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통신 역사의 산증인이자 재계 서열 11위인 케이티(KT)가 흔들리고 있다. 케이티의 가장 큰 위기요인은 임기 5년째를 맞은 이석채 회장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취재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뉴시스 |
[토요판] 커버스토리 흔들리는 KT, 5년의 잔혹사
재벌사주 능가하는 독선경영…‘통신업계 맏형’이 망가졌다·
▶ 신문의 경제면보다 정치·사회면에 더 자주 등장하는 기업이 있다. 케이티(KT)다. 이석채 회장 취임 뒤 ‘낙하산’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아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경영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이 회장의 리더십과 케이티의 앞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회장 체제 5년 동안 케이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 2일 아침 케이티(KT) 서울 광화문사옥 1층 올레스퀘어. 이석채 회장을 비롯한 그룹 주요 임직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케이티 엘티이-에이 넘버원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케이티의 다른 모든 임직원들도 평소보다 이른 아침 8시30분까지 출근해 사내 방송국을 통해 결의대회 생방송을 지켜봤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은 이 회장이 연단에 섰다.
“존경하는 케이티그룹 임직원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회장이 입을 열었다. 이틀 전인 8월31일 저녁 늦게 끝난 주파수 경매에서 사운을 걸고 추진해오던 1.8㎓ 주파수 대역 확보에 성공한 것에 대한 격려였다. 케이티는 이로써 뒤늦게나마 주파수 광대역화를 통한 엘티이-에이(LTE-A)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된 참이었다.
그런데 격려도 잠시, 이 회장의 발언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갔다.
“케이티의 고질적인 문제는, (임직원들이) 내 기업이라는 주인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의 울타리, 자기의 회사, 자기의 집이 무너져가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에다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모략하고 (…) 낮에는 태연하게 회사 임원으로 행세하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걷어차야 합니다. (…) 총부리를 겨누고 앞으로 나가라고 해야 합니다. 나가지 않으려면 최소한 회사를 해코지하지 말라는 얘기는 확실히 전해주십시오.”
‘주파수 획득 결의대회’의 엄포
격려는 어느새 엄포로 바뀌었다. 회사 정책이나 자신의 뜻과 다른 말을 하고 다니는 임원들은 발로 ‘걷어차’거나 ‘총부리를 겨눠’ 쫓아낼 테니, 회사 떠나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경고였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책상 모니터를 통해 결의대회를 지켜보고 있던 직원들은 어땠을까? 서울 서초사옥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말이다.
“주파수 획득 결의대회를 한다며 일찍 나오라기에, 다들 좋은 얘기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짜고짜 혼을 내니 이건 뭐…. (방송을 시청하던) 직원들 표정 다들 일그러지고, 아침부터 기분 더러웠다. 회장 체면이 있지, 직원들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참 한심하더라.”
대한민국 통신 역사의 산증인이자 재계 서열 11위인 케이티가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강제 하차한 남중수 사장의 뒤를 이은 이석채 회장 체제가 5년째를 지나며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치권 인사 마구잡이 영입, 세계 7대 자연경관 국제전화 사기 논란, 이 회장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송치, 친인척 특혜 의혹, 부동산 헐값 매각 논란, 종편(종합편성채널) 출자 참여….
사실 이 회장 취임 뒤 케이티를 둘러싼 논란과 잡음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엔 이런 정치·사회적 논란을 넘어서 각종 경영지표들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 내부의 위기감도 커지고, 이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스타일과 편중 인사를 비판하는 여론도 확산하고 있다. ‘결의대회’ 때 이 회장의 엄포성 발언은, 그런
분위기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케이티 내부 사정이 어떻기에, 이렇게 공개적인 임직원 군기잡기가 이뤄진 것일까. 각종 경영지표는 케이티가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케이티의 이동전화 시장점유율은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1월 31.5%(1442만명)에서 2013년 7월 말 현재 30.3%(1641만명)로 떨어졌다. 최근 1~2년 사이에는 점유율은 물론 가입자 수도 통신 3사 가운데 유일하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2년에는 전체 가입자가 6만명 줄었는데(1656만명→1650만명), 올해는 7월까지만도 9만명이 줄었다.(1650만명→1641만명)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임명된 이석채 회장 체제 5년 지나며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경영지표까지 빨간불이 켜졌다
시장점유율은 2009년 31.5%에서 2013년 7월 30.3%로 떨어졌다
7월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월 단위 141억 적자가 났다
특히 번호이동(MNP) 시장에서의 고전이 눈에 띈다. 2012년 상반기 31만7000명, 2012년 하반기 12만명, 2013년 상반기 8만7000명이 순감했다. 이탈 추세는 최근 가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두달(7월 5만명, 8월 9만2000명) 새 무려 14만명 이상이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엘지유플러스(LGU+)로 빠져나갔다. 경쟁사보다 많은 알뜰폰(MVNO) 업체 가입자(100만명가량)를 빼면, 케이티의 순가입자는 1540만명 수준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