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KT 직원이세요?” KT CFT 직원은 회사가 무섭다 | ||||||||||||||||||||||||||||||||||||||||||
[KT CFT 동행취재] 민영화된 전주 뛰어다니는 불안 노동자들 | ||||||||||||||||||||||||||||||||||||||||||
| ||||||||||||||||||||||||||||||||||||||||||
1986년 1월15일 한국통신 시절 입사한 장교순(1962년생)씨는 현재 KT CFT 경기업무지원1팀 소속이다. CFT는 ‘Cross Function Team’으로 KT그룹 내 업무를 지원하는 조직으로 지난달 8304명 특별명예퇴직 실시 뒤 신설됐다. 전국 5개 광역본부에 총 41여 개 팀이 있다. 소속 직원은 총 291명이다. 이곳에는 장교순씨 같이 명퇴 상담을 거부하거나 조직 개편 과정에서 희망근무지 조사에 응하지 않은 직원이 많다. KT 안팎에서는 이곳을 ‘아오지탄광’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 같은 오명(?)과 달리 CFT 직원은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CFT 직원들은 매일 담당지역을 돌며 ‘설치나 운영을 잘못해 위험한 통신주’(오공사)를 확인해 회사에 보고한다. 여기에 회사는 KT렌탈 차량서비스, KT엠하우스 모바일상품권, KT텔레캅 보안서비스 ‘전문영업’을 시켰다. CFT 직원들은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고 사실상 퇴사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KT는 ‘문제적 조직’ 사무실 앞에 돌연 CCTV를 달고, 이 영상을 따로 관리한다. 일부 직원들은 ‘CFT철폐투쟁위원회’를 만들고, 매일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23일 투쟁위원회는 CFT 직원들에게 △팀장과 대화를 거부하고 △오공사 현황을 등록하지 말고 △일인시위를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디어스>는 24일 장교순씨를 동행취재했다. 그는 “우리는 회사가 우리를 버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출근 전 일인시위 “CFT 해체하라” 오전 8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만난 장교순씨는 손팻말을 들고 일인시위 준비에 나설 참이었다. 그와 같은 팀 동료는 역 좌우에 자리를 나눠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KT가 8304명을 구조조정한 것도 모자라 직원 퇴출기구 CFT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30분 뒤에야 그는 사무실로 향했다. 걸어서 10분 거리. 이름도 복잡하다. 의정부지사 의정부지점 경기중앙사무실이다. 이 건물에는 KT 직원이 총 13명 있다. 4층짜리 건물은 KT 소유다.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네일숍이 들어와 있다. KT는 1층에 고객 담당 직원을 한 명 두고, 3층 CFT에 12명을 배치했다. 이 사무실에 새 살림을 차린 KT 직원은 관리자인 팀장 포함 12명이다. 일산에서 온 직원들도 있을 만큼 이번 인사는 황당했다고 한다. 경기1팀은 의정부를 비롯 양주 동두천 연천 양평을 담당한다. 양평 같은 경우 사무실에서 대중교통으로 3시간이 넘는 거리다. 뭔가 이상했다.
9시10분 팀장 “어제 그대로, 전달사항 없다” 오늘도 특별한 전달사항은 없었다. 팀장 주재 조회가 끝나자 직원들은 4층 옥상으로 올라왔다. 동료 한 명이 휴가를 가 오늘은 열 명이 모였다. 경기1팀 직원들은 모두 40대 이상이다. 11명 중 9명은 50대고, 이중 둘은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옥상에서는 ‘오늘 할 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장교순씨는 “오늘도 나인투식스(9시 출근 6시 퇴근)를 지키자”고 말했다. CFT철폐투쟁위원회 지침이다. 옥상에서 기자가 직원들과 나눈 첫 대화는 이랬다. “혹시 KT 직원이에요?” “아니요.” “KT 직원만 아니면 돼요.” 이들은 KT를 믿지 못했다. 장교순씨는 “CFT까지 왔는데 회사를 더 이상 믿을 수 있겠냐”고 했다. 회사 눈치를 안 볼(?) 연차지만 회사 이야기가 나올 때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한 직원은 “혹시 도청장치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까지 말했다. 적어도 20년 이상 KT를 다니는 동안 통제와 감시가 몸에 뱄다.
오전 10시 사무실, CCTV가 떡 하니 CFT 전후 가장 달라진 건 ‘감시’다. 회사는 사무실 안팎에 CCTV를 달았다. 경기1팀은 사무실 출입문 바로 위에 CCTV가 있다. 회사는 “도난방지 목적”이라 설명했지만 직원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이 CCTV만 생중계하는 모니터가 따로 생겼기 때문이다. 충청지역에서는 사무실 내부에 CCTV를 달았다. 장교순씨는 “감시 목적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항의 차원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출근한다고 한다. 이 시각 직원들은 제각각 자기 동선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CFT는 2인1조로 관할지역을 순찰한다. 이들은 회사가 만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오공사’를 이용한다. 지역을 돌며 잘못 설치되거나 이상이 있는 전봇대(통신주) 등을 사진으로 촬영, 등록하는 게 이들의 업무다. 그런데 한 달 동안 딱 한 건만 수리가 완료됐다고 한다. 장씨는 “구조조정으로 현장에 사람이 없으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퇴출조직’ 만들더니 ‘전문영업’ 시켜 게다가 KT는 회사에 청춘을 바치고 ‘잔류’를 선택한 직원들에게 ‘전문영업’을 시켰다. CFT는 본사 서비스는 뺀 계열사 상품을 판다. KT텔레캅의 보안상품, KT렌탈의 차량서비스 상품, KT엠하우스의 기프트쇼 등이 퇴직을 앞둔 50대 남성들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24일 팀장은 이제는 CFT가 인터넷과 IPTV 셋톱박스를 수거할 계획이라고 전달했다. 오공사에 전문영업, 여기에 장치 수거… 졸지에 이들은 KT ‘만능직원’이 됐다. 장교순씨는 “보안상품과 차량렌탈, 모바일상품권은 법인영업이 기본인데 이걸 CFT에 맡긴 건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말했다. KT는 그룹 차원에서 CFT 직원들에게 그룹사 상품을 교육했는데 상품 당 교육시간은 한두 시간에 불과했다. <미디어스>가 확인한 ‘2014 현장지원과정 시간표’를 보면 KT엠하우스와 KT렌탈의 상품 교육시간은 각각 1시간40분이었다. 그나마 길었다. KT텔레캅 보안상품 교육시간은 50분뿐이었다.
대기업 직원들의 점심식사 “8천원은 너무 비싸” 제각각 현장을 나간 뒤 점심시간에 다시 모였다. 직원 대부분의 현장이 동두천 지역이라 이곳에 모였다. 앞서 장교순씨는 ‘민물새우매운탕’을 제안했고, 직원 여덟 명이 모였다. 장씨를 제외한 직원들은 의정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 식당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너무 비싼 것 아니야? 이제는 다시 싼 집으로 갑시다.” 사실 이들은 사무실 근처 시장에서 4천 원짜리 백반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50대 남성들의 점심식사, 그것도 앞에는 한탄강이 보이는 곳에서 매운탕을 먹는데도 ‘소주’가 없었다. “딱 한 잔씩만 하면 좋겠다”는 직원도 있었지만 모두 손사래를 쳤다. 회사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CFT가 어때서? 난 좋은데…”라는 푸념이 나왔고, “○○도 CFT에 왔더라”, “실거주지는 어딘데 어디로 떨어졌더라”는 이야기도 오갔다. CFT 배정은 사실상 ‘스스로 나가라’는 경고지만 이들은 모두 정년퇴직을 꿈꾸고 있다.
버스 타고 걸어다니며 전주 점검하는 직원들 점심을 먹고 현장을 찾았다. KT가 수천 명을 정리하고 야심차게 만든 조직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이날 장교순씨가 돌아야 할 지역은 동두천역에서 3㎞ 정도 떨어진 안흥마을. 이곳에 설치된 전주와 통신설비를 점검해야 한다. 지하철역에서 빠른 걸음으로 30분 거리다. 쓰러지기 직전인 KT 전주들과 땅에 닿을 듯 위험한 통신선이 보였다. 장씨는 “전주 색이 하얗게 변한 것은 균열이 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보통 두 종류의 전주가 있다. 전신주와 통신주다. 전선이 이어진 것은 한국전력, 전화선이 묶인 것은 KT가 관리한다. 이 선들은 최소 4.5m 이상 높이여야 안전하다. 전주의 경우, 선에 의지해 버티고 있는 게 많지만 이걸 고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시골의 경우 사정이 더 열악하다는 게 장교순씨 설명이다. 그는 “현장 사람들을 내보낸 결과,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민영화된 전주는 위험해 보였다.
오후 5시, 그리고 목욕티켓 한 장 회사가 차량을 지원하지 않는 탓에 CFT 직원들은 하루 종일 걷는다. 의정부에서 관할지역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 보통 한 시간 남짓, 여기서부터 걷고 사진을 찍고 등록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이동해 한 시간을 왕복해 걷다 보면 땀이 물처럼 흐른다고 한다. 두꺼운 안전화와 쥐색 작업복에 땀에 찌든다. 팀장은 땀 냄새 나는 직원이 돌아오는 오후 5시, 목욕탕 티켓을 한 장씩 준다. 장교순씨는 “이제 KT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을 앞둔 24살 아들에게도 “KT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KT는 명퇴 거부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없는 전단지 7장과 물티슈, 그리고 볼펜을 나눠줬다. 언제 어디서든 영업하라고. 내일 ‘장비 수거’ 직원 3명이 결정되면 직원들은 또 조용히 4층 옥상에 올라갈 거다. 퇴직을 불과 몇 달, 몇 년 앞둔 50대 KT 노동자들의 오늘이다. 그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