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겨냥’ 전방위 압박에 무릎꿇은 이석채
이석채 KT 회장이 결국 ‘거대한 쓰나미’에 무릎을 꿇었다. 검찰 수사가 배임에서 ‘비자금’을 겨냥한 특수수사 성격으로 전환돼 전방위 압박을 해오는 가운데 3분기 실적까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더 이상 버틸 동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3일 KT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일 아프리카 정상 전략회의(TAS·Transform Africa Summit 2013)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별다른 공식 일정을 잡지 않고 주말동안 거취 문제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기자단 만찬에서 “(거취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흔들림 없는 의지를 전하면서도 “거대한 쓰나미를 어떻게 돌파하겠냐”고 말해 이번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내비쳤다. 이 발언 이후 검찰이 2차 압수수색을 벌이고 자금추적 전문수사관을 지원받는 등 수사팀을 확대하자 이 회장은 결국 사퇴를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번 아프리카 출장에서 예정에 없던 케냐 사업 진출 등 성과를 올렸으나 국내에서는 여론이 좋지 않았다. TAS 참석으로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못하게 됐고, 참석을 즈음해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면서 아프리카 출장은 ‘수사 지연용’, ‘국정감사 회피용’이란 비난을 받게 됐다. 또 출장 기간 중 발표된 3분기 KT 실적 부진도 이 회장의 결단에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KT의 3분기 실적은 매출 5조 7346억원, 영업이익 3078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각각 0.4%, 11.6% 감소했다.
이 회장은 2009년 1월 민영 KT 4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KT-KTF 합병을 일궈내 회장 자리에 올랐고 이후 ‘탈통신’을 주장하면서 미디어 콘텐츠 사업과 계열사 확대 등에 주력했다. 반면 전 정권 인물들이 임원이나 자문역 등으로 기용되면서 ‘낙하산 논란’, ‘사유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회장이 검찰 수사 끝에 퇴진하면서 KT를 둘러싼 정치권 입김 논란은 더욱 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KT는 정부 지분 ‘0%’인 순수 민간기업이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됐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지만 정권 교체 직후부터 ‘퇴진압박설’에 시달렸고, 지난 8월에는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사퇴를 종용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때문에 이번 검찰 수사가 이 회장에 대한 정권 차원의 ‘마지막 경고’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 회장은 다음 CEO가 정해질 때까지는 조직 안정을 위해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후임은 사내·외 이사 8명으로 구성되는 CEO 추천위원회를 통해 결정되지만 검증 등을 고려하면 단시간에 결정되기는 어렵다”면서 “그때까지는 남은 과제를 처리하겠다는 게 이 회장의 뜻”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