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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얘기 싫다” “고통 잊고싶다” 분노조차 삼킨 좌절
▶◀ KT 비극의 행렬 (하) 입마저 닫은 ‘희망 없는 삶’
한겨레
박찬성 전 케이티(KT) 기획조정실 팀장(왼쪽 셋째)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이 2005~2007년 담당했던 인력 퇴출 프로그램에 의한 구조조정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 함께 선 이들은 은수미 민주당 의원(오른쪽 셋째)과 구조조정 피해자들이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KT 비극의 행렬 (하) 입마저 닫은 ‘희망 없는 삶’

“내 기업이라는 주인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바깥에다 대고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여러분의 땀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이석채 케이티(KT) 회장은 최근 사내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9년 이 회장의 취임 이후, 자살한 전·현직 케이티 노동자 23명과 뇌출혈·심근경색 등 질병으로 숨진 165명은, ‘땀과 눈물’이 부족했던 것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한겨레>가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이들은 회사를 ‘중상모략’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극한 구조조정의 대상자로 상처받은 ‘살아남은 자’들은 취재를 피하면서도 “케이티에 다닌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다”고 털어놨고, 이미 세상을 떠난 케이티 노동자들의 유족은 “잊고 싶을 뿐”이라며 기억을 되살리기조차 극도로 꺼렸다.

 
<한겨레>는 지난 8월부터 올해 케이티에서 자살한 노동자 10명을 포함해 지난 5년간 자살한 23명의 유족들과 사고로 숨지고 다친 이들 및 그 가족들을 찾아헤맸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들과 접촉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듭된 인터뷰 제안과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가장이 떠난 자리를 채우느라 여유를 낼 수 없거나, 회사와 피해보상 등에 합의를 한 경우였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을 되새기는 일을 대단히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가슴 속엔 슬픔과 분노보다는 좌절과 포기가 더 깊이 새겨져 있었다.

 
지난 4월 3차례의 전환 근무를 거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아무개(50)씨의 부인은 “하루에 두 차례나 일을 하러 나가야 해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박씨의 부인은 떠난 남편 대신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늘어난 업무량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오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한 직원의 유가족도 “산업재해 신청을 고려하고 있지만 밖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했다. 케이티 새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 조합원에게는 부고장도 보내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족들 역시 회사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 말을 아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5년간 자살·사고 23명 접촉했지만
유족·생존자들 인터뷰 ‘설레설레’
아픔 되새기는 일 피하고 싶어해

자살시도 뒤 하반신 마비된 직원
“힘들어서 요새는 말도 하기 싫다”
30년간 근무 뒤 우울증 겪는 ㄱ씨
“칼끝에 선 심정, 칼 든 사람은 몰라”

 
우울증에 시달리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뒤 하반신이 마비된 한 직원은 “너무 힘들다. 요새는 말도 하기 싫다. 당분간은 회사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의 말투에는 절망이 깊이 드리워져 있었다. 죽음을 택한 이들 역시 속을 털어놓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터뷰에 응한 일부 유족들은 고인이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관 케이티 새노조 위원장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가면 오히려 가족들이 ‘죽기 전에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며 묻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케이티에서 기나긴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내년이면 근속 30년이 되는 ㄱ(51)씨는 회사에 서운한 감정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2006년 갑자기 부서가 바뀌고 영업에 나서면서 마음이 무척 힘들어졌다. 신경정신과를 찾았더니 ‘적응장애’라는 판정이 나왔다. “당시 자존감이 다 무너진 상태였어요. 입사 이후 계속 전봇대를 세우고 선로를 개설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영업을 하니 잘 될 리가 없었지요.” 그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그나마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할 수 있었다. 2008년 복직하며 원래 하던 일로 복귀했지만 근무지는 충북 청주에서 전북 전주로 바뀌어버렸다. 의사가 “가족과 지내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소견서를 써줬지만 회사는 거절했다.

 

근무지가 집에서 멀어 새벽 5시 시외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ㅇ(58·여)씨는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1979년 체신부 공채로 입사해 114 콜센터 일을 해온 그는 2006년부터 15㎏이 넘는 공구를 들고 전봇대를 오르내리는 전화개통 일을 하고 있다. ㅇ씨는 “꿋꿋이 30년 넘게 다녔는데 이제 회사를 떠나면 이 회사가 조금이라도 그립기나 할지 의문”이라며 씁쓸해했다.

 

비극의 행렬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ㄱ씨나 ㅇ씨 등은 케이티에서 자살과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를 “희망이 없어서”라고 했다. 직원들이 섬처럼 격리돼 실적 압박에 시달리면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칼끝에 선 사람의 심정을 칼을 든 사람들은 몰라요.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일은 사라져야 해요.” ㄱ씨가 말했다. <끝>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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