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당한 KT ENS에 개인투자자도 700억 물려
신재생에너지 사업 진출하며 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발행, 개인투자자 625명도 손실
채권 판매 금융사 조사 결과 위험 고지 제대로 안한 정황
KT 자회사 KT ENS의 사기 대출 사건이 은행뿐 아니라 600여명의 개인투자자에게도 피해를 줄 전망이다.
통신망 구축 업체인 KT ENS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태양광 발전소 건설, 폐자원 활용시설 등을 짓는 과정에서 사업 자금 조달 방법으로 은행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 기업어음(ABCP) 742억원어치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KT ENS는 회사 직원이 중소기업들과 짜고 하나은행 등 16개 금융사를 상대로 3000억원의 대출 사기를 일으킨 사건에 연루돼 지난 3월 12일 법정관리를 신청해 21일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기업어음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개인투자자들, 최대 742억원 손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I(시스템통합) 업체인 KT ENS는 2009년 태양광 발전소 건설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했다. KT ENS는 시공사 자격으로 코리안알파솔라세컨드 등 시행사가 발전소를 지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만기 1~4개월짜리 ABCP를 판매하는 데 지급보증을 섰다.
ABCP 만기가 돌아오면 새 ABCP를 찍어서 기존 ABCP를 상환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2월 말 기준 1857억원의 잔액이 남았다. 이 돈으로 KT ENS가 진행하던 사업장은 루마니아 태양광 발전소 3곳, 폐고철 활용공장 등 국내 사업장 7곳 등 총 10곳이었다.
그런데 KT ENS가 법정관리로 1857억원의 ABCP를 갚을 수 없게 됐다. 1857억원 가운데 개인이 투자한 것은 742억원으로, 투자자는 총 625명이다. 나머지 1115억원은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갖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기업·경남·대구·부산은행 등 4개 은행과 삼성증권 등 5개 금융사를 통해 구입했다. 그런데 금감원이 이 5개 금융사에 자체 점검을 지시한 결과 불완전판매 정황이 포착됐다. 박세춘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금융사들이 투자 위험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ABCP를 판매한 사실이 포착돼 자필 서명 대조 등 특별 검사를 통해 밝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이 투자금을 전액 잃는 것은 아니다. KT ENS의 회생 계획에 따라 일정 비율만큼의 손실을 볼 수 있다. 또 KT ENS의 법정관리가 무산될 경우 사업장을 정리하고 남은 돈을 배분받을 수 있다. 여기에 5개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사실이 확인되면 금융사를 통해 배상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KT ENS는 왜 신재생에너지 사업 벌였나
IT업체인 KT ENS가 왜 무리하게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였을까. 금감원에 따르면 KT ENS는 국내외 10개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과 관련해 공사를 담당하는 시공사로 참여하면서, 지급보증을 섰다. 각 공사의 시행사는 '말루 제1차 유한회사' , '코리안알파솔파퍼스트 유한회사' 등 대부분 유한회사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이름이 있는 회사도 아니다. KT ENS가 이런 회사와 함께 신재생 사업을 벌인 이유도, 지급보증을 선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KT ENS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면서 실체가 없어 보이는 시행사를 들러리로 세우고 사업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T ENS는 지난 2월 20일 이번에 문제가 된 각 사업 시행사로부터 총 450억원대의 채무를 인수하고 공시를 했다. 당시 공시에는 "채무인수로 인한 당사의 중요한 영향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과 20여일 뒤 KT ENS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KT ENS가 기업어음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고, 수백 명의 개인들이 투자금을 떼일 위기에 놓이는데도 '중요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공시를 한 점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업구조나 절차에서 석연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Asset-Backed Commercial Paper. 부동산이나 매출채권 같은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CP)이다. 담보가 있지만 발행 기업의 사정으로 담보물의 가치가 떨어지면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