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의 경영 활동에 대해 직원들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반감(反感)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시청을 강제한다고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생기진 않습니다.”
23일 오전 8시10분 KT 광화문 사옥.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지만 마치 지각이라도 한 것처럼 허겁지겁 뛰어들어오는 직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KT 직원들은 매주 월수금 오전 8시20분 방송되는 사내방송을 시청한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사내방송에 대한 불만들이 오갔다.
KT가 직원들에게 사내방송인 KBN 시청을 무리하게 강제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회사 측은 사내방송이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직원들은 의무 시청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황창규 KT 회장은 취임 이후 사내방송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KT는 지난해 10월부터 주 2회 시행하던 사내방송 횟수를 주 3회로 늘리고, 시청 부서를 영업 등 일부 부서에서 전 부서로 확대했다. 방송 시간도 오전 8시40분에서 20분 앞당겼다.
KBN은 황 회장의 경영 성과와 경영 메시지를 주로 다룬다. KT는 “전국에 흩어진 전 직원들에게 회사의 경영 활동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내방송을 활용하고 있다”며 “직원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방송을 시청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KT가 직원들의 시청 여부를 확인하는 등 사내방송 시청을 사실상 의무화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부서에서는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점검해 사내방송 시청 여부를 조사하는가 하면, 심지어 한 부서에는 황 회장의 기자간담회 방송을 본 뒤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KT 사내방송 관계자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사업부서들의 시청 여부를 확인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일부 임원과 팀장들이 과잉 충성으로 무리하게 직원들을 감시하면서 예상 못한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직원들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KT는 인트라넷 사내 익명 게시판을 폐쇄했다. 현재 KT 사내망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소속과 이름 등을 인증해야 한다. 사내 게시판이 사라지면서 블라인드 등 외부의 KT 게시판에 불만의 글이 몰리고 있다.
KT 고위 임원은 “방송을 정보 채널로 잘 활용하면 좋지만, 시청을 강제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지 사내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자율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