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반도체 천재는 KT 딜레마를 어떻게 풀까
'한 해 매출이 6000억원씩 줄어든다. 줄어드는 매출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대규모 인력감축을 하지 않는 한 비용을 줄일 뾰족한 대안이 없다. 10년 근무를 기준으로 경쟁사 직원은 연봉이 1억원 수준인데 이 기업의 직원은 6000만여원이다. 경쟁력 낮은 기업이라는 꼬리표에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도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동료를 함부로 내치자고 주장할 수 없다. 이런 기업의 CEO라면 어떤 카드를 내밀어야 할까.'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신화를 썼다는 평가를 받아온 황창규 KT CEO(회장) 내정자가 처한 상황이다. 줄어드는 매출은 시내전화를 중심으로 한 유선통신부문. 전체 3만2000여명의 인력 중 이쪽 종사자는 1만여명이다. 주로 케이블 등 선로와 교환기 관리를 맡은 엔지니어들이다. 1만여명이 담당하는 사업은 KT의 '보편적서비스' 역무에 해당된다. 공중전화, 낙도 등 도서산간벽지에 제공하는 유선통신서비스다. 일반인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이는 비용의 문제로 판단할 수 없는, 법으로 정한 KT의 '책무'다. KT가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결국 아웃소싱을 통해 적지 않은 인력을 다시 고용해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동일한 노동이지만 인건비와 간접비를 줄이는,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핵폭탄급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T의 구조조정 문제는 개인이 아닌 전 사회적 이슈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러니 KT가 민영화한 2002년 이후에도, 유선전화 매출 감소의 심각성이 표면화된 2000년 중반 이후에도, 당시 KT CEO들은 함부로 구조조정 카드를 사용하지 못했다. 신규인력 채용만 억제해왔다. 2009년 KTF와의 합병을 명분으로 명예퇴직을 단행, 직원의 16%를 줄였을 뿐이다. "직원들도 상황을 인정합니다.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런데 직원들은 고통분담을 하면서 인내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분노나 적개심이 더 크니…." 최근 만난 KT 모 팀장의 하소연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현재 KT의 상황은 직원들이 게을러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과거 시장 경쟁 상황과 기업의 경영실적에 맞춰 받아온 임금을 현재 기준으로 고액이라고 비판만 할 수 없다. 이동통신서비스가 주류가 되면서 나온 결과인데 어찌 직원들 탓만으로 돌린단 말인가. 그럼에도 KT 직원들은 모두 무능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든다는, 누군가 집행하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우리가 하는 일이 진짜 무가치할까요? 아무도 자부심을 심어주지 않습니다. '애썼다' 격려하는 사람도 없고, '힘들지만 함께 이겨내 보자'고 다독이는 사람도 없어요. 그저 우리는 생산성이 낮은 무능한 직원들이고, 그래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만 합니다." CEO가 되는 황 내정자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신규 사업을 벌인다고 해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힘들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만들어낼, 그 일을 수행할 KT 직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전임 CEO가 '무슨 사업을 하다 실패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추진했길래 안됐을까' 반면교사해야 한다. 그리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혹자들은 성급하게 '새로운 황의 법칙' 탄생을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나, 혹은 급할수록 돌아가는 '슬로 슬로 퀵퀵' 정신이나, 즐겁게 일할 때 생산성이 높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직원 다수를 '저항세력'으로 만들지 않는 것 또한 CEO의 능력이자 책임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