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2년 12월 31일 KT에서 해고된 지 3년만에 복직 판결을 받은 이해관 통신공공성포럼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28일 공익제보자인 이해관 대표를 복직시키라는 국가권익위원회 보호 조치가 정당하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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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승리했다!"
2월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지난달 28일 대법원으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은 이해관(52) 전 KT 새노조 위원장을 축하하는 동료들의 외침이었다.
'7대 경관 국제전화 사기' 공익 제보자, 3년 만에 복직 앞둬
KT는 이석채 회장 시절이던 지난 2012년 12월 31일 이 전 위원장을 해고했다. 무단결근을 내세웠지만 그해 3월 정직과 5월 무연고지 전보 발령에 이은 사실상 '보복 조치'였다.
이해관 전 위원장은 지난 2012년 4월 이른바 '제주 7대 자연경관 투표 국제전화 사기 사건'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으로, KT에겐 눈엣가시였다(관련기사: 온 국민이 영국에 국제전화? "KT에 낚였다").
KT는 지난 2013년 4월 공익제보자 해고 처분을 취소하라는 국가권익위원회 보호조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지난해 5월 징계·전보 처분에 이어 지난 1월 28일 해고 처분까지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3년 만에 일단락됐다. KT의 완패, 공익제보자 이해관의 완승이었다(관련기사: [카드뉴스] 법원도 인정한 'KT 공익제보자 괴롭히기').
1일 오후 기자회견을 마친 이해관 전 위원장을 KT 사옥 1층에 있는 올레스퀘어 카페로 불러들였다. 바로 3년 전 KT 직원들은 이곳에서 잠시 몸을 녹이려던 이 전 위원장을 밖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이날은 아무도 그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관련기사: "KT, 공익제보했다고 보복 해고").
KT는 아직 대법원 판결에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이 전 위원장 복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전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복직에 앞서 자신을 해고한 KT와 황창규 회장의 사과와 '국제전화 사기사건' 책임자 징계를 요구했다. 아울러 복직하면 KT가 윤리적이고 깨끗한 기업이 되도록 황 회장과 회사에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고발하는 '모범사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송곳 인생은 내 운명, 정의감보다 자존심이 용납 못해"
▲ 3년만에 복직 확정 판결을 받은 이해관 전 KT 새노조 위원장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3년 전 바로 이곳에서 KT 직원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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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지난 3년 사이 그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KT 안에 있을 때는 이석채 회장과 MB 낙하산의 일탈이란 생각이 강했다면 해고자가 돼 밖에서 보니 KT의 구조적인 문제란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거꾸로 내가 KT 경영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이 생겼어요. 오너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 포위돼 있는데 이석채나 황창규와 다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과감한 통신요금 인하로 국민 편에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을 막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정권의 쌈짓돈이고, 국민에게 지탄받는 기업이 될 수밖에 없어요."
KT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 원대를 회복했다. 황창규 회장 취임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른 적자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KT 내부엔 구조조정 위기감이 가시지 않았다.
"KT의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수준인 건 분명해요. KT와 통신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경쟁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이 문제를 경영진이 해결하려면 직원들과 깊이 있게 소통해야 해요. 들들 볶아 내보내지 말고 다 같이 하자, 회사가 어려우면 임금을 줄일 수도 있다고 하면 직원들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회사는 직무 교육도 제대로 안 시키면서 저성과자로 몰아 쫓아내려 하고 있어요. 회사가 직원과 소통했으면 좋겠고 내가 복직해서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이해관 전 위원장을 보면서 최규석 작가 웹툰 <송곳> 주인공이 떠올랐다. 정작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는 그는 '송곳' 의미가 '내부고발자'와 비슷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송곳 같은 삶이) 운명인 것 같아요. 정의감 이전에 자존심이 상했어요. KT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데 화가 나더라고요. 솔직히 해고까진 예상 못 했어요. (7대 경관 국제전화 관련) 회사가 구구하게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안면몰수하고 거꾸로 내가 거짓말했다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거는 거예요."
▲ 이해관 전 KT 새노조 위원장에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회사 동료들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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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낙천적인 성격인 이 전 위원장이지만 해고자 생활은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비슷한 처지에 놓인 공익제보자들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동료들의 응원 덕에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공익제보자 모임에 나가면 저만큼 표정이 밝은 사람이 없어요.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사람들에 잊히는 건데 KT가 계속 잘못을 저지른 탓도 있지만 새노조 동료들과 시민단체 도움이 컸어요. 사실 KT가 없으면 제 인생도 없어요. 전 KT가 자랑스런 직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저를 많이 기억할 테고 안 그러면 저도 패배감이 클 것 같아요. 복직하면 연구개발원 같은데 가서 통신 민영화 과정을 연구하고 싶어요. 그런데 쉽지 않겠죠.(웃음)"
KT 제2노조인 새노조 조합원도 그사이 40여 명으로 늘었다. 제1노조에 비하면 아직 소수지만 보수적인 KT 노사 문화 속에 '정시 퇴근'과 같은 작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KT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게 경쟁력 강화 핵심인데 새노조도 잘못된 기업 문화에 저항하는 역할밖에 못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회사와 어떻게 기업 문화를 바꿀지 진지하게 논의하고 사회에 긍정적 역할도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회사가 과도하게 나오면 전 '쌈닭'이 될 것이고 그냥 방치하면 연구에 매진하고, 소통하면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가 될 겁니다."
'모범사원'을 꿈꾸는 이해관 전 위원장이 복직 이후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결국 KT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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