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에 권한 위임…실적 따라 성과급
부서장에겐 직원 20% 삭감 권한도
회사 “영업이익 개선 모델 만드는 것”
일부 “실적 위해 인력 감축할까” 우려
케이티(KT)가 현장 영업부서에 ‘책임경영제’를 전격 도입했다. 저조한 경영 실적을 메우려는 의도인데,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내부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11일 <한겨레>가 입수한 케이티의 ‘현장영업부서 책임경영제 파일럿(시범실시) 시행안’에 따르면, 8월부터 수도권서부고객본부와 서초·수원지사 등 9곳이 책임경영에 들어갔다. 우선 부서별로 예산 운영방식이 달라진다. 과거엔 본사가 예산편성액을 내려보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지사가 예산 목표를 정해 본사에 편성을 요청하고 독립적으로 예산을 운영하게 된다. 소속 직원의 월별 판매량과 개통 물량 등을 토대로 ‘이익’을 얼마나 냈는지도 따진다.
부서별 성과 평가 항목에는 100점 만점에 30~50점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익개선도’라는 새로운 항목이 추가됐다. 이 점수에 따라 내년 3월 성과급이 지급된다. 해당 부서장은 기존 정원(TO)의 20% 범위 안에서 인력을 마음대로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게 됐다. 부서장이 알아서 판촉비나 인건비 등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상품을 팔아 이익을 많이 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익에 목맬 수밖에 없는 건 케이티의 요즘 형편 탓이다.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케이티는 이동통신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전 분기보다 영업이익과 가입자 수가 줄어들었다. 더구나 이 달 초에는 일주일 동안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나홀로’ 영업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가입자 6만여명을 경쟁업체에 뺏겼다.
케이티 쪽은 책임경영제에 대해“현장 성과에 기반한 손익관리 모델을 수립하고, 하반기 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장 직원들은 영업 실적 압박이 결국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케이티는 일부 지사에서 ‘씨피(CP·씨등급-플레이어) 비밀 퇴출프로그램’으로 부진 인력을 쫓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고, 지난 6월엔 노·사가 최하위(F) 등급을 연속 2차례 받은 직원을 면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에 합의한 바 있다. 케이티 직원 수는 민영화 직전인 2001년 4만4000여명에서 올 3월 3만2287명으로 크게 줄었다. 이에 대해 케이티 관계자는 “20% 인력 조정은 지역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영업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것일뿐, 구조조정 수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임경영 시범실시 부서로 선정된 곳에서 일하는 케이티의 한 직원은 “직원들이 자기 개인돈 몇 만원을 얹어줘 고객을 유치하는 이른바 ‘자뻑’도 종종 하는데, 책임경영 실시로 판촉비가 줄어든 상태에서 영업실적을 높이려면 자뻑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케이티는 다른 이통사처럼 직영·위탁대리점을 통해 무선전화 상품을 팔기도 하지만, 옛 전화국에서 전환한 지사가 각 지역마다 남아있는 터라 직원들이 유·무선 전화, 초고속인터넷 상품을 경로당이나 지역상가 등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판매하기도 한다. 이 직원은 “이석채 회장 등 고위직들은 엘티이 경쟁에서 뒤쳐지는 등의 잘못된 경영판단에 책임지지 않으면서, 책임경영이랍시고 아래 있는 직원들만 쥐어짜니 현장에선 허탈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