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가전업체 모뉴엘의 3조2000억원대 허위 수출 사건과 관련, KT 계열사인 네트워크장비업체 KT ENS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KT ENS가 모뉴엘로부터 팔리지도 않을 제품을 받아 수출채권을 발행했을 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 유통업체를 알선하는 등 이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관세청은 3일 2007년 이후 KT ENS와 모뉴엘의 거래 내역 등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 거래가 사전 공모에 따른 허위 수출입으로 보고 관련 직원을 불구속 입건하는 등 사법처리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KT ENS, 사실상 모뉴엘의 은행 역할

관세청에 따르면 KT ENS는 2007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7년 동안 모뉴엘로부터 시장성이 없는 폐컴퓨터 등으로 구성된 홈시어터PC(HTPC)를 구매해 해외 현지 유통업체에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KT ENS는 물건을 구매한 뒤 수출채권을 발행해줬고 모뉴엘은 이 채권을 은행 등 금융권에 할인매각해 자금을 융통했다. 금융권은 수출채권 발행자가 대기업 계열사인 KT ENS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대출해줬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이런 식으로 KT ENS가 7년 동안 발행한 수출채권이 2000억원에 달한다.

한성일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조사국장은 “초기 모뉴엘은 신용이 낮았기 때문에 대출이 어려웠는데 KT ENS 덕분에 수월하게 대출을 받았다”며 “모뉴엘의 급성장 과정에서 KT ENS는 사실상 모뉴엘의 은행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KT ENS는 모뉴엘로부터 받은 HTPC를 ASI 등 미국 대형 유통업체에 판매했다. 물론 실제 수요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물건은 창고 등에 쌓아 놓고 서류만 오가는 방식이었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모뉴엘은 이를 PC 제조에 필요한 부품 구입이라는 명목으로 서류를 조작해 국내에 들여왔고 KT ENS가 발행한 수출채권을 매각해 융통한 자금을 수입대금조로 KT ENS, ASI 등에 보냈다. 모뉴엘로선 KT ENS의 수출채권을 이용해 은행빚으로 은행빚을 갚은 셈이다.

○또 사기대출 연루된 KT ENS

관세청에 따르면 KT ENS는 직접 수출채권을 발행했을 뿐 아니라 ASI 등 해외 유통업체도 적극 소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KT ENS는 지난해에도 이와 비슷한 사기대출 사건에 휘말렸다. 한 직원이 대표이사 명의를 도용한 대출서류를 협력업체에 발급해줬고 이를 이용해 2008년 5월부터 올 1월까지 시중은행 16곳을 상대로 1조8335억여원의 사기대출을 받아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KT ENS는 올초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 또다시 비슷한 사기대출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KT ENS 관계자는 “모뉴엘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적합한 검수 및 통관절차를 거쳐 정상적인 거래로 진행해 왔다”며 “KT ENS도 피해자로 ASI로부터 235억원을 받아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세청 관계자는 “KT ENS가 허위 수출채권을 발행한 점이 현지 유통망 및 관련 서류를 통해 확인됐다”며 “KT ENS 외 다른 국내외 총판에 대한 조사도 본격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