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죽음 행렬, 우리의 인권 문제입니다” | ||||||||||||||||||
[인터뷰] KT 문제 다룬 영화 ‘산다’ 김미례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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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중에 하나라는 굴지의 통신기업 KT. 직원 평균 연봉 6000만원에 신입 사원 경쟁률이 150대 1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이런 KT에 붙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다. 바로 ‘죽음의 기업’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이은 KT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은 사회적인 충격을 주었다. 더군다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KT 노동자 대부분이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2008년 이석채 KT회장 체제 이후 사망한 KT 노동자 211명 중 자살자만 26명에 달한다. 이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쏠렸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는 그동안 많지 않았다. 검찰이 KT 본사를 압수수색 하고, 국정감사 증인으로까지 채택된 이석채 KT 회장의 ‘도피성’ 해외 출장으로 정치권이 시끄럽지만, KT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언론은 드물었다.
김미례 감독의 관심은 노동문제다. 그의 카메라는 매번 노동자의 삶을 응시한다. <대구건설노조 투쟁기록>(1997년)을 시작으로 일용직 목수인 아버지의 하루를 기록한 단편 <해 뜨고 해질 때까지>(2000년), 레미콘 운수 노동자들을 다룬 <노동자다 아니다>(2003년), 홈플러스의 전신인 이랜드그룹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장기 투쟁을 다룬 <외박>(2009년) 등 노동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용직,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김 감독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둔 이유는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 때문이다. “개인은 모두 소중하고 일의 가치 역시 비슷한데 부당한 대우를 받아요. 이런 현실을 보며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도권 밖에 있는 노동자들은 사회의 불편한 시선 등 온갖 차별을 다 받는 사람들이죠.” 김 감독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것은 <산다>가 처음이다. 김 감독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낸 지금의 4050세대, 그들의 현재가 궁금했다. 비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정규직’의 속사정을 알고 싶어서였다. 김 감독은 지난 2011년 후반부터 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자료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다 ‘인력퇴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받는 ‘CP프로그램’으로 고통받는 KT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노동자이자 한 개인으로서 ‘자존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CP프로그램은 지난해 KT 전(前)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04년 작성된 88쪽 분량의 ‘KT 중기 인적자원 관리계획’ 보고서에는 부진인력(CP: C-Player) 대상자를 선정해 직무 재배치·보상차별화·전직지원 등 다양한 관리방안을 통해 지속적으로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많거나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있는 노동자 등이 부진인력으로 분류돼 원거리 발령, 업무전환배치 등을 지시받았다. 그 결과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리고 자살이었다.
대법원도 지난 4월 CP프로그램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 CP프로그램으로 피해를 본 한모 씨가 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KT의 인사권과 징계권 남용을 인정,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KT 측은 “근거가 없다”며 아직 그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KT는 물론 자회사인 KTis 직원들 40~50명을 인터뷰하면서 적나라한 현실을 확인했어요.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KT 내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어요. CP프로그램에 의해 사람들이 쫓겨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까지 겁먹어 내부의 저항을 철저하게 차단한 거예요. 결국 인권의 문제입니다.” <산다>에는 회사의 희망퇴직 요구를 거부하다 전국 각지로 원거리 발령을 받은 노조 활동 경력의 노동자 4명이 나온다. 1989년 KT의 전신인 한국통신공사에 입사한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은 1995년 이른바 ‘한통사태’로 해고됐다가 12년이 지난 2007년 복직했다. 하지만 그는 1년 단위로 업무가 바꼈고, 지난 2011년 KT의 ‘제주도 세계자연경관 선정 국제전화 사기’ 의혹을 고발한 후에는 출퇴근만 5시간이 걸리는 경기도 가평으로 발령이 났다. 손일곤 씨와 서기봉 씨는 노조 활동으로 각각 전남 고흥과 노화도(島)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교순 씨는 기술부문에 있다가 3년 전 영업부문으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 장발인 그에게 사측은 용모불량을 이유로 인사고과 2년 연속 F등급을 매겼다. 카메라는 그들의 일상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따라간다. 높은 전주에도 오르고 고객 상담도 하는 진짜 노동자 모습 그대로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구호나 외침이 아닌. 그래서 더 위태롭고 슬프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KT 노동자들의 내면에는 상당한 갈등과 분열이 존재해요. 가족 때문에, 그리고 달리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 버텨내고 있지만 저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을 놓아버리는 게 아닌가 할 정도죠. 너무 담담해서 더 안타까워요.” 영화에는 내레이션도 없다. 김 감독은 영화 속에서 출연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만 그게 전부다. 작품에 개입해서 설명하기보다 관객이 스스로 그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삶도 반추해보길 원해서다.
감독은 40~50대 뿐 아니라 이른바 20~30대 젊은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노동자로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대체 삶에서 일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사회는 교육과 군대 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한 인물을 만들어내죠. 주인공 4명은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에요. 회사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 하죠.” 88만원 세대에게는 꿈같은 대기업 정규직. 회사의 통제 시스템 그리고 조직 논리 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 그들에게 있다. 회사에 저항하면 회사로부터 배제되고 결국 쫓겨난다. 이런 현실의 바탕 위에 김 감독의 <산다>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 시작에서도 나온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일까,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라는 물음이다. “KT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은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다른 모든 노동자에게도 해당하죠. 이석채 회장이 (KT를) 나간다 하더라도 비슷한 사람이 올 수도 있어요. 삶의 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왜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노동자 스스로 질문해야 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