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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업·권고사직 시달린 강씨

관리자 2013.09.23 19:15 조회 수 : 2044

영업·권고사직 시달린 강씨
입버릇처럼 “또 지적받았어”

▶◀ KT 비극의 행렬 (상) 그들은 왜

두 노동자의 자살

20년간 기계팀 우수 사원에서
느닷없는 영업직 인사 발령
F 성적표 받고 퇴사 권유받아

투신 직전 메모지에 ‘살려줘요’
회사선 “산재 입증 불가능”

 

강아무개씨(사망 당시 50살)는 공학도였다. 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공대 진학을 선택한 그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990년 6급 공채로 케이티(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입사했다. 2010년까지 20년간 주로 기계팀에서 일하며 전송시설 운용과 지원 업무를 맡았다. 1993년 회사에서 표창을 받고 1998년에는 사장이 주는 공로표창까지 받는 등 우수 사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우수 사원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2010년 7월 강씨는 갑작스레 현장에서 전화·인터넷 등을 개통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마케팅도 해야 했다. 케이티 서울 신촌지사에서 개통 일을 시작했다. 회사는 그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잘 될 리 없었다. 결국 반년 만에 은평지사로 쫓기듯 옮겨갔다. 그의 취미는 바둑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기계를 다루던 그에게 영업은 더욱 힘들었다.

 

압박이 시작됐다. 회사 상사는 그에게 ‘회사를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실적 부진이 이유였다. 자존감이 무너졌다. 실적은 더욱 나빠졌고 악순환이 시작됐다. 이듬해인 2011년 강씨가 직접 출력해 보관해온 에이치알(HR·인력자원) 프로필 요약본을 보면 업무가 전환된 2010년 그가 받은 ‘개인성과’와 ‘역량평가’ 항목 점수는 ‘에프’(F)였다.

 

강씨는 일일보고 대상자가 됐다. 일거수일투족과 업무 성과를 매일 보고해야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표를 쓰라는 압박이 이어지던 어느 날 강씨는 새로 나온 명함을 보고 놀랐다. 부서가 바뀌고 새로 신청한 명함에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가 틀리게 적혀 있었다. 다시 명함을 신청했지만 바로 잡히지 않았다. 강씨의 유족은 “영업을 하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도 틀리게 적힌 명함을 두 번이나 주는 것은 (회사를)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입에서 “퇴직하고 싶다”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목숨을 끊기 한 달 전인 2011년 6월이었다. 친척과 친구들에게 “핸드폰 좀 사달라” “인터넷을 개통하게 되면 연락 좀 달라”는 말을 힘겹게 꺼내고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에게 털어놨다. “나 오늘 또 지적받았어….”

 

그해 7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사표를 내고 차라리 운전 일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가족들은 응원했다. “주눅들지 말고 소신껏, 자신감 있게 일해요.” 처음으로 스마트폰 3대를 판 강씨는 토요일인 다음날에도 회사로 향했다. 오전에 운동을 하러 다녀온 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바로 그날 강씨는 회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집에서는 강씨의 근무 평정이 적힌 메모가 나왔다. 거기엔 “살려줘요”라고 쓰여 있었다. 싸늘하게 식은 그의 몸을 감싼 바지 주머니 속에서 두 번 접힌 에이포(A4) 용지도 나왔다. 홍보용 전단이었다. 갤럭시에스(S)2·아이폰4의 사진과 함께 각종 요금제가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 강씨가 직접 쓴 이름과 전화번호가 보였다.

 

경찰은 ‘직장에서 권고사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오던 중 회사 별관 5층 옥상에서 1층 바닥으로 투신했다’고 결론내렸다.

