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회장은 누구인가
1969년 행정고시 7회 합격
아프리카 순방 수행한 뒤 전 대통령 총애받고 청와대행
정보통신부 장관·경제수석 맡은 문민정부 시기가 관료 전성기
“업무추진력이 뛰어나고 해박한 경제이론과 논리정연한 언변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5공 시절엔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내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소신과 추진력을 갖췄으나 말을 참지 못해 때론 점수를 잃기도.”
1994년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발탁될 당시 한 일간지에 보도된 이 회장 인물평이다. 전 임직원을 상대로 ‘걷어차’고 ‘총부리를 겨누고’ 쫓아낼 수 있다며 군기를 잡는 이 회장의 모습을 미리 보기라도 한 듯 ‘말을 참지 못해’라고 평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 회장은 1969년 행정고시 7회에 합격해 경제기획원(EPB)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론 청와대에 오래 근무하는 등, 관료 이석채에 대한 평은 ‘똑똑하다’는 게 대체적이었다. 미래창조과학부 한 관료는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이 회장에 대해 “장관으로서 일처리 능력, 조직의 비전 제시, 청와대·실세와 관계를 잘 맺어 업무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올 수 있었던 능력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와이에스(YS)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역임하며 관료로서 전성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석채 회장 밑에서 일했던 한 관료는 “이 회장을 와이에스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전두환 사람’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을 갔다. 당시 아프리카 순방은 북한과의 외교 경쟁 성격이 컸다.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이 회장이 전 대통령 순방을 수행했는데, 방문하는 나라들의 자원과 경제 상황 브리핑을 준비해 갔다고 한다. 우선 동행하는 기자들에게 준비해온 브리핑을 하고, 뒤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도 기내에서 브리핑을 받았는데 크게 만족해했다. 귀국 뒤 이 회장은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발령나 전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이를 바탕으로 ‘비예산실 출신 첫 예산실장’으로 임명돼 경제기획원(당시 재정경제원)으로 금의환향했다. 오랜 청와대 근무로 인해 경제기획원에서는 그를 ‘낙하산’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여하튼 이 회장은 예산실장을 거쳐 농림부 차관과 정통부 장관, 경제수석으로 승승장구했다. 결국, 이 회장이 관료로서 꽃을 피운 건 와이에스 시절이지만, 그럴 기회를 주고 틀을 만들어준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란 얘기다.
이 회장이 문민정부 시절 ‘만개’할 수 있었던 것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등과 함께 경복고 후배인 ‘김현철 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케이티 회장도 와이에스 쪽의 지원 덕분이란 게 정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와 관련해, 경제분야 한 중견 기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전해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여당 대선 후보이던 시절, 최각규 경제부총리가 경제현안 보고를 갔단다. 부처 간부들도 배석을 했다. 여기서 김 전 대통령 후보가 추경 예산안 편성 필요성을 얘기하자, 최 부총리가 표현은 부드럽지만 내용에는 단호하게 반박을 했다. 사실상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소리냐?’란 얘기였다. 경제 지식이 없는 김 전 대통령 후보가 딱히 반박도 못한 채 최 부총리를 돌려보냈는데, 이 회장이 바로 다시 김 전 대통령 후보를 찾아와 ‘사실 후보자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말했단다. 와이에스가 깜짝 반가워하며 ‘그렇지, 내 말이 맞지’라며 반겼다고 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