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 근처 대리점주 회사 횡포 증언
“본사 직원 밤 10시까지 매장 대기도”
지원약정 불이행 항의한 점주엔
전산망 접속 차단해 불이익 줘
KT “영업시간 연장 강요 안했다”
“‘회장님’이 출퇴근할 때 지나가면서 매장을 볼 수도 있는데, 그때 불 꺼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대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서 케이티(KT) 휴대전화 대리점을 운영한 안혜리(46)씨는 황당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석채 케이티 회장이 취임한 뒤인 2010년께였다. 안씨는 케이티 소속 매장관리 직원으로부터 “선릉점이 위치한 곳이 회장님의 출퇴근 통로니까 다른 매장보다 10분 일찍 열고 10분 늦게 닫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리점 공식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30분까지였다. 어느 날엔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야 한다”며 관리 직원이 매장 안에서 함께 대기했다.
본사는 영업시간과 관련해 늘 압박을 줬다. 2009년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면서 영업 시작이 오전 9시로 당겨졌다. 안씨의 대리점이 5분 늦게 문을 연 어느 날, 9시에 매장을 찾은 고객이 케이티의 트위터 계정에 ‘매장이 문을 열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케이티 소속 직원은 안씨에게 ‘윗분’들의 호통을 알리며 “한 번만 더 같은 일이 발생하면 제품 공급을 끊겠다”고 말했다.
부당한 연장 영업도 감수해야 했다. 케이티가 휴일 운영을 하는 대리점에 가산점을 줬기 때문이다. 가산점에 따라 매겨지는 본사의 정책지급금이 없으면 경영이 어려운 대리점들은 최대 1.2점(100점 만점)인 휴일 운영 가산점을 무시하지 못했다. 안씨는 계속된 휴일·연장근무에 직원들이 못 버텨 결국 대리점을 처분했다고 말했다.
케이티가 대리점주를 압박하기 위해 ‘전산망 접속 차단’을 활용한 정황도 보인다. 오영순(45)씨는 2007년부터 서울 성북구에서 휴대전화 및 케이티 유무선 통신 상품 판매 대리점을 운영했다. 케이티는 매장 인테리어 비용 지원 등 지원약정서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오씨는 2008년 본사 윤리경영실에 이를 신고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2009년 어느 날 오씨의 대리점과 본사 사이의 전산 접속이 차단됐다. 가입자 유치, 수납 처리 등 대리점주의 모든 업무는 전산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산 접속이 차단되면 영업이 불가능하고 영업 관련 자료도 열람할 수 없었다. 오씨는 2010년 초 대리점을 폐점한 뒤 2011년 “지원약정을 지키라”며 케이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법은 지난 6월 케이티가 ‘인테리어 비용’ 등 미지급한 지원금 2290만원을 오씨에게 지급하라고 1심에 이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소송은 현재 상고심이 진행중이다.
오씨는 소송과 별도로 지난 14일 참여연대와 함께 “전산망 접속 차단 행위로 사업활동을 방해했다”며 케이티를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안씨도 영업시간 연장을 강요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또다른 대리점주 박아무개씨와 함께 신고에 참여했다. 앞서 케이티 사옥 청소업체 ‘굿모닝에프’가 부당한 일감 끊기 등을 이유로 케이티를 공정위에 신고(<한겨레> 5월3일치 22면)하고 지난 13일엔 민주당 ‘을지로(을을 지키는 길)위원회’가 대리점주에 대한 케이티의 불공정 행위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케이티가 ‘갑의 횡포’를 저지른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케이티 홍보팀은 “공식 영업시간 외에 야간·휴일 영업 등은 하지 말라는 게 내부 지침이며, 안씨 사례는 지침을 거스르는 일부의 문제일 뿐이다. 전산 접속 차단은 내부 지침에 따라 영업 부진으로 판단해 시행한 것이며 악의적으로 한 게 아니다. 회장의 출퇴근 통로라는 이유로 영업시간 연장을 강요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안씨에게 출퇴근 시간 조정을 지시한 의혹을 받는 매장관리 직원은 아직 케이티에 근무중이며 <한겨레> 기자와 한 통화에서 “할 말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