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당해고 논란에 휩싸인 KT 이석채 회장이 2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KT 및 그룹사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설명회를 겸한 2013년 경영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KT제공) ⓒ2005 CNBNEWS
세계 7대 자연경관 의혹 폭로 새노조위원장 ‘해고’ 병원입원 불구 ‘무단결근’으로 징계…논란 일파만파 권익위 “인사조치 부당” KT에 시정권고 했지만 ‘모르쇠’ ‘룸살롱 파문’ 사퇴한 조용택은 부사장으로 ‘금의환향’
KT의 막무가내식 연말 인사가 논란을 빚고 있다.
최근 ‘룸살롱 접대 파문’으로 사표를 제출했던 임원을 은근슬쩍 복직시켜 논란을 빚은 바 있는 KT가 이번 연말 인사에서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관련한 의혹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를 해고하고, 친정부 성향의 외부영입인사를 초고속 승진시키는 등 무분별한 인사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더구나 KT는 매년 국감 때마다 ‘낙하산’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을 받아온 데다, 혹독한 인력퇴출 프로그램(C-Player)을 운용해온 사실이 일부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상식 밖의 인사를 단행하고 있어 ‘이석채(KT회장) 스타일’의 독단 인사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KT는 지난해 제주 7대경관 선정과정에서 발생한 수백억원대의 국제전화 요금 의혹을 제보해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공익적 내부제보자’로 인정받고 보호조치된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을 지난달 31일자로 해고했다.
이 위원장이 폭로한 내용은 지난해 2월 KT가 주관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전화투표와 관련, KT가 설치한 전화망이 투표 참여자와 선정 주최인 해외의 뉴세븐원더스 재단을 연결하는 국제전화가 아니라 KT전용망을 통해 별도로 구축한 국내전화였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전화투표에는 제주도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총동원 돼 실적 쌓기 경쟁을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으며 제주도에서만 관공서 전화요금이 200억원 넘게 나왔다.
이후 뉴세븐원더스가 정체 불명의 이벤트 업체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국제 사기극에 온 나라가 휘둘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감사원은 ‘KT의 불법 부당행위에 대한 방통위의 묵인 관련 감사청구사항 감사 결과’를 통해 KT가 전기통신번호관리세칙을 위반한 것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방송통신위원회에 통보했다.
KT가 국외에 착신전화번호가 없음에도 ‘001’번호를 써 전기통신관리법을 위반했다는 것. 일본에 서버를 두고 001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게 해 국제전화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실상은 KT사업용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전화였다는 게 감사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이 위원장의 제보가 사실로 증명됐지만, KT는 이 위원장이 무단결근과 무단조퇴를 반복했다며 해고한 것이다.
정직 3개월뒤 “가평으로 출근하라” 문자메세지 통보
이에 이 위원장과 새노조 측은 명백한 보복성 부당해고라며 맞서고 있다.
이 위원장은 3일 <씨앤비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0월 허리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진단서까지 제출했는데 무단결근 처리됐으며, 무단조퇴의 경우도 각종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시상식에 수상자로 선정돼 1시간 일찍 퇴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 위원장의 결근은 질환에 의한 것이고, 또한 무단 조퇴는 통상적으로 징계위 회부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씨앤비뉴스>가 단독 입수한 이 위원장과 회사 간부(이 위원장 결근의 처리권한을 갖고 있는 해당부서 팀장) 간의 당시 통화녹취 내용에 따르면 담당 팀장이 고압적인 목소리로 이 위원장에게 “진단서 제출했지만 사규에 어긋나니 직접와서 얘기하라”고 말했으며, 이에 이 위원장은 “사규에 어떻게 저촉 되는가”를 따졌다. 팀장은 “내가 의사가 아닌데…어쨌든 직접와서 하세요”라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팀장은 이 위원장에게 문자메세지를 통해 “진단서는 사규에 부합하지 않고 병가승인이 신빙성이 있는 근거로 삼기 어렵고 업무수행이 불가한 상황으로 보기에도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알렸다.
이처럼 KT측이 해고의 이유로 밝힌 ‘무단결근’이 알고 보니 이 위원장이 회사측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팀장에게 상황설명까지 한 상태였던 것이다.
특히 <씨앤비뉴스> 취재 결과 이 위원장은 의혹 제보 이후 출퇴근에만 4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경기도 가평지사로 발령받은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 위원장은 제보 직후인 지난해 3월 9일 KT에 대한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돼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징계위는 이 위원장이 시민단체 집회에 참석해 KT 이석채 회장 등을 비난하는 내용의 연설을 한 사실을 문제 삼아 징계했다.