강씨가 세상을 떠난 뒤 케이티는 퇴직금 5000여만원과 사내 복지기금에서 마련한 1억원을 유족에게 줬다. 유족은 “고인이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사표를 쓰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케이티는 “업무 부실 등을 이유로 사직을 권한 적도 없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경고장을 보낸 일도 없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그해 10월 ‘업무의 급격한 변화와 스트레스 증가가 있다고 하나, 개인적인 특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소송을 포기했다. 케이티는 “공단이 요구하는 자료를 성실히 냈다. 공단에서 산재 승인이 나지 않은 것은 자살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뒤 2년이 흘렀다. 유족들은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케이티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강씨의 가족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회사에 다녔지만 죽음 뒤에 회사는 조용히 무마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쓴소리맨으로 불리던 김씨
마지막 말 “노동탄압 끝내라”

회사에 소신 발언 이유로
“문제 일으키지 마라” 지적받아

올 임단협 교섭안 찬성 가결뒤
사쪽 선거개입 호소하며 자살
유서엔 “반대 찍으면 곤욕 치러”

 

케이티(KT) 전남본부 광양지사에서 일해온 김아무개(53)씨는 지난 6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에는 “노동탄압을 끝내달라”고 적혀 있었다. 공학도 출신으로 영업에 내몰린 강아무개씨의 자살이 영업 압박과 사직 요구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김씨의 죽음은 회사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케이티 직원들의 잇단 죽음이 ‘개인사’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좀더 뚜렷이 보여준다.

 

1980년대 초반 입사한 김씨는 평소 회사의 부당한 처우 등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소신껏 했다고 한다. 특히 자살 직전에는 회사로부터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말을 유독 자주 들었다고, 김씨의 유족들은 전했다. 김씨는 퇴근 뒤 집에 돌아오면 “회사 분위기가 살벌하다” “(회사) 사람들이 다들 힘들어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는 2008년 섬 지역으로 발령받았다. 전남 여수시 남면 금오도였다.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을 ‘유배지’로 보낸 셈이다. 이에 대해 케이티는 “다른 직원들도 모두 하는 정기 순환근무였지 마찰이 있어 섬으로 간 것은 아니다. 동료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평소에 소신 발언을 한 적도 별로 없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동료들과의 사이도 원만한 편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차라리 잘됐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아내는 “당시에는 (섬으로 가면) 관리자와 부닥치지 않으니까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섬에 가서는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주말에 집에 오면 오히려 표정이 나아 보였다”고 회고했다.

 

2009년 말 다시 광양시로 돌아와 현장 개통 업무를 맡게 된 그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회사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생긴 갈등이 문제였다고 한다. 이유 없이 두피에 부스럼이 생기고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도 다녔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병원 진단이 나왔다.

 

올해 5월에는 회사에서 투표가 있었다. 케이티 노동조합이 2013년 단체협약 교섭안을 경영진에 ‘백지 위임’하면서 합의한 임금 동결과 상시적 정리해고제에 대한 찬반투표였다. 인사평가에서 최하점을 두차례 받은 직원을 노사 합의하에 면직처분할 수 있게 한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김씨는 동료들과 자주 통화했다고 한다. “너희는 (투표 때 간섭이) 얼마나 심하냐” “투표는 어떻게 할 거냐”는 내용이었다. 회사가 투표에 개입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고 김씨는 생각했다.

 

투표는 찬성률 82%로 마무리됐고, 김씨는 6월 전남 순천시 팔마체육관 앞에 자신의 카니발 차량을 세웠다. 그 안에서 미리 준비한 번개탄을 피웠다. 단체협약 찬반투표 용지에 찬성표를 던진 사진과 함께 자필로 쓴 유서가 나왔다. “단체교섭 찬반투표 후 검표가 두려워서 항상 (내가 찍은 찬성표를) 사진으로 남긴다” “반대표를 찍은 것으로 판명된 직원은 어김없이 불려가 곤욕을 치르고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유서에서 “2010년과 2011년 투표 전에 팀장이 개인 면담을 하면서 반대 찍은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갈 수 있으니 알아서 찍으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케이티 쪽은 “평소에 고인은 노조 활동에 관심이 없었고, 사망 전 개인 부채로 독촉을 받았던 점을 생각하면 노동탄압이 자살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일부 직원들은 “회사 입맛에 맞는 노동조합이 들어서 달리 하소연할 곳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는 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해 왔다”고 반박한다.

 

유족들은 김씨의 장례를 치르며 거듭 상처를 받았다. 평소 얼굴을 알던 김씨의 한 동료가 빈소를 찾아와 했던 말들을 유족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섬에서 조용히 있었으면 별일 안 생겼을 텐데, 왜 회사 꼬투리를 잡고 비리를 캐서 그리 됐냐.” 김씨의 아들은 장례식 직후 케이티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언론사에 전화해 기사 내지 말아달라.’

박승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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