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분배율을 높이는 것이 ‘연합’(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이 해야 할 일 아니냐.”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춘투’(봄 임금협상)를 앞둔 연합에 분발을 촉구했다. 말 그대로 노조가 열심히 투쟁해서 최대한 임금을 많이 받아내라는 소리였다. 그는 기업의 내부유보금이 많아진 만큼 당연히 그중 일부 몫을 노동자가 받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전경련 격인 경단련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돈을 임금으로 나눠주지 않고 모아만 왔다”며 기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일본 기업들은 번 돈을 추가 고용이나 투자, 임금 인상 등으로 풀지 않고 내부에 꽁꽁 쟁여만 왔다. 일본 기업들의 내부유보금은 이미 200조엔을 넘어섰다.
기업들은 점점 돈이 많아지고 국민들은 점점 가난해지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바로 현재 일본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이다. 일본은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를 동반하는 디플레이션을 10년 이상 겪고 있다. 아베 신조 새 총리가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엔약세 정책을 펴는 것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보려는 몸부림이다.
인위적인 환율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써먹는 수법이다. 환율을 높이면 국제시장에서 우리 제품들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기업들의 이익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외환시장에 돈을 퍼붓는 것도 똑같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렇게 돈을 벌어들인 기업에 대한 태도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돈을 잘 벌었다고 박수를 치는 데 그친다. 일본처럼 번 돈을 노동자들 임금 인상으로 나누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를 공권력으로 때려잡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상식으로 돌아가 보자. 기업이 돈을 번다→월급을 많이 준다→직원들이 소득이 늘어난 만큼 소비를 늘린다→경제가 활성화되고 기업들은 더욱 성장한다.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흐름이다. 1970년대 미국, 1980년대 일본 등 그 사회가 가장 풍요롭고 행복했던 황금시대는 이런 상식이 통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을 노동자가 아닌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주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황금기는 끝났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내부유보금은 823조원에 이른다. 기업들의 덩치와 이익이 커진 것은 역설적으로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기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다. 국민들이 실업과 치솟는 수입 물가에 허덕이던 그때 말이다. 그럼 우리 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어디에 썼을까. 대부분 사내 통장에 쌓아놓고, 기껏해야 다른 기업, 특히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해 덩치를 키우는 데 썼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는커녕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일본 기업계는 정치권의 압력에 올해 춘투에서 상여금 등을 대폭 인상하며 화답했다. 임금 인상이 기본급이 아닌 상여금에 집중됐다는 점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그것만 해도 우리나라와는 천지차이다. 노동자들이 돈이 많아져야 내수가 진작되고, 그래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상식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6년 61.3%였던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하락해 2011년 59%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가 몰상식했던 탓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에는 상식이 있을까. 박 대통령이 주먹을 불끈 쥐고 기업인들에게 노동자들 임금 올려주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