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성 전 케이티(KT) 기획조정실 팀장(왼쪽 셋째)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이 2005~2007년 담당했던 인력 퇴출 프로그램에 의한 구조조정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 함께 선 이들은 은수미 민주당 의원(오른쪽 셋째)과 구조조정 피해자들이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 KT 비극의 행렬 (하) 입마저 닫은 ‘희망 없는 삶’
유족·생존자들 인터뷰 ‘설레설레’
아픔 되새기는 일 피하고 싶어해
“힘들어서 요새는 말도 하기 싫다”
30년간 근무 뒤 우울증 겪는 ㄱ씨
“칼끝에 선 심정, 칼 든 사람은 몰라”
케이티에서 기나긴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내년이면 근속 30년이 되는 ㄱ(51)씨는 회사에 서운한 감정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2006년 갑자기 부서가 바뀌고 영업에 나서면서 마음이 무척 힘들어졌다. 신경정신과를 찾았더니 ‘적응장애’라는 판정이 나왔다. “당시 자존감이 다 무너진 상태였어요. 입사 이후 계속 전봇대를 세우고 선로를 개설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영업을 하니 잘 될 리가 없었지요.” 그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그나마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할 수 있었다. 2008년 복직하며 원래 하던 일로 복귀했지만 근무지는 충북 청주에서 전북 전주로 바뀌어버렸다. 의사가 “가족과 지내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소견서를 써줬지만 회사는 거절했다.
근무지가 집에서 멀어 새벽 5시 시외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ㅇ(58·여)씨는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1979년 체신부 공채로 입사해 114 콜센터 일을 해온 그는 2006년부터 15㎏이 넘는 공구를 들고 전봇대를 오르내리는 전화개통 일을 하고 있다. ㅇ씨는 “꿋꿋이 30년 넘게 다녔는데 이제 회사를 떠나면 이 회사가 조금이라도 그립기나 할지 의문”이라며 씁쓸해했다.
비극의 행렬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ㄱ씨나 ㅇ씨 등은 케이티에서 자살과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를 “희망이 없어서”라고 했다. 직원들이 섬처럼 격리돼 실적 압박에 시달리면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칼끝에 선 사람의 심정을 칼을 든 사람들은 몰라요.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일은 사라져야 해요.” ㄱ씨가 말했다. <끝>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