이후 3개월 정직이 끝나기 하루 전인 5월8일 이 위원장은 회사측으로부터 “경기도 가평 지사로 출근하라”는 문자통보를 받았다. 정직 3개월 처분도 억울한 마당에 서울 을지로 지사와 대중교통편으로 2시간 이상 떨어진 가평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위원장에 대한 인사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KT에 시정조치를 권고했으나 KT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KT의 이같은 행태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KT 새노조와 공공운수노조는 2일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관 위원장에 대한 해고조치 철회와 이석채 KT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조만간 단체 행동을 통해 KT에 대한 불매운동 등을 예고한 상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단순한 노동자 해고가 아닌 KT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KT 새노조를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시행되면서 결성된 KT 새노조는 조합원이 30여명으로 현재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에 소속돼 있다.
▲ KT 새노조와 공공운수노조는 2일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관 위원장에 대한 해고조치 철회와 이석채 KT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같은 시각 이석채 회장은 ‘2013년 경영방침’을 발표했다. (사진=KT새노조 제공) ⓒ2005 CNBNEWS
친정부 외부인사 승진 파격 대우
한편 KT의 안하무인(眼下無人)격 인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의원(민주통합당)이 최근 KT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인수위원회나 청와대에 있던 인사가 민간 통신회사인 KT로 취업한 사례가 상당수 있었다.
최 의원에 따르면 이석채 KT 회장은 정통부에 있다가 KT로 갔고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은 KT 사장으로 재직하다 방송통신위원회로 인사조치 됐다. 대통령인수위원회 출신 허증수, 김규성, 이태규씨도 모두 KT로 갔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방통위에 몸담았던 서지훈씨도 현재 KT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달 인사 때는 MBC 기자를 거쳐 현 정권의 청와대 부대변인을 지낸 김은혜 전 대변인이 전무로 승진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여동생이자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도왔던 오세현 전무 또한 지난 2011년 상무로 영입된 후 1년여 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특히 KT는 국정감사기간 중 해당 상임위 의원들을 대상으로 ‘룸살롱 접대’를 한 사실이 드러나 사표를 제출했던 임원을 은근 슬쩍 복직시켜 거센 비난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다.
지난 2010년 국정감사 당시 전무였던 조용택 KT부사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최종원 민주당 의원과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상임위원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근처의 룸살롱에서 수백만원어치 술 접대를 했다. 술 접대 이틀 뒤엔 문방위의 방통위 국감이 예정돼 있었다.
지난 2009년 7월 이석채 회장에 의해 처음 KT로 영입된 조선일보 부국장 출신의 조 부사장은 당시 경영지원 실장(전무)을 맡아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업무를 도맡아 왔었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지자 당시 조 전무는 결국 사표를 냈다. 하지만 퇴사 후 8개월이 지난해 7월 KT는 조씨를 경영지원담당 부사장직에 신규 임명했다.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KT로 ‘금의환향’ 한 것이다.
▲ <씨앤비뉴스>가 단독 입수한 회사 측이 이해관 위원장 앞으로 보내온 문자메세지. 사측은 이 위원장이 제출한 병원 진단서가 “사규에 부합하지 않고 병가승인이 신빙성이 있는 근거로 삼기 어렵고 업무수행이 불가한 상황으로 보기에도 어렵다”고 해당부서 팀장을 통해 통보했다. ⓒ2005 CNBNEWS
제 식구 챙기기 ‘인사’ 해마다 구설수
이처럼 KT는 각종 인사 때마다 구설수에 올랐다.
친정부 성향의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낙하산 인사, 돌고 도는 회전문 인사, 자기식구 챙기기 성격의 보은(報恩) 인사, 공익제보자를 해고한 보복성 인사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 역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 자문그룹으로 활동했고 현 정부의 제1기 국민경제자문위원으로 활약했던 'MB맨'으로, 지난 2009년 KT사장에 선임될 때부터 낙하산 인사 시비가 불거져 왔다. 이 회장은 한때 국무총리, 대통령실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릴 정도로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KT는 제 식구는 철저하게 챙기면서 회사에 반기를 든 근로자들은 혹독하게 징계하는 이중적인 인사 정책을 펴고 있다.
해고자들의 양심고백으로 드러난 인력퇴출 프로그램(C-Player)이 대표적인 예다.
KT는 최근 수년간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수천여명을 퇴직 또는 전보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부진인력 뿐 아니라 노조(옛 KT민주동지회 등)를 통해 회사에 맞선 직원들까지 해당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KT고위직 출신의 한 관계자는 “매년 친정부 일색의 인사들로 물갈이하며 한편으로는 눈 밖에 난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줘온 게 KT 인사의 현주소”라며 “이번에 발생한 내부제보자 징계(해고)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KT관계자는 “이 위원장이 출근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 사규를 어겼으며, 20여일간 결근하면서도 대외활동을 해온 점 등을 근거로 절차대로 징계(해고)를 진행한 것”이라며 “앞서 가평으로 발령낸 것 또한 징계(정직3개월)받은 이 위원장과 조직구성원간의 위화감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