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도 '올레'... 이석채 선긋기보다 '창조경제' 시급?[현장] 황창규 KT 회장 취임 첫 간담회... 새노조 "비리 자정 노력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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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규 KT 회장이 20일 오전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융합형 기가 시대'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
ⓒ KT |
"올레 브랜드 교체? 지금은 그거 바꿀 여력 없다. 할 일이 많다."
황창규 KT 회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입을 열었다. 황 회장은 20일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이석채 체제와 완전히 단절하기보다 새로운 DNA를 심어 회사 체질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1등 KT' '싱글 KT'를 앞세우면서도 '올레' 브랜드를 남겨둔 것도, '이석채 낙하산'이 있던 자리에 한직에 있던 KT 출신 임원들을 중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융합형 기가 시대 열겠다"... 박근혜 '창조경제' 지원 강조
세월호 희생자 애도 분위기 탓에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행사는 곳곳에서 기술자 출신 CEO인 황창규 색깔이 묻어났다.
우선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는 작은 기술 전시회장으로 바뀌었다. 기존 초고속인터넷(100Mbps)보다 10배(1Gbps) 빠른 '기가 인터넷', LTE와 와이파이를 결합해 무선인터넷 속도를 400Mbps대로 3배 늘린 '기가 패스' 등 KT 통신 인프라 서비스를 시연하는 자리였다. 이날 영업을 재개한 경쟁사들이 단말기 출고가 인하 같은 즉각적인 계획을 내놓는 시점에 황 회장은 엉뚱하게 앞으로 3년간 4조5천억 원이 들어갈 '기가토피아'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황 회장은 "ICT 생태계를 주도하고 기술과 성장을 이끌어가야 할 통신사업자들이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면서 "내가 바꾸겠다, 차별화된 기술, 상품, 서비스, 품질 경쟁으로 완전히 판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날 20여 분에 걸친 발표 시간을 대부분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과 에너지, 보안, 미디어, 헬스케어, 교통관계 등 5대 미래 융합 서비스 소개에 할애했다.
한 기업의 CEO라기보다는 'CTO(최고기술책임자)' 분위기가 더 강했다. '반도체 집적도가 매년 두 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 회장은 삼성전자 CTO를 거쳐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 CTO'에 해당하는 국가전략기획단장을 맡았다.
이날 발표도 결국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앞장서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황 회장은 "2011년 독일 하노버 CeBIT(정보통신전시회) 기조연설에서 IT와 타 산업간 융합으로 편리를 넘어 편안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스마토피아'를, KT에 와서 '융합형 기가'로 완성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3만7천 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9조3천억 원 생산 유발 효과를 만들어 '창조경제'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KT새노조 "개인정보 유출 보상-명퇴 인권 침해 언급 안해"
▲ 이해관 KT 새노조 대변인이 20일 오전 황창규 KT 회장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광화문 올레스퀘어 앞에서 인권 존중 경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
ⓒ 김시연 |
이날 행사 자체가 '기술 간담회'로 포장되다 보니 정작 단말기 출고가, 통신요금 인하 문제나 대규모 개인정보유출 보상 대책과 같이 KT 고객들이 궁금해 하는 당면 과제들은 잠시 스쳐가는 발표 영상 속에 묻혔다.
지난달 말 8304명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 명예퇴직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가 구조조정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번 구조조정은 뼈를 깎는 노력과 (명퇴 신청)하신 분들에게 고통스런 결정이었다"면서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짐한다"고 얘기하는 데 그쳤다.
이날 오전 전시회 부스로 가로막힌 올레스퀘어 정문 앞에서 KT 해직자인 이해관 KT새노조 대변인은 황 회장에게 '인권 존중 경영'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KT새노조는 이날 기자간담회 직후 "황 회장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융합형 기가 시대를 열겠다'는 원대한 비전 선포 등은 있었으나 정작 현재 KT 경영과 관련해서 시민사회가 일관되게 우려를 표명한 현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면서 명예퇴직 과정의 인권 침해 논란을 언급하지 않은 데 우려를 나타냈다.
아울러 이들은 "취임 100일이 넘도록 전임 이석채 회장 시절 비리 연루자에 대한 그 어떤 단호한 조처도 하지 않았다"면서 "전임 회장 시절 발생한 비윤리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 자정하려 하지 않는 황창규 회장의 경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경영진에서 물러난 낙하산 인사나 비리 연루자들을 고문이나 자문 형태로 계속 남겨둔 걸 꼬집은 것이다.
"과거 잘못된 결정도 승계해서 잘 가꿔야"... '낙하산' 논란도 일축
▲ 황창규 KT 회장이 20일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
ⓒ 김시연 |
실제 이날 황 회장은 전임 회장이나 이전 사업과 관련된 질문에 말을 아꼈다. 이석채 체제에서 만든 '올레'에 이은 새로운 브랜드 전략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황 회장은 "과거에 잘못된 결정을 했더라도 승계하고 가꿔야 하고 더 멋있는 걸로 만드는 게 내 임무"라면서 "올레는 이미 90%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고 회사 문제와 연계돼 그런(부정적인) 느낌이지 앞으로 좋은 브랜드로 바꿔가겠다"고 밝혔다.
이석채 시절 1조 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도 아직 결과를 내놓지 못한 사내 IT통합프로젝트인 BIT 사업에 대해서는 "고객이 편하게 고객 중심으로 툴이 만들었어야 했는데 만드는 사람과 생산자 위주로 되고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잘못 결정됐다"면서도 "BSS(차세대 업무지원시스템)은 수개월 동안 계획을 다시 세워 재설계에 들어간 상태"라고 밝혔다.
또 이석채 전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아프리카 르완다 통신 인프라 구축 사업에도 황 회장은 "과거에 있던 전략을 승화시켜 글로벌에 걸맞을 전략을 펼칠 것이고 르완다도 해외 사업 모델 가운데 하나"라면서도 "마치 르완다가 대표로 돼 있는데 해외 사업 성공은 쉽지 않다"면서 큰 비중을 싣지는 않았다.
하지만 황 회장의 '인사 원칙'만큼은 '전문성'을 내세워 낙하산 인사를 영입했던 전임 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 이남기 KT스카이라이프 사장 임명이나 삼성전자 출신 임원 영입 논란에도 황 회장은 "내 인사 원칙은 전문성이고 각 부문장들은 모두 내가 몰랐던 KT 출신"이라면서 "어떤 사람을 영입하든 잣대는 전문성과 글로벌 1등 KT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낙하산 인사' 논란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