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구조만 놓고 보면 KT는 민영화 기업이 맞다. 국민연금(6.69%)를 제외한 나머지는 민간영역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5% 이상 주요 주주는 KT 자사주(6.82%), 국민연금(6.69%), 일본 NTT도코모(5.46%), 영국계 칠체스터 인터내셔널(5.01%) 등 4곳 뿐이다.
MB정부 들어서며 ‘낙하산 체제’ 본격 시동
오랫동안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일까. 광범위한 주식분산 등을 통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민영화된 기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특정권력의 가신들이 기업을 지배하는 ‘낙하산 집결소’가 돼 버린 상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KT의 ‘낙하산 지배구조’가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2008년 노태우 정권과 YS정부에서 장차관과 경제수석을 지낸 이석채 현 KT회장이 MB 대선 캠프와의 인연을 발판으로 MB정부의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에 위촉된다. 당시 이석채 회장은 KT 대표로 선임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2년내 경쟁사 임직원을 했던 인물은 KT 대표이사가 될 수 없다”는 KT정관 제25조에 저촉되기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KT와 경쟁사인 SK C&C의 사외이사였다.
2008년 11월 KT는 주총을 열어 정관을 개정한다. 2년 내 경쟁사 임직원 경력이 있어도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정관을 바꾼 것이다. ‘이석채를 위한 정관개정’이었던 셈이다. 당시 일부 언론은 MB정권이 KT정관 개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석채 체제’, 이런 식으로 강화됐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이석채 체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지배구조를 강화한다. ‘낙하산 인사’로 요직을 채우는 동시에 두 차례 정관개정을 통해 CEO와 이사 선출 요건을 손질했다. 2010년 3월에는 CEO추천위원 가운데 민간위원(1명)과 전직 사장(1명)을 배제하는 정관개정을 통해 대표 선임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외부 개입 가능성을 차단한다. 개정된 정관에는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들로만 CEO추천위원회가 구성되도록 돼 있다.
지난 3월에도 정관개정이 있었다. 경쟁사와 계열사 근무경력이 있는 임직원도 사외이사로 선임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3년 임기에 1회 중임이 가능했던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10년으로 연장했다. 노조와 시민단체는 이 정관개정이 ‘이석채 연임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올 3월 주총에서 이 회장은 3년 임기의 대표에 연임된다. ‘연임 체제’가 들어서며 구성된 이사진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8명으로 구성된 이사진에 ‘이석채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석채 회장의 고등학교(경복고) 동문이 두명이나 포함돼 있다. 표현명 사내이사는 이 회장과 고교동문이면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사돈 간이다. 김응환 사외이사 역시 이 회장과 고교 동문으로 현재 KT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다.
뿐만 아니다. 연임된 이춘호 사외이사는 MB대선 캠프에서 양성평등자문위원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 초기 여성부장관 후보에 올랐다가 재산형성과 관련된 불법사실이 드러나며 낙마한 바 있다. MB의 부인 김윤옥씨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송도균 사외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으로 최시중, 이상득 등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전관예우 낙하산’이라는 의혹이 야당에 의해 제기된 상태다.
이사진 절반 이상 ‘이석채 사람들’, ‘MB맨’도 다수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박병원 사외이사는 이 회장과 공직에 있을 때 친분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YS정부 말기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 박 이사는 재경부장관 비서실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경제통 관료’ 출신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송종환 사외이사는 ‘박근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정보부 실장을 지낸 인물로 ‘박근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다.
순수한 사내 출신이거나 외부 전문가 그룹으로 꼽을 수 있는 건 김일영 사내이사등 4명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전체 이사의 절반 이상이 ‘이석채 사람’으로 채워진 셈이다.
‘MB정부의 낙하산 집합소’라는 별칭과 걸맞게 KT 내에는 ‘MB맨’들이 많다. 현재 KT커뮤니케이션 실장으로 있는 김은혜 전무는 MB정부의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다. 김 실장은 2010년 논란이 됐던 ‘돌려막기’ 인사로 KT에 입성한 인물이다. 당시 대통령 인수위 출신이었던 서종렬 KT미디어본부장이 인터넷진흥원장으로, 인터넷진흥원 김희정 원장은 김 실장의 자리였던 청와대 대변인으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은혜는 KT미디어본부장으로 옮겨 앉았다.
17대 대선당시 MB지지를 선언했던 오세현 현 KT본부장(전무이사)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여동생으로 이 회장과 가깝다. KT에 상무로 영입된 지 1년 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을 해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김성익 현 KT스카이라이프 감사는 이 회장과 고교(경복고 39기)와 대학 동기이며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절친’으로 알려졌다. KT미디어허브 감사까지 겸직할 정도로 이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이석채 체제’ 구축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규성 현 KT 엠하우스 사장은 MB 인수위 상임자문위원 출신이다. 이외에도 서종렬(인터넷진흥원장으로 있다가 성추행 파문으로 사직), 사외이사를 지냈던 허중수 씨도 MB 인수위 출신이고 KT경영경제연구소 전무를 역임한 이태규 씨는 MB의 연설기록비서관 출신이다.
이석채를 둘러싼 의혹도 많아
이 회장을 둘러싼 의혹도 상당하다. KT 측은 근거 없는 모함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도 여러 건이다. 이 회장이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회사에서 제공한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거주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KT측은 루머일 뿐이라고 말해 왔다.
일부 언론이 확인한 결과 이 회장의 ‘100억 연봉’은 부풀려진 얘기로 밝혀졌으나, 타워팰리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KT 측은 이사회 의결을 통해 제공된 것이라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논란이 불거지자 타워팰리스에서 퇴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임 등 비리 의혹도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혐의로 이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해 놓은 상태다. 참여연대가 제출한 고발장에 의하면 이 회장은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등의 사업에 관여하면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것으로 나와 있다.
‘친인척 재테크용 사업’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있다. 유종하 전 외무부장관이 관여해온 KT OIC를 KT의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유 전 장관이 수억원의 이득을 챙긴 대신 KT가 60억원 정도 손해를 봤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또 유 전 장관이 회장과 주주로 있던 ‘사이버MBA’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9배 정도 비싼 가격으로 매입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도 있다. 유 전 장관과 이 회장은 8촌 간으로 이 회장의 여동생의 남편과 유 전 장관이 외무부에 함께 한 바 있다.
‘낙하산 체제 강화’가 ‘민영화’인가?
무자격 업체에게 공사를 밀어주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리베이트와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또 이 회장과 관련된 비리 의혹이 SNS상에 유포되자 KT 사내의 ‘IT서포터즈’를 동원해 비난 여론을 방어하는 등 여론조작을 꾀했다는 의혹도 있다. KT 측은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하지만 'IT서포터즈'가 정보격차 해소, 사회에공헌 등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조직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IT서포터즈' 사조직화 의혹. '이석채 비판 여론 방어' 지시한 문자메세지/출처: 미디어오늘>
이 회장은 현재의 KT 상황을 ‘민영화가 안정돼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외부에서 볼 때는 민영화가 아니라 ‘낙하산 체제’의 판 굳히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KT 노조는 그동안 진행된 ‘이석채 체제 강화’로 인해 이 회장의 장기집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낙하산 체제 강화'를 민영화라고 볼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강조한 게 ‘낙하산 근절’이었다.‘낙하산 체제’가 민영화를 대체하고 있는 KT에 대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드러난 혐의 내용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수사해 처벌해야 할 것이다. ‘민영화된 KT’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