국 이석채 회장의 거취 문제이다.
주파수 할당과 이석채 회장의 거취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별개의 문제로 보기에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통신업계에선 이미 청와대에서 이석채 회장에게 ‘퇴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KT의 한 사외이사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었단 설이 파다하다. 물론, 이에 대해 KT측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석채 회장 퇴진설을 물을 때마다 KT 관계자는 “그런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강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KT가 강하게 부인할수록 이석채 회장의 퇴진 시나리오는 확장되고 있는 모양새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역대 어느 정권을 가리지 않고, KT회장 자리는 항상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KT의 지배구조 자체가 정치권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리품’으로 인식되어왔던 것이 통례였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이 통례는 아예 KT 지배구조를 정의하는 ‘질서’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KT는 그야말로 ‘낙하산’의 ‘향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치권 낙마자들의 ‘밥줄’이었다. 이석채 회장조차 이런 ‘낙하산’의 규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석채 퇴진설의 가장 큰 뿌리는 여기에 있다. 그가 전 정권의 ‘낙하산’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이번 정권이 그를 지켜보겠느냐는 것이다. 악순환의 딜레마지만, 이 딜레마는 KT가 스스로를 비겁하게 지켜온 현실이기도 하다.
'KT의 박태준', 이석채 퇴진 시나리오는? 물론, 90년대 중반에 이미 정통부장관을 지내고 급변하는 통신 환경 속에서 정부와 삼성의 견제를 뚫고 ‘아이폰’을 들여오며 KT를 무선 시장에 안착시킨 이 회장의 공로를 들어 그를 내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KT에서 이석채 회장의 위상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포스코의 고 박태준 회장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석채 대안 부재를 이유로 그의 지속을 전망하기도 한다. 임기 초 잇따른 인사 실패로 위기를 자초했던 박근혜 정부가 무리하게 KT 회장을 교체하는 드라이브에 나서지 않을 것이고, 다른 공기업이 그러한 것처럼 인재풀이 협소해 막상 할 사람도 마땅치 않단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이석채 보위 논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의 경우 연봉 포함 1년에 40억 이상을 받는다. 재벌 오너를 제외하면 KT 회장만큼 연봉을 받고 영향력이 있는 자리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회장 퇴진설이 돈 이후 그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만 해도 어림잡아 수십 명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힘으로 이 회장을 밀어내자고 결심하는 것이 어렵지 결심 이후에 새로운 회장을 떨어뜨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지적이다.
주파수까지 마무리 짓겠다? 이석채 퇴진의 마지노선 이처럼 이석채 회장의 퇴진을 둘러싼 ‘설’들이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만약 업계의 ‘소문’대로 이 회장에 대한 퇴진 통보가 어느 수준에서건 있었다면, 이 회장 측은 필경 ‘방어 논리’를 펼쳤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주파수’를 바로 그 방어 기제로 보고 있다. 이 회장 측이 ‘주파수 문제까지만 마무리 하겠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는 꽤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통신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이 회장의 공로를 인정하는 선에서 ‘아름다운 퇴진’을 하는 편이 모양새가 좋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추진하던 일까지는 마무리 짓고 자진해서 물러서는 편이 후를 도모하기에도 유리하다. 그 교감이 ‘주파수’에서 이뤄질 수 있단 지적이다.
만약, 그렇다면 KT입장에서는 주파수 문제를 최대한 오래 그리고 강하게 끌고 갈 필요가 있다. 오래 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간을 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강하게 끌고 간다는 것은 주파수 문제로 최대한 내부를 결속해 여차하면 발생할 상황에서 결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회장의 아름다운 퇴장을 최대한 성대하게 준비하는 과정으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 측 입장에서 보자면 ‘아이폰을 도입해 KT를 도약시키고, 주파수 문제를 해결해 미래를 준비한 회장’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은 매우 탁월한 ‘작품’이다.
이석채 "좋아하는" 노조와 이석채 자리 보존하려는 사측의 '화합'과 '진격' 결국, KT에게 주파수는 벼랑 끝에서 벌이는 마지막 잔치 성격이 짙어 보인다. KT가 인접 대역을 따내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비용의 문제일 뿐이다. KT노조는 이를 두고 ‘재벌 특혜’를 주장하고 있다. KT가 재벌들의 농간으로 비용을 더 쓰도록 미래부가 판을 짰다는 주장이다. 맞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미래부의 입장은 KT에게 특혜성 정책임이 분명하니 경쟁사에 비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단 것이다. 옳다고 까진 할 수 없겠지만 미래부 입장에서도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KT가 인접대역을 차지할 수 있다면, ‘30만 가족의 생존권’을 운운하는 노조의 주장은 합리성이 없다. 이 설득력 없는 주장을 바탕으로 주파수 경매의 재고를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차라리 사측의 입장을 대리하는 노조가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이석채 회장이 자리를 보존할 시간을 벌고, 바깥에서 뭐라고 하건 KT 내부를 강하게 결속해 주파수 국면 이후, 이석채 회장 이후의 싸움을 대비하는 수순 말이다.
KT노조는 27개 일간지에 1면 광고를 낸 비용 8억이 사측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9일 집회에 참가한 KT노조 신제주지부의 한 조합원은 ‘노조 집회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빠졌는데 사측의 압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회사 때문에 다 여기 동원된 건데 회사에서 압박한단 것이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다. ‘애초 이석채 회장이 주파수 정책을 잘못해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우린, 이석채 좋아하는 노조다”고 말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KT노사가 그야말로 ‘화합’을 이뤄 한 몸으로 ‘진격’하고 있다. 어제 집회의 구호는 ‘미래부 아웃’보다는 차라리 ‘이석채 파이팅’이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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