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5년 전 자신이 회장 될 때처럼 ‘찍어내기’ 검찰 수사 받는 KT 이석채 회장
…독단·부실 경영으로 KT 망쳤다는 비판 거세
“걷어차야 합니다. 총부리를 겨누고 나가라고 해야 합니다.” 지난 9월2일 이석채 KT 회장이 사내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애초 ‘광대역 LTE’ 주파수를 획득한 것을 자축하는 결의대회였는데, 이 회장은 대뜸 자신을 “해코지하는” 임원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바깥에다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모략하고 낮에는 태연하게 임원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공포 경영’의 정점이었다. 청와대 ‘허락’ 떨어지기 기다린 검찰 그로부터 50일 뒤, 이석채 회장 본인이 ‘나가라’는 압박을 받는 처지가 됐다. 검찰이 총부리를 겨눴다. 지난 10월22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KT 본사와 계열사 사무실 등 16곳을 압수수색했다. 이석채 회장 자택과 이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며 자회사를 관리하는 코퍼레이트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일영 사장의 자택도 포함됐다. 참여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2월과 10월 이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으로 칼을 뽑아든 것이다. 검찰은 이석채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정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참여연대가 1차로 고발했던 2월 이후 검찰은 수사를 미적거려왔다. 그런데 10월10일 2차 고발장을 내자 이번엔 기다렸다는 듯이 전격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자택까지 뒤진 점도 의미심장하다. 참여연대는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이석채 회장을 고발했지만, 검찰이 개인 비리 혐의까지 포착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실 검찰은 오래전부터 이 회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검 등에서도 전직 KT 임원들을 불러 조사하는 등 내사를 벌여왔다. 청와대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시점을 저울질해왔던 것이다. 검찰은 이 회장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10월26일 아프리카 르완다로 해외 출장을 떠날 예정이었다. 이석채 회장은 1998년에도 해외에서 검찰 수사를 피했던 전력이 있다. 옛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에 PCS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 회사에 유리하도록 배점 방식을 바꾼 혐의 등으로 1998년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으나, 당시 이 회장은 미국에 머물고 있어 2001년 귀국 뒤에야 기소됐다. 이 사건은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KT와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흔들리곤 한다.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통령과 정권 실세의 입김에 따라 사장이 결정돼온 관행 탓이다. 이석채 회장의 거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회장의 임기는 2015년 3월까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퇴임설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엔 커뮤니케이션실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퇴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적극 해명에 나섰을 정도다. 이후로도 청와대 쪽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스스로 나가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지난 7월 창사 이후 첫 적자, 경영성적 참담 그래도 이 회장은 꿋꿋하게 버텼다. 한편으로는 ‘박근혜의 사람들’ 영입에 공을 들였다. 자신을 보호해줄 ‘인의 장막’을 치려는 의도였다. 친박으로 꼽히는 홍사덕·김병호·김종인 전 의원 등이 KT 경영고문·자문위원 직함을 달았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14일 KT의 ‘낙하산 인사’ 36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연합군이 KT를 장악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 인사들뿐 아니라, 옛 안기부 출신의 YS 측근들을 비롯해 이석채 회장의 사촌동생까지 버젓이 계열사 고문 자리를 차지했다.
“이석채 회장이 친박 인사들을 영입한 게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다. 자기가 살려고 정권에 부담이 가는 행동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거지. 청와대 기류가 ‘교체론’으로 쏠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이동통신업체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말’로 안 되니, 청와대가 결국 검찰 수사라는 ‘총’을 뽑아들었다는 뜻이다. 정권의 ‘KT 흔들기’에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이석채 회장에 대해서만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 방식이 KT를 망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취임 엿새 만에 KTF와의 합병을 결정했고, ‘공룡’ 공기업으로 안주하던 조직문화 개혁에도 나섰다. 아이폰을 처음 들여와 국내에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외부 영입 인사 중심으로 친위대를 꾸리고 기존 KT 고위 인사 대부분을 숙청하면서 반발을 샀다. BT(브리티시텔레콤) 출신인 김일영·김홍진 사장, 경복고 후배인 표현명 사장, 정통부 장관 시절 비서관이던 서홍석 부사장 등이 대표적인 측근이다. KT 안에서는 ‘원래 KT’가 ‘올레 KT’(외부 영입 인사)한테 밀려났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간다. 게다가 현재 KT의 경영성적표는 참담한 수준이다. 이동통신시장 시장점유율은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31.5%에서 올해 30.3%(7월 기준)로 떨어졌다. 올해 1~9월 가입자는 50만여 명이 줄었다. 가입자 한 사람당 평균매출은 이동통신 3사 가운데 꼴찌다. 지난 7월엔 창사 이후 첫 월간 적자가 났다. 올해 영업이익은 2010년의 절반 수준인 1조원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탈통신’을 외치며 금융·부동산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선 잡음이 일었다. 참여연대가 이석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9년 KT는 유종하 전 외교부 장관이 운영하는 ‘아헤드코리아’와 함께 ‘OIC 랭귀지 비주얼’(현재 KT OIC)이라는 교육 콘텐츠 업체를 설립한다. 유 전 정관은 이후 회사 지분을 팔아 8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또 KT가 유 전 장관이 지분을 갖고 있던 교육업체 ‘사이버 MBA’ 지분을 주당 액면가보다 9배 정도 비싼 가격에 사들여 회사에 77억원의 손실을 끼쳤다고 참여연대는 주장한다. 이석채 회장과 유종하 전 장관은 8촌지간이다. KT OIC가 지난해 15억7천만원의 적자를 내는 등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인수한 기업의 상당수는 실적이 좋지 않다. 유휴 부동산 매각 과정도 석연치 않아 유휴 부동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KT는 2010~2012년 부동산 금융 자회사인 KT AMC 등이 모집한 펀드에 사옥 39개를 매각했다. ‘세일 앤드 리스백’(매각 뒤 임대) 방식으로, KT는 5~10년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건물을 싸게 팔고 비싼 임대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임대료를 10년간 내게 되면 매각대금과 맞먹을 정도다. 펀드에는 꽃놀이패다. 검찰은 펀드 투자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데 수사를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퇴양난. 이석채 회장은 이제 와서 사퇴한다고 검찰 수사를 피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업계에선 벌써 후임자 하마평이 나돈다. KT라는 기업을 바로 세울 최선의 선택은 뭘까?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은 “이석채 회장처럼 정치권에 줄 대고 낙하산을 끌어들이는 경영자가 와서는 안 된다. 통신 공공성 회복을 중심에 놓고 회사를 경영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