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최태원 부재' 1년반…부동의 SKT마저
경쟁사보다 직원수 적지만 허리띠 졸라매기…작지만 효율성 있는 조직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정말 고민이다. SK하이닉스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계열사에 해당되는 얘기다."
SK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 관계자의 발언이다. SK그룹은 정유와 통신 등 주력 계열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성장은 정체된 가운데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위한 투자는 중단됐다. 최태원 회장 부재 1년 반 만에 대부분의 계열사가 구조 개편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직면했다.
◇ 성장은 '정체', 투자는 '중단'
그룹 최대계열사 SK이노베이션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2256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67.5% 급감했다. 석유사업에서 글로벌 수요 감소로 정제마진이 축소됐고, 석유화학 분야도 파라자일렌(PX) 등 방향족 제품의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크게 낮아졌다. 최근 들어 아시아, 중동 지역에서 석유 정제시설과 PX설비가 잇따라 새로 들어서 실적 개선은 당분간 요원해 보인다.
매출액 기준으로 2위 계열사인 SK텔레콤도 2010년 이래 연간 매출이 16조원 안팎으로 정체됐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사업자간 경쟁만 격화되고 있다. 천연가스 수입과 발전 사업을 하는 SK E&S가 최근 수년 동안 그룹의 '캐시카우'로 떠올랐지만 올들어 전력 상황이 안정되면서 상황은 예년만큼 좋지 않다.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중단됐다. 최근 들어 동부발전당진, 동부하이텍, KT렌탈, 한진해운 일부 사업부문 등 굵직한 인수합병(M&A) 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유력 매수자로 거론되는 기업 가운데 SK는 빠져 있다. SK 관계자는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들어가는 거래인만큼 그룹 대주주의 판단이 필수적"이라며 "면회 시간 제약 등으로 최태원 회장이 투자 대상에 대해 깊이 있는 검토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계열사들은 이미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하기도 했다. SK네트워스, SK해운, SK건설도 지난해 각각 자산매각과 유상증자 등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구안을 수립해 추진했다. SK마케팅앤컴퍼니와 SK플래닛은 합병했다. 그룹 수뇌부에서도 현재의 상황을 '위기'라고 판단하는 데 동의한다. SK그룹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최근 워크숍을 갖고 중장기 경영계획의 추진 실적을 공유하고 변경사항을 논의한 이유다.
◇ SKT, 네트워크-서비스-투자부문 분할 왜? '인력 조정' 효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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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말 기준 SK텔레콤 인력은 4254여명. SK브로드밴드 1580명까지 포함하면 5800명 수준이다. 4월말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한 KT 2만4000명은 물론 LG유플러스 7000명보다 적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이보다 더 인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다. 하지만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만으로 SK텔레콤 인력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룹은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는 명예퇴직 등 인원 감축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IMF 사태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인원 감축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결국 초점은 조직 효율성에 맞춰질 전망이다. SK텔레콤에 이동통신의 근간인 네트워크만 남기고 이동통신서비스 등은 분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SK텔레콤은 사업 분할을 통해 인력과 사업을 조정한 바 있다.
SK텔레콤 지난 2011년 10월 플랫폼 사업부문을 SK플래닛으로 물적 분할하면서 700명의 인력을 줄였다. 사업 분할을 하면서 SK하이닉스 지분을 보유한 부문만 따로 떼어낼 가능성도 높다.
장기적으로 지주회사인 SK와 합병을 통해 SK하이닉스를 SK 자회사로 두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고 SK하이닉스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쉬어진다. 특히 KT가 비씨카드를 KT캐피탈에서 떼어내 KT 자회사로 편입할 때와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작지만 효율성…네트워크 외 사업 과도한 규제 영향 최소화
SK텔레콤이 인력과 사업을 조정하는 것은 작은 조직을 통해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최근 이동통신시장은 앞날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문화가 다른 조직을 분리해 효율성도 높일 필요도 있다. 규제 이슈도 분할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SK텔레콤이 SK플래닛을 분리한 이유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요구되는 플랫폼 사업을 다소 경직된 문화의 SK텔레콤에서 분리하고 이동통신사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플랫폼 사업과 배치돼서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SK그룹이 SK텔레콤에서 손을 떼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SK그룹이 중요한 캐시카우였던 SK텔레콤을 매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더이상 지금과 같은 사업구조에서는 SK텔레콤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며 "플랫폼 회사를 분사한 것처럼 다양한 사업조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