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먼저 내민 노조 |
KT 노-노 갈등 새 국면, 사측 수용땐 또 혼란 |
KT 노사는 26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시작한다. 5개 분야 8대 요구(안)이 교섭 대상이다. 노사는 22일 KT 분당 본사에서 고용을 비롯해 임금과 복지, 제도개선, 복지기금 출연 등 5개 분야 8개 요구(안) 및 단체협약 개폐에 관한 사항을 일괄 상정시켰다. 이때 노조는 고용 분야와 관련해 ‘정리해고’ 조항을 사측에 먼저 제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KT 노조 관계자는 "노조 측이 사측에 먼저 정리해고를 제시한 것은 맞다"면서도 "정리해고 조항을 법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오히려 노동자 고용 안정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본지가 입수한 KT 임단협 37조 정리해고 조항에 따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또는 부득이한 사유로 인원을 감원할 때는 최대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후 사유를 최소한 90일 전에 노동조합에 통보하고 △정리해고 필요성·긴박성 △감원인원의 수·범위 △정기기준과 적용방법·해당자 등에 대해 노사 합의를 거쳐 결정된다.
사측은 정리해고 조항과 관련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KT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더 이상 정리해고가 재발되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이번 정리해고 조항을 실제로 옮기기에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KT 새노조는 사실상 정리해고에 들어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조재길 KT 새노조 위원장은 "노조 측이 다른 조항도 아니고 정리해고를 사측에 먼저 제시했다는 것은 조합원을 입장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라며 "이번 정리해고 조항이 포함된 임단협이 통과될 경우 사측은 언제든지 직원을 내칠 수 있는 칼자루를 손에 쥐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KT 전국민주동지회 관계자 역시 정리해고 조항에 대해 "특정 부분의 실적 부진을 핑계로 정리해고가 부득이하다고 주장하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며 "당장 대다수의 직원이 소속된 커스터머 부분부터 칼날이 들어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노조 측이 먼저 정리해고를 제의한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면서도 "아직 최종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리해고 90일 전에 노조에 통보하는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정리해고 해당자가 가처분이나 무효소송을 진행할 경우 40일 전보다는 90일 전에 시작하면 직위를 유지한 채 소송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정리해고와 관련된 부분은 노사 모두 매우 민감한 사안인 만큼 투명한 협의와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노조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노조 집행부가 독단으로 밀어붙였다는 인상을 주면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등 후유증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KT 노조원들이 노조가 제시한 정리해고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작년에 8320명에 이르는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측의 말과는 달리 황창규 회장 체제에 불신의 벽이 높이 세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