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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까지 홍보해 설마설마했던 일이…
‘제주 7대경관’ 국제전화 의혹, 어떻게 꼬리 밟혔나
하니Only 구본권 기자기자블로그

‘제주 7대경관’ 국제전화 의혹, 어떻게 꼬리 밟혔나

사회단체·국내외 누리꾼 치밀하게 조사해 ‘집단지성’ 발휘
“그정도 집중 국제전화면 병목현상” KT 내부 제보 결정적
계속된 부인에 국제전화 최고량 정보요청…끝내 드러난 ‘꼼수’
 

“수백억 예산이 동원된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국제전화가 국제전화가 아니었다”는 제보를 2주 전에 처음 접수할 때만 해도, 과연 이를 취재해야 할지 망설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두차례나 선정 캠페인에 참여하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말 그대로 범국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제적 행사에 속임수나 다름없는 마케팅이 동원됐다는 의심을 품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자가 정운찬 범추위 위원장을 만났을 때 정 위원장이 “제주도를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하게 하는 뜻깊은 캠페인에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요즘 그 일을 홍보하러다니느라 바쁘다”며 “이거 중복투표해도 되니까, 열심히 참여해달라”고 할 때만 해도 ‘맡은 일을 신나고 열심히 하는구나’ 정도로만 여겼을 따름이다. 지난해 봄 제주도에 출장갔을 때 제주도는 7대 자연경관 선정 캠페인으로 요란했다. 기자에게 중복투표도 다 계수되니 전화투표를 하라고 권유하는 케이티(KT) 임원에게 “그런데 이렇게 중복투표도 투표로 인정되니 여러번 누르라고 하면, 보통선거를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 절차에 악영향을 끼치는 거 아닌가요”라고 농반진반 대꾸를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재단에 대한 투명성 의혹과 제주도의 211억원 행정전화비 사용 등의 뉴스를 접했지만 정체 모를 국외 단체의 돈벌이로 의심되는 영리행위에 범국가적 캠페인으로 맞장구쳐주는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을 따름이다. 지난해 11월11일 압도적인 투표로 제주가 7대 경관에 선정됐으나 통화료 미납으로 선정 취소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 안에 제주도가 내야 할 행정전화비만 무려 211억원이라는 얘길 듣고 ‘제대로 낚였구나’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뉴세븐원더스재단이 진행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국내외에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이어졌지만, 주로 단체의 신뢰성과 선정 방식의 황당함, 실질적 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국내에서 투표용 전화회선을 제공한 케이티가 기술적 측면 이상으로 얽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001-1588-7715 전화투표가 문제로 본격 부각된 것은 지난해 11월11일 제주도가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이후부터다. 제주도에서만 211억원의 행정전화비가 사용되고 도내 공무원들과 자동 전화투표 기계 등을 통해 하루 최대 200만통의 국제전화 투표가 이뤄진 점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지난달 13일 공무원들을 과도하게 전화투표에 동원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국제전화 여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난달 29일 방송된 <한국방송> ‘추적 60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국 모두 자국 통신사를 통해 나라별로 다양한 반복 투표가 이뤄지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추적60분’은 인도네시아 현지 취재 등을 통해 각국의 통신사들이 국내 투표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있는지도 보도했다.

 

가장 ‘창의성’이 돋보인 곳은 필리핀 통신사였다. 필리핀 통신사는 자국의 7대 자연경관 후보인 ‘푸에르토프린세사 지하강(PPUR)’에 문자메시지로 투표를 할 때 ‘PPUR’을 여러 번 보낼 필요없이 PPUR 뒤에 15를 입력하면 15번 투표한 것으로 해주고 요금도 할인해줬다. 인도네시아는 초기에 통화 건당 1000~1500루피아(120~187원)를 받다가 나중에는 1루피아(0.12원)으로 대폭 할인에 들어갔다. 나라별로 통신사가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반복투표와 매출 극대화를 유도한 사실은 국내에서 케이티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했다.

 

취재에는 7대 자연경관 투표의 신뢰성을 고발해온 제주도 시민단체들과 국내외 네티즌들의 도움이 컸다. 뉴세븐원더스가 한국을 국제전화 투표가 아닌 국가별 투표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을 비롯해 우리나라 외의 다른 후보국들은 어떻게 전화투표가 이뤄지고 있고, 어떤 요금이 부과되는지를 이들 단체와 전문가 조사로 확보했다. 치밀한 조사와 각 항목마다 직접링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료는 ‘집단지성’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지난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친 ‘추적 60분’ 보도에서도 케이티는 의혹을 시인하지 않았다. 케이티는 계속 영국으로 거는 국제전화의 단축번호라고 주장했다.

 

취재가 진행되면서 케이티 내부의 제보자들의 구체적 제보가 잇따랐고, 방송통신위원회의 감독 소홀도 드러났다. 케이티의 한 직원은 “케이티 통신망 구조상 한 지역에서 그 만큼의 국제전화가 특정 지역으로 시도될 경우 이 신호들은 제주 관문국도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병목현상을 일으켜 극심한 통신 대란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실태를 알려줬다.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케이티가 말한 대로 국제전화라면 ‘하루 최대 200만통 넘는 통화가 국제전화 최고기록을 갱신했을 것’이란 가정을 하고 방통위와 케이티에 국내의 국제통화 최고 기록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케이티가 뉴세븐원더스재단과의 계약 내용을 핑계로 감출 수 없는 자료였다.

 

케이티가 끝내 드러내려 하지 않던 실체가 드러나는 계기였다. 케이티는 결국 당시 통화량이 국제전화 망에 장애를 전혀 일으키지 않았으며, 기존 국제 통화기록 최고치를 기록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전용회선을 이용해 국외에 투표서버만 설치한 것이지, 통계로 잡히는 국제전화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001-1588-7715를 국제전화로 알고 투표에 참여한 국민들을 비롯해 211억원의 세금을 전화비로 쏟아 부은 제주도가 사실상 국내전화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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