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억대 사기 대출 파문] KT 자회사, 기초적인 결재 시스템도 작동 안해
KT ENS는 부장급 직원 한 명과 협력사가 공모해 5년 동안 회사 연간 매출액의 절반이 넘는 3100억원을 불법 대출했는데도 어떻게 모르고 있었을까. KT는 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해왔길래 이 정도 규모의 비리가 5년 동안 적발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이번 사건은 KT 경영이 얼마나 방만하고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KT가 100% 지분을 갖고 있고, 매출 규모로 KT 계열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KT ENS는 유·무선 통신망 구축·설계와 IT 장비 공급을 해온 회사다. 보통 통신회사는 단말기와 네트워크 장비 등 협력사들과 여러 단계로 협력을 맺기 때문에 두 겹 세 겹 견제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KT ENS에선 오히려 해당 직원이 협력업체들과 짜고 대출 사기를 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외상매출채권은 팀장→부서장→사업부장→최고재무책임자(CFO)의 결재를 거치는데, KT ENS에서는 이런 과정조차 없었음을 보여준다. 비정상적 대출이 여신 한도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도 재무 부문에서 은행과 계속 거래하면서 이를 몰랐다는 것은 기초적인 리스크 관리조차 되지 않는 회사가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한다.
KT ENS가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자금 흐름과 인력 운용이 복잡해져 내부 시스템에 구멍이 났을 수도 있다. 회사 사업 보고서를 살펴보면 KT ENS는 2009년 이후 '태양광발전소 건설' 등 프로젝트 대출에 대한 지급보증액이 2012년 1170억원, 2013년 2147억원 등으로 누적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연매출 5000억원, 자본은 570억원 정도다. 회계 전문가들은 "이 돈은 지급보증한 사업이 부실해지면 그대로 채무로 돌아온다"며 "전문 건설사들도 부담스러워할 정도인 자본 대비 400% 가까운 지급보증은 재무 관리를 제대로 하는 기업이라면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T ENS 관계자는 "태양광 발전 관련 신(新)사업에 참여하면서 발생한 지급보증들로, 정상적인 사업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기업인 KT는 뚜렷한 최대 주주 없이 지분이 국민연금(9.98%) 미래에셋(4.9%) 외국인(40.07%) 등으로 분산돼 있다. 계열사 숫자도 2010년 4월 31개에서 2014년 2월 현재 56개로 급증했다. 업종은 통신과 미디어에서 금융·부동산·렌털·보안업종으로 확대돼 왔다. 하지만 한류 사이트 운영(숨피), 부동산 개발(KT에스테이트), 경영 관리 서비스(베스트파트너스), 경영 컨설팅(이니텍스마트로홀딩스) 등 '본업'과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기업도 상당수 있다. 일부 계열사는 여기에 다시 2~3개 '손자회사'까지 거느리고 있다. 특히 사업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사이버MBA'나 'OIC랭귀지 비주얼' 등의 업체를 인수했다가, 이석채 전임 회장이 배임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허술한 조직 관리에 따른 사고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KT는 2012년에도 870만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에도 KT는 휴대폰 가입자들의 이름·주민등록번호·휴대전화번호·가입요금 등 10종의 개인 정보가 새나갔는데 5개월 동안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구멍 뚫린 조직 관리, 계열사에 대한 감독 기능의 부재, 공기업 시절의 타성에 젖은 경영 등 해묵은 관행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계열사 직원이 연루된 대출 사고가 터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