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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나가라’는 신호에 본인이 먼저 허를 찔렀나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겨레 이순혁 기자 메일보내기
이석채(오른쪽) 회장은 대표적인 와이에스(YS) 인맥으로 꼽히지만, 청와대에 처음 발탁된 시기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였다. 사진은 이 회장이 재정경제원 차관 시절인 1995년 6월22일 청와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 화면 갈무리

[토요판] 커버스토리

‘청와대 사퇴종용설’ 진실은
10대 기업 총수 초청 오찬 때
케이티 빼고 두산 회장 불러
이석채 회장 자진사퇴 원하나
‘민간기업 인사 간섭’ 부담
공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난달 29일 <조선일보> 1면에 케이티(KT) 이석채 회장의 거취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제3자를 통해 이 회장에게 ‘임기와 관련 없이 조기 사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 주파수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장수의 명예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물러날 수는 없다’며 일단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이 보도와 관련해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당사자(조 수석)에게 물었더니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며 부인했다. 케이티 홍보실은 “사실 여부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언론에 보도됐다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조 수석의 태도와, 케이티의 어정쩡한 반응은 뭔가 찜찜한 맛을 남겼다.

 
이 보도는 거취 문제가 공론화됐다는 점에서 이 회장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반대였다. 업계 한 소식통은 “1면에 나올 정도라면 (조 수석 또는 이 회장) 둘 중 한명에게서 확인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 수석이 이를 언론에 얘기했을 리는 만무하니, 누구 쪽 작품이겠냐? 또 보도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은 이 회장이 아니라 청와대다”라고 말했다.

 
이런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조선일보>는 이튿날 6면 머리에 ‘박근혜 정부도…민간기업 인사개입 되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는 ‘잘못된 관행’이 또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청와대나 정부가 케이티 인사에 개입할 근거는 전무하다. 민영화 이후 정부보유 지분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정부 쪽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청와대 사퇴 종용설의 진실은 무엇일까? 다음은 청와대 사정에 밝은 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케이티 이석채 회장과 포스코 정준양 회장에 대한 청와대의 뜻은 명확하다. ‘알아서 나가라’란 것이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 중국 방문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최한 만찬 때 이 회장과 정 회장을 제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10대 기업 총수 초청 오찬 때도 (재계 6위인) 포스코와 (11위인) 케이티 수장은 빼고 대신 (12위인) 두산 박용만 회장을 부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때 이석채 회장 쪽에서 대학, 고교, 지인 등 온갖 연줄을 동원해 청와대에 ‘나도 좀 참석할 수 없겠느냐?’, ‘대통령과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없겠느냐?’는 등의 의사를 타진해왔다. 물론 다 거부됐다. 그런데 보란 듯이 이튿날 <조선일보>에 사퇴 종용설 보도가 나왔더라. 이 회장이 보통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주지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물론 이 회장에 대한 (청와대의) 분위기는 더욱 악화했다.”

 
청와대에서는 이 회장의 ‘작업’ 결과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언론에서는 <조선일보>가 ‘이석채 구하기’에 나선 것과 관련해 방상훈 사장이 이 회장과 경복고 동문인 점을 지적하는 시선이 있다고 했다. 여하튼 현재 상황은 청와대가 이 회장을 마뜩잖아 하면서도 ‘민간기업에 대한 인사 간섭’이란 지적 때문에 대놓고 나서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그 점을 이용해 보란 듯이 꿋꿋이 버티고 있어, 원만한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앞서 언급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케이티가 이 회장의 고종사촌 두명을 고발했다. 이 회장 스스로 나갈 만한 사안에 관해 되레 이 회장이 허를 찌르고 나선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 부덕의 소치’라고 할 사안을 이렇게 되치기해 대응했다는 것은, ‘사촌이건 뭐건 나는 회장 자리는 절대 못 내놓는다’는 신호를 (청와대에) 보내온 것으로 본다.”
 

이제 공은 정부(청와대) 쪽으로 넘어간 셈이다. 정확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답할 차례가 됐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이 회장은 1년 남짓 남은 임기를 마칠 수 있게 될 것이고, 반대로 박 대통령이 어떤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이 회장은 우호적인 언론을 동원해 ‘정부가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라는 프레임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다.
 

케이티를 일반 민영회사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케이티 한 임원은 “민영회사라면서 정부가 외국인 지분 소유 한도를 49%로 제한하는 것은 뭔가? 일반 민간회사야 경영이 어려워지면 망할 수 있고, 그렇게 놔둘 수도 있다. 그러나 기간통신사업자인 케이티는 정부와 군 통신망 등 나라의 신경망을 운용하고 담당하는 회사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망하도록 두는 게 불가능하고 국민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언론들이 왜 이런 면은 외면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과연 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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