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꾸라진 롯데렌탈, KT 신기루였나
롯데그룹이 1조원을 들여 인수한 롯데렌탈(옛 KT렌탈)의 실적이 급감하면서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10여년 동안 '기업 쇼핑'에 15조원 가까이 쏟아부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공격적인 M&A(인수·합병) 행보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렌탈은 올 들어 3분기 누적 순이익이 8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 이상 줄었다. 이 기간 영업이익도 598억원으로 33% 줄었다. 연결회사를 제외한 롯데렌탈 자체의 별도 실적은 적자로 돌아섰다. 올 3분기 누적 순손실이 30억원을 넘는다.
인수 당시 롯데그룹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됐으나 롯데렌탈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롯데렌탈의 시장점유율은 25.0%로 지난해 말 26.6%보다 2%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2위 업체 AJ렌터카 (12,050원 250 2.1%)와의 점유율 격차도 1.6%포인트 줄었다.
지난 3분기 기준으로 롯데렌탈의 매출 구성을 보면 차량렌탈이 71.3%, 중고차 매각이 21.0%, 일반렌탈이 7.7%다. 매출 규모는 차량렌탈 부문이 좌우하지만 실제 이익의 대부분은 3년 이상 된 렌터카를 매각하면서 발생하는 중고차 매각 차익에서 나온다. 통상 3년이 되면 중고차 가치는 55% 감가상각되는데 렌탈회사들은 이를 50% 수준에 팔아 5%가량의 이윤을 남긴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최대시장인 동남아와 중동의 경기가 부진해지면서 렌탈업계 전체 수익성이 떨어졌다"며 "게다가 KT렌탈(현 롯데렌탈)은 지난해 매각을 앞두고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서 쓸만한 중고차를 미리 처분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고가 인수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분위기다. 롯데렌탈 인수가는 당초 6000억~8000억원으로 거론되다 입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롯데그룹이 1조2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자산가치 기준으로 인수가가 PBR(주가순자산비율)의 3배 수준에 달했다. 렌탈업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AJ렌터카가 인수를 검토하다 접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았다는 분석이다. SK그룹은 KT렌탈 인수시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평가되면서 유력 인수 후보로 꼽혔으나 낙마한 뒤 오히려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던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1조원대 베팅은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는 롯데그룹의 경영철학에 비춰도 파격적인 행보였다는 평가다. 시장 관계자는 "오너의 의지 없이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겠느냐"며 "자칫 하이마트의 재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2012년 말 전자제품 유통업계 1위 기업인 하이마트를 1조2480억원에 인수했지만 이렇다 할 시너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해 매출이 3조7543억원으로 전년비 6.9%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1444억원으로 19.3%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최근 4년 연속 하락세다.
시장에선 롯데렌탈의 다음달 초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롯데렌탈의 실적 부진과 회사채시장의 냉각 분위기를 감안하면 자금 조달이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