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 사의 후폭풍 부나‥정치권·관가 '촉각'
양건 감사원장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이 강한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분위기다. 양 원장의 퇴진이 헌법에서 보장된 임기를 1년7개월 앞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해 이명박(MB)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물갈이가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양 원장의 사의 배경으로는 크게 두가지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첫째는 공석중인 감사위원 인선에 대한 견해차이로 인한 사의표명 가능성이다. 청와대가 후임 감사위원에 인수위원 출신 장훈 중앙대 교수를 제청해주기를 요청했지만 양 원장이 ‘정치적 중림성 위반’ 등을 거론하며 이의를 제기했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보는 분위기다.
둘째는 4대강 사업 등 이명박(MB) 정부 국정에 대한 정치감사 논란이 사의 표명의 직접적인 배경이었다는 관측이다. 지난 10일 감사원이 4대강 사업에 대해 “보와 수심 설계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이뤄졌다”는 3차 감사결과를 내놓자 현 정부에 지나치게 코드를 맞추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됐다. 감사원은 지난 2011년 1차 감사에서 밝힌 “환경에 큰 영향이 없어 오히려 홍수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과는 정면충돌하는 의견이었다. 3차 감사결과가 감사원의 신뢰성에 상처를 준 데 대한 책임을 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MB 정부에서 선임된 양 원장과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감사원 고위직 간의 갈등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 모두 청와대와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 7인회 멤버인 김기춘 비서실장 취임 직후에 양 원장 사퇴가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집권초 장관급 인선 파동이 일어나면서 양 원장에 대한 재신임 표명이 이뤄졌지만 청와대에서는 MB정부가 선임한 양 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대한 불편한 분위기가 역력했었다. 허태열 비서실장이 양 원장을 포함해 MB정부가 임명한 주요 기관장 처리에 미온적인 데 대한 비판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배경을 아는 정치권 일각에서는 ‘왕(王)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 실장이 본보기 차원에서 양건 감사원장을 밀어낸 것으로 이번 사태를 해석한다.
이에 따라 양건 원장 사의 표명 사태가 MB정부 출신 기관장에게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지배구조상 정부의 입김이 미칠 수 밖에 없는 이석채 KT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등도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권초 정부 정책과 엇박자를 냈던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이름도 거론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양 원장의 사의표명 이후 “청와대의 제 사람 심기가 본격화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원장의 사퇴로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면서 ”4대강 감사결과 발표를 둘러싼 박근혜정부와 이명박정부의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감사원장을 토사구팽